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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명의여명 Nov 22. 2022

파리를 파리답게 만드는 것은?

파리의 딜릴리 (2019) - 미셸 오슬로



'벨 에포크'라고 불리운 시대의 파리를 알고 있는지...


'지지', '미드나잇 인 파리', '물랑 루즈', '라 비앙 로즈' 그리고 '파리의 딜릴리' 이런 영화들의 배경이 된, 그러니까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약 30년 동안 눈부신 기술의 발전과 함께 문화와 예술이 눈부시게 피어나던 시기의 파리를 부르는 말이다. 르느와르, 모네, 로트렉, 드가, 피카소, 무하, 모딜리아니, 로댕과 까마유 끌로델과 함께 이 시기 파리에서 활동하던 화가들, 드뷔시, 사티, 라벨, 레날도 안, 엠마 칼베와 같은 음악가들과 사라 베른하르트, 쇼콜라, 콜레트, 라 굴위와 같은 배우/무용가들, 퀴리, 프루스트, 루이즈 미셸, 에펠, 파스퇴르와 같은 과학자/사상가/철학자들이 파리를 가득 채우고 있던 시절,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사건이 터지고 새로운 지식과 아이디어들이 창궐하던 그 시절 파리는 세계의 중심이었다. 이 '아름다운 시절'의 파리에서 일어난 칙칙하고 어두운 여자아이 납치사건을 신기한 구경거리였던 혼혈아 '딜릴리'와 배달부 '오렐'이 파리를 가득 채운 예술가들과 지식인들의 도움을 받아 해결하는 이야기가 이 '파리의 딜릴리'라고 하는 애니메이션이다.



 '키리쿠 키리쿠', '밤의 이야기', '아주르와 아스마르'와 같은 아름다운 스타일의 애니메이션을 만들면서 스타가 된 미셸 오슬로의 가장 최근작인 '파리의 딜릴리'는 그 실험적인 제작기법으로도 유명하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파리가 정말 사실적으로 그려졌는데, 이는 실제 사진으로 촬영한 파리의 이미지에서 모든 현대적인 부분을 삭제한 뒤 영화의 실사배경으로 사용함으로써 구현되었다. 이러한 사실적인 배경 이미지는 당시의 화려한 건축물과 함께 영화를 더욱 사실적으로 보이게 하는 역할을 하는 데 그치지 않고 파리라고 하는 공간이 영화의 주요한 캐릭터 중 하나로 기능하게 한다. 특히 일반적인 애니메이션에서 구현하기 어려운 자연의 질감을 아주 사실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돕는다. 딜릴리의 모험 뒤로 관객의 눈을 즐겁게 하는 파리의 구석구석이 펼쳐진다. 2 공화국 시절 새롭게 만들어진 파리의 각종 건축물과 공원, 번화가들의 모습이 눈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그 화려한 건축물 사이사이 아름다운 녹음이 펼쳐져 있다. 


도시숲이다.


파리는 걷기에 좋은 도시다. 500개가 넘는 공원과 정원이 있어 언제든 자연 가까이서 산책을 즐길 수 있고, 파리의 공공구역에는 484,000그루 이상의 나무가 자라고 있어 유럽에서 가장 나무가 많은 도시 중 하나로 손꼽힌다. 여기에는 파리의 대로를 따라 심겨있는 가로수와 파리 곳곳의 공원과 정원, 그리고 표지의 나무, 교육기관 및 행정기관에 심어진 나무들이 포함된다. 그중 유명한 몇 나무는 화가의 그림 속에 박제된 채 전 세계에 소개되어 지금까지도 파리를 방문하는 여행객들이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이다. 모네의 라 그루누이에르 그림 속 수련과 수양버들은 아직 그 자리에서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세계대전 중 모두 땔감으로 쓰인 탓에 지금은 모두 새로 심어지긴 했지만 샹젤리제의 네모나게 전지 된 플라타너스들은 벨 에포크 시절에도 그 자리를 지킨 패션 1번가의 얼굴이었다.

파리의 셀러브리티 나무들은 온라인에서도 그 위치와 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 (프랑스어로 되어 있지만 우리에겐 학명과 구글이 있다!!!) 사진이 없는 것이 조금 섭섭하지만, 어디에 가면 어떤 유명한 나무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지 확인해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그동안 푸대접받아왔던 아까시나무도 파리에서는 400이 넘게 살아 귀한 취급을 받고 있고, 너도밤나무 중에도 수양너도밤나무는 200년이 넘도록 공원 한 구석을 차지한 채 사라져 간 연인들의 이름을 품고 있다. 이런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파리가 된다.


'파리의 딜릴리'는 물론 숲에 대한 영화가 아니다. 아름다운 시절의 파리,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떠돌던 딜릴리가 찾은 집이고, 달라서 혹은 다르고 싶어 발버둥 치던 수많은 사람들이 무언가를 찾기 위해 찾았던 곳이며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과 충돌하던 그곳, 파리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 충돌과 발버둥은 비단 파리의 인간들에게만 일어났던 일 만은 아니지 않았을까? 도시가 뒤집히고 재건축되었던 2 공화국 시절 이후 도시 속에서 천이를 이루어 가던 나무들에게도 '아름다운 시절의 파리'였을 지도 모르겠다. 어디에서고 새로운 것들과 아름다운 것들을 찾아내던 시절, 나무들도 종종 주인공이 된 무대들이 있었다. 그 아름다운 시절, 나무들도 파리를 파리답게 만들고 있었다. '파리의 딜릴리', 영화 속에서 La Belle Époque을 만들던 나무들을 본다. 




뜬금없는 덧글 1

서울사는 나무 (장세이)라는 책이 있다.

아마 도쿄사는 나무, 부산사는 나무, 김포사는 나무... 이런 책들도 있어야 할 것 같다. 아니, '내 집 사는 나무'라는 책도 모두의 마음속에 있지 않을까?


뜬금없는 덧글 2

가로수에 대해 고민이 많다. 그들에게 감사하고 미안한 마음이 가득이다.

조금 덜 미안한 방법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들을 자취를 온라인을 통해 팔로우한다.

아직 머리 들고 목소리를 높이기에는 엉덩이가 무겁고 의견을 내세우기에는 모르는 것이 많다.


뜬금없는 덧글 3

나무지도... 나도 만들고 싶다.

 파리의 셀럽 나무들과 나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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