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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한시 Jan 31. 2023

가난한 자는 도전할 여유도 없다.

경험의 빈곤

식당에 가면 매번 먹던 메뉴를 시켜 먹는 편이다.

새로운 맛이나 음식에 그다지

호기심이 많지 않아서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음식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물건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음식, 평소와 다른 스타일의 물건을 샀다가

만족하지 못하면 돈을 날린 것 같은 기분이 싫은 거다.

용기 내어 샀다가 택도 그대로 달린 채

구석에 처박힌 셔츠를 볼 때마다

'셔츠값이 얼마였더라..

당근에 팔면 얼마나 받으려나..

 아 귀찮아'하게 되고,

매번 먹던 라테 대신 새로운 음료를 도전했다가

실패하면 음료값이 아까워서라도 다 비우지만

 불만족스럽고 찝찝했던 경험들...

그런 기분이 싫어

결국 가던 장소, 같은 메뉴만 고르게 되는 것 같다.


그런데 내 아이는 다르다.

새로운 음료가 있으면 먹어보겠다고 하고,

매번 새로운 메뉴를 시켜 먹어본다.

항상 안정적인 선택만 하는 내게,

내 아이의 모험적인 선택은 새롭고 신기했다.


나는 그게 성격의 차이인 줄 알았다.

모험과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성격,

 안정적이고 변화를 싫어하는 성격...

요즘 어디서나 들려오는 MBTI처럼 말이다.



그러나 (성격의 영향이 없지는 않겠지만)

그건 결국 돈, 경제적인 여유가

얼마나 있는지와 관련이 있었다.


어릴 적 넉넉하지 않은 집안에서

네 명의 자식 중 셋째였던 나는

항상 돈이 없고 빠듯한 살림살이를 보며 자랐다.

근검절약이 몸에 배어있고, 돈 낭비 하는 걸 싫어한다.

그래서 내가 시도해 본 음료수가 맛이 없어도

과감히 포기하고

다른 음료를 다시 시켜볼 여유 따위는 없었다.

이번 기회는 그냥 이 맛없는 음료가 나의 운명인 거다.

나에게는 한 잔의 음료, 한 끼의 식사에

써야 하는 돈이 정해져 있고,

설사 내가 금전적 여유가 생겼다 하더라도

두 개의 음료, 두 개의 메뉴를 시킨다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나의 선택이 실패했을 때를 대비한 여유는 없고,

그래서 항상 안전한 선택만 하게 된다.


제한된 범위의 안전한 선택은

한정된 경험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가던 곳을 가고, 먹던 것을 먹고,

 비싸고 새로운 것들은 섣불리 시도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 아이는 좀 달랐다.

부유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빠듯한 살림살이는 아니고

외동이라 아이가 원하는 것은 되도록 해주려고 했다.

외식이나 여행 등도 아이의 의견을 많이 반영하다 보니

내 아이는 반드시 '이번 기회' 뿐만이 아니라도,

또 다른 기회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번에는 이것, 다음에는 저것,

이렇게 골라볼 수 있는 여유가 있다.



내 아이를 보면서야 비로소

돈의 빈곤이 경험의 빈곤을 가져온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


사진: UnsplashKasper Rasmussen



방학 내내 집안에서 게임만 하는 아이들과 

미술관, 음악회, 여행을 다녔던 아이들은

경험치가 다르고, 생각하는 범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다양한 간접경험, 특히 독서와 같은 방법을 통해

가난과 경험부족, 생각의 빈곤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는 있겠지만

생경하고 새로운 경험들이

인생의 큰 즐거움 중의 하나인데

돈이 없으면 쳇바퀴처럼 매일 똑같이 돌아가는

경험과 사고방식 안에 갇히게 된다는 게

때로는 서글프고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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