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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명의여명 Nov 18. 2022

차가운 바다, 눈 덮인 산에 가면 만날 수 있을까?

시간의 숲(2012)-송일곤 | 겨울의 납량특집




태초에 숲이 있었다


라는 대사로 시작하는 영화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가보고 싶은 일본의 두 번째 숲. 이제는 원령공주의 숲으로 더 유명한 야쿠시마에 배우 박용우라는 배우가 방문했다. 여행에서 얻어가고 싶은 것 10가지를 빼곡하게 적어온 박용우는 한국어를 할 줄 아는 타카키 리나라는 배우와 함께 야쿠시마를 여행하면서 7200년 동안 살아왔다는 야쿠시마 숲의 노인 '조몬스기'삼나무를 만날 수 있는 날을 기다린다. 하지만 추운 1월의 날씨는 쉽게 길을 내어주지 않고 여행의 끝은 점점 다가온다.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야쿠시마와 조몬스기 두 단어만으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야쿠시마에 대한 나의 지식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모모노케 히메 (원령공주)'의 배경이 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숲이라는 것, 그리고 그곳의 조몬스기 삼나무는 7200년을 살았다는 것이 전부. 이 것만으로도 언젠가 한 번은 꼭 가보고 싶은 숲 Top 10 아니 Top 5에 빠지지 않는 곳이다. 사실 애니메이션에 소개된 숲 속 모든 신들과 영혼들이 나를 부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뒤로도 몇 번 스쳐 지나듯 야쿠시마에 대한 다큐멘터리나 야쿠시마를 소재로 한 듯 한 영화 속 배경들을 보면서 언젠가는 꼭 이란 마음을 한 20년쯤 품고만 있다. 아마도 박용우도 이런 마음을 갖고 있지 않았을까? 굳이 조몬스기를 보러 멀리 와야 한 이유가 그런데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사실 영화의 형식은 다큐멘터리이지만 혹 페이크 다큐 혹은 목 다큐 mock documentary/mocumentary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적절한 타이밍에 일어나는 흥미로운 이벤트가 가득한 영화였다.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일주일 남짓한 일정에서 그들은 야쿠시마에 정착한 밴드를 만나고, 야쿠시마를 사랑한 시인의 집을 방문하고, 아이들과 함께 바닷가를 뛰어놀았다. 아이들에게 나이를 주는 산의 신들이 해가 바뀔 때마다 산을 내려와 지식과 행동을 교육하는, 약간은 폭력적이기도 한 전승이 행해지는 축제를 보았고(아마도 섬이라는 곳이 가진 거칠고 척박한 환경 탓에 이이들은 빨리 어른이 되어야 했기 때문에 생겨난 방식일지도...), 길을 열어주지 않은 산을 욕심내어 올랐다가 얼어붙은 몸을 하고는 중간에 내려왔어야 했다. 모든 것을 안아주는 숲에 감사했다가 더 내어 주지 않는다는 것에 실망했다. 용서하고 긍정적이 되고자 했던 박용우의 위시리스트는 얼마나 지워졌을까?

고사한 삼나무 위에 자란 새싹의 모습과 오백 년이 걸려 손을 잡게 된 부부 삼나무, 그리고 오래된 숲을 덮은 폭신한 이끼들이 사랑스러웠다. 매일 만나 이끼를 태어나게 하여 숲을 바다의 연인이라 부르는 야쿠시마 사람들의 상상력에 감탄하고, 이 숲과 바다의 아이들을 먹는 겨울철 배고픈 사슴들은 그럼 숲과 바다를 오롯이 집어삼키는 존재들인가, 그래서 영화 원령공주 속 산의 신은 사슴의 모습인가 하는 조각난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돌았다. '원숭이 2만 사슴 2만 사람 2만, 그것이 이 섬의 과거이고 그것이 이 섬의 미래'라 노래하는 밴드가 있어서 이 원시림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칼침 맞은 가리왕산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하는 쓰라린 마음이 들기도 했다.


박용우는 결국 조몬스기를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나중에 혼자 야쿠시마를 다시 찾은 리나는 현명한 숲의 노인과 마주한다. 마음을 준다면 어떤 나무도 조몬스기가 될 수 있다는 야마오 산세이의 말대로 박용우도 그 만의 조몬스기를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영상편지를 보낸다.


숲은 흙과 나무를 감싸고 침묵하며 살고 있다.
사람은 그 숲으로 돌아간다.
숲은 하나의 커다란 어둠이며 자비이다.
사람은 그 숲으로 돌아간다.
숲 깊은 곳에는 물이 흐르고 있다. 그 물 또한 숲이다.
사람은 그곳으로 돌아간다.
그 숲으로 돌아간다.
- 야마오 산세이 - 





뜬금없는 덧글 1

납량특집이지만 공포물은 아니다. 화면으로도 느껴지는 정월의 차가운 바닷물과 눈으로 가득한 산의 칼바람은 더운 날 영화를 보는 내내 목 뒤에 서늘한 그늘을 드리웠다. 가능한 따뜻한 곳에서 보시길...


뜬금없는 덧글 2

일본 영화 혹은 일본문화에 대한 양가적 감정은 쉽게 다스려지지 않는다. 이중적이고 얄팍하며 가식적이라고 느끼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문득문득 부러운 마음이 드는 순간들이 있어 마냥 미워하거나 무시할 수만은 없다. 특히 산에 들어가기 전 숲의 신에게 인사하는 타카기 리나의 모습을 보면, 주어진 모든 것들에 감사하고 순간에 마음을 다하려고 하는 일본인들의 마음가짐 혹은 그러한 마음가짐을 아름답다고 여기는 모습은 나 역시 챙겨가고픈 배우고픈 모습이라 존중할 수밖에 없다. 일기일회一期一會,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본인의 철학이다. 비단 사람들 뿐 아니라 이 순간 내가 마주하고 있는 모든 것들, 숲 속의 나무와 풀, 모든 생명을 가진 것들과 가지지 않은 것들을 대할 때 이 마음을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같은 이라도 이다음에 만나게 될 때는 지금 이 순간 나와 마주하고 있는 이와는 다른 존재가 된다는 것, 잊지 말자.


뜬금없는 덧글 3 (살짝은 섬찟한...)

야마 히메, 숲의 공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 야마 히메를 만나 먼저 웃지 않으면 영혼을 빼앗긴다는 이야기. 숲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웃으라는 우화일 것이라 생각되었다. 인적 없는 산속에서 만나는 사람은 두렵다. 이 사람이 좋은 사람일지, 나쁜 사람일지, 아니 사람이 맞기는 한 것인지... 웃는 얼굴에는 아무래도 웃는 낯으로 대하게 되니 혹여 악한 맘을 가진 이라도 내 웃는 얼굴을 보면 마음이 좀 약해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만들어 낸 이야기가 아닐까?


뜬금없는 덧글 4

뜬금없는 덧글이 너무 길지만, 영화에 쓰인 에릭 사티의 그노시엔 no.1을 꼭 이야기하고 싶었다. 조금은 지나치게 많이 쓰여 그 힘을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사티의 음악은 이 영화와 찰떡같이 어울린다. 방 안의 온도를 몇 도는 낮추고 나를 야쿠시마의 숲으로 데려가 준다. 감사하다.


뜬금없는 덧글 5

편집이 좀 다르지만... 유튜브에서도 볼 수는 있다. (TV판이라 두 편으로 나누어져 있고 조금 더 길다.)

https://youtu.be/Tu9UIBwi9n8

https://youtu.be/7bBPRA172Q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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