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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명의여명 Dec 06. 2022

나를 살아가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랜드(2021) - 로빈 라이트

가족을 잃고 사람들과 함께 하는데 어려움을 겪은 이디가 도시의 삶을 떠나기로 결정한 이유였다. 와이오밍의 퀸시에 도착한 이디는 긴 리스트에 적어둔 물건들을 사고, 작은 오두막을 계약한다. 동생으로부터의 전화가 울리고 있는 핸드폰마저 쓰레기통으로 던진 뒤 안내해 주겠다는 공인중개사의 뒤를 따라 도착한 곳에는 이전 주인이 죽은 뒤 일 년이 넘도록 비어 있던 오두막이 쇼숀 국유림 Shoshone National Forest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오롯이 서 있었다. 타고 온 차와 짐을 싣고 온 트레일러마저 처분해 버리고 이디는 그렇게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의 삶을 살기 시작한다.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이 힘들어요. 내가 나아지기만을 바라죠.
왜 내 감정을 남과 나누어야 하죠?
어차피 공감할 수 없을 텐데요.

당연하게도 익숙하지 않은 오프 그리드*의 생활은 매일이 도전의 연속이다. 잘 알지 못하고 사온 도구들은 그리 도움이 되지 않고, 자연의 낯선 소리들은 안락함과 편안함보다는 낯설고 두려울 뿐이었다. 그리고 행복했던 기억과 돌아오지 않는 이들은 환영이 되어 자신을 따라다녔다. 도시에서 사 온 먹거리는 떨어져 가지만 자연은 넉넉하게 나누어 주지 않았다. 겨울이 오고 부족한 땔감에 책을 찢어 태우고 마지막 캔을 데우지도 못하고 퍼먹었다. 버티지 못하고 쓰러진 이디를 사냥꾼 미겔이 발견하고 간호사 알라와를 불러 치료를 해 주었으나 병원에 가기를 거부하는 이디를 위해 미겔이 남아서 그녀를 보살피기로 한다. 그리고 그렇게 이디를 살린 미겔은 친분을 원하지 않는 이디에게 자연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만을 가르쳐준다는 약속으로 조금씩 다가간다.


자연 속에서의 삶이 조금 편안해진 이디는 순간순간 어딘가에 앉아 생각에 잠긴다. 그녀의 얼굴은 때론 고통스럽기도 했다가, 머릿속 추억을 떠올리는 순간에는 행복의 기운이 스쳐 지나는 것 같기도 했다. 미겔이 방문하는 것을 보고 반가운 표정을 띄우기도 한다. 혼자서도 사냥을 잘하고 텃밭 주위로 담을 쳤더니 텃밭채소도 이제 제법 잘 자란다. 그렇게 편안해지고 있는 이디는 이제 찾아온 지 오래되는 미겔이 궁금해진다. 그렇게나 아무와도 연결되고 싶지 않았던 그녀가 넉넉한 자연 속에서 웅크리고 숨을 이어가는 동안 스스로의 상처를 딛고 일어서고 있었다.


이 영화를 본 모든 대한민국 사람들은 '이거 미국판 나는 자연인이다'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하루 중 언제고 TV 앞에 앉아 채널을 돌리기 시작하면 이 프로그램을 하고 있는 채널 두세 개는 만날 수 있다는, 대한민국 종편 사상 최고로 흥행하고 있는 어른들을 위한 예능 '나는 자연인이다'. 많은 에피소드를 보지는 못했지만, 많은 분들이 실패와 고통을 피해 산으로 온 분들이라고 알고 있다. 그렇게 우리는 아주 자연스럽게 삶이 주는 고통을 피해 산으로, 자연으로 달아난다. 그곳에서 우리는 무엇을 찾는 걸까? '산이 나를 살렸다'라고 말하는 수많은 자연인들은 같은 뜻으로 이야기하는 것 일까?


2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미겔과 미겔의 개 포터 외에 이디 주변에 보이는 것은 겨울에도 푸르른 로지 폴 소나무와 몬티콜라 잣나무 그리고 가을을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포플러 나무뿐이었다. 아름다움 풍광이지만 겨울 먹거리를 준비해야 하는 이디에 눈에는 아름답고 당당하게 서 있는 그 나무들보다 비버가 잘라놓아 땔깜으로 쓰기 적절한 죽은 나무들이 더 소중해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곳의 송어와 토끼와 사슴과 곰은 자연의 친구가 아니라 생태계의 먹이사슬에 속한 이디의 구하기 어려운 식량이었다. '그렇게 살아 움직이며 순환하는 생태계'가 이디가 말하는 '이곳'이 아니었을까? 그 누구도 어설픈 공감 따위를 이야기하지 않고 삶의 부조리가 당연한 그곳, 가차 없이 냉혹하고 아름다우며 광활하고 포근한 어머니, 자연.


가끔 외롭기도 하지만, 
바깥세상에서 보다는 덜 외로워요
'이곳에 못 산다면, 어디서도 살 수 없을 거예요
If I don't belong here, I don't belong anywhere

- Land(2021)

'아름다운 풍광에 비해 내실이 부족하다'라는 평론가의 말(rottentomatoes.com)처럼 영화는 어딘가 좀 부족하다. 이디의 고통도, 극복도, 성장도, 자연도 마음 놓고 즐기며 만끽하기 전에 끌려 나오는 느낌이다. 하지만 상실의 고통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디의 마음을 살펴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옐로우 스톤 국립공원과 이어진 쇼숀 국유림의 멋들어진 풍광 역시 눈을 시원하게 씻어준다.


*오프 그리드: off the grid: 공공시설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생활하도록 설계된 건물 및 라이프스타일 (위키백과)




뜬금없는 덧글 1

영화의 주연이자 감독이기도 한 로빈 라이트는 한국에서도 넷플릭스의 '하우스 오브 카드'로 유명해진 배우다. 아, 카리스마 넘치는 강인하고 중후한 역할에 잘 어울리는 배우라 생각했는데, 찾아보니 <포레스트 검프>의 제니 역을 연기한 배우라고 한다. 그때 한국 관객들에게 정말 많은 욕을 먹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녀가 감독하는 첫 영화로 '랜드'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감독으로서 그녀는 영화를 통해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35% 정도는 부족해 보이는 이 영화의 100%는 어떤 모양이었을까? 가끔 아쉬운 영화들을 보면 궁금해진다. 100%의 모습이 무엇이었을까?


뜬금없는 덧글 2

화면에 비치는 쇼숀 국유림을 보면서 느낀 점은… '저곳에서 숲공부를 했다면 어떤 나무인지를 알아보는 '동정'을 하는 것이 훨씬 쉬웠겠다'였다. 물론 그런 모습만 화면에 담겼겠지만… 다양성이 떨어져 보이는 쇼숀 국유림의 모습은 숲에 대한 공부를 하기 전 내가 가졌던 눈에는 너무나도 정갈하고 아름답게만 보였겠지만 이젠 끝도 없이 펼쳐진 잣나무 숲이 더 이상 멋들어져 보이지만은 않는다. 엉망진창으로 보이지만 완벽하게 진행 중인 지구의 의지를 조금은 이해하고 있기는 한 걸까? (덫을 놓으러 다닌 숲에는 작은 관목들이 보였는데, 겨울 장면이라 어떤 나무인지 알아보기는 힘들어 아쉬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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