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제목으로 '해피 해피'로 시작되는 세 편의 영화가 있다. '해피 해피 브레드(2011)', '해피 해피 와이너리(2012)'는 미시마 유키코라고 하는 감독의 영화인데, 내용이 연결이 되지는 않지만 같은 배우가 주연으로 등장하고 홋카이도라고 하는 장소가 배우들 이상으로 영화의 중심 역할을 하는, 지역발전을 위한 홍보성 영화라고 하는 카테고리가 있다면 주 교재로 선정될 법한 영화들이다. 홋카이도의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지역 산업과 홋카이도의 사람들을 아주 자연스럽고 따뜻한 목소리로 다독이며 소개하는 이 두 영화를 보고 나는 홋카이도라는 곳이 너무나 가고 싶었다. 설국과 유빙, 오르골 박물관도 아사히야마 동물원도, 그리고 영화 속 빵집이 있던 도야호와 와이너리가 있던 소라치 모두 가 보고 싶어 근질거렸다. 하지만 이러저러한 이유로 아직 홋카이도 여행은 계속 미뤄지고 있다. 그러다 만난 세 번째 '해피 해피'라는 이름이 붙은 영화. 감독은 달랐지만 같은 배우가 주연을 맡은 영화에다 홋카이도가 배경이라 리뷰도 하나 읽어 보지 않고 영화를 보았다.
홋카이도 섬의 남동쪽 끝 세타나에 바다가 보이는 시타라목장이 있다. 이 목장에는 소를 키우며 근처 치츠공방의 스승 오타니에게서 치즈 만드는 법을 배우는 아빠 와타루와 엄마 코토에, 그리고 오타니 스승의 부인인 사야코에게 그림을 배우러 다니는 딸 시오리가 살고 있다. 밥을 먹을 때마다 창 밖의 자연을 향해 감사인사를 잊지 않고, 이웃 친구네 밭에서 자연농법으로 재배한 채소와 텃밭의 허브가 들어간 식사를 하며 주말엔 파머스 마켓에 치즈와 유제품을 파는 와타루네 가족은 홋카이도의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평화롭고 느긋하게 '행복'이라는 이름이 달린 포스터의 그림처럼 살고 있다. 어느 날 유명한 셰프를 만나 자연 가까이에서 농사를 짓는 이웃들과 함께 하는 팝업 레스토랑을 신나게 준비하던 와타루의 일상은 스승 오타니의 죽음으로 흔들리기 시작한다.
일본 산 힐링 영화의 계보를 잇고 있는 이 영화는 당연하게도 눈을 시원하게 하는 홋카이도의 풍광으로 가득 차 있다. 나뭇잎을 스치는 서늘한 바람은 소중한 사람을 잃은 이들이 등 뒤를 슬며시 밀어준다. 영화의 시작, 와타루가 부인 코토에를 만나는 장면은 눈바람이 몰아치는 홋카이도의 새햐얀 설원을 보여주고, 첫 손님을 맞은 레스토랑은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절벽 위에 펼쳐져 있어 눈부신 바다와 하늘을 배경으로 영화의 원제인 '하늘의 레스토랑'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그리고 거칠고 무질서해 보이지만 당당하고 아름다운 홋카이도의 자연처럼 정제되어 있지는 않지만 중요한 질문들이 영화를 통해 던져진다.
영화는 와타루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와타루의 이웃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들이 환경운동가들과 그들에게 반대하는 이들이 소리 높여 외치는 구호가 되어 영화를 채운다. 농약이 땅과 사람을 망친다고 생각하는 친구 토미나가는 잡초가 무성해 경계조차 알 수 없는 밭에서 자연농법으로 채소를 키운다. 도쿄의 잘 나가는 외국계 컨설팅회사를 때려치우고 양을 키우는 목장의 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칸베는 자기가 키운 양을 먹는 것이 힘들다. 하지만 '가끔은 수소도 태어난다. 태어난 생명은 소중하니까 두 살 때까지 키워서 가족과 친지들을 모시고 남김없이 다 먹어.'라는 와타루의 말을 들은 칸베는 목장에서 일하기 시작한 뒤 처음 태어난 양으로 만든 스테이크를 먹고 맛있다며 눈물을 보이고, 무농약 친환경 쌀을 재배하는 이시무라는 눈물짓는 칸베를 보고 '그것이 세계평화야'라는 말을 던진다. 밤에만 조업하는 오징어배 선장이라 누구보다 흰 피부를 가진 논짱은 외계인과 UFO의 존재를 믿으며 그들을 부르는 춤을 추고, 치즈 스승 오타니의 치즈까지 홋카이도의 자연에서 받은 모든 재료로 요리를 하겠다는 셰프는 그 요리로 세계 평화에 기여하겠다고 소리친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는 홋카이도에 사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아 영화가 되었다.
일본 영화에는 한국인들이라면 손발이 오그라든다고 표현하는 대사들이 많다. 그런 대사들을 소화하기 어려울 때도 있지만, 일본 영화 특유의 분위기 속 자막으로 깔린 그 말들은 종종 가슴을 때리며 감동을 줄 때도 많이 있다.
지금 보이는 풍경을 소중히 여기며 즐거운 삶을 살길 바라
치즈 스승 오타니가 죽은 뒤 도시로 떠난 사야코가 보낸 편지 속 글귀는 영화 속에서 더 큰 무게로 다가온다. 도망치지 않는 삶, 받아들이는 삶, 싸우지 않는 삶, 감사하는 삶, 즐거운 삶, 이 모든 것이 하나로 이어지며 홋카이도의 자연과 그 자연과 어우러지는 삶을 살고 있는 영화 속 사람들의 모습으로 연결되었다. 그 연결이 아름답다고 느껴져서인지 오글거림이 감동이 되었다. 오늘은 지금 나에게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고 소중히 여기며 즐거운 삶을 사는 것으로 세계평화에 기여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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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해피 브레드(2011)'는 왓챠에서 볼 수 있지만 '해피 해피 와이너리(2012)'는 지금 국내에서 볼 수 있는 채널이 없다. 세 번째 영화가 나온 지금, 세 영화를 함께 볼 수 있는 채널이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읽었는데, 세 영화 모두 홋카이도 출신의 대표가 운영하는 제작사 크리에이티브 오피스큐에서 제작했고, 역시 홋카이토 출신이면서 홋카이도 중심으로 활동하는 연극 유닛 '팀 낙스'에서 활동하는 오오이즈미 요가 세 작품 모두에 주연으로 등장한다. 홋카이도에 서 온, 홋카이도 사람들에 의한, 홋카이도에 대한 영화이다. 홋카이도가 영화의 주인공인 것이 당연하다.
뜬금없는 덧글 2
집에 치즈용 나이프 세트가 있다. 연성 치즈용 경성치즈용 이렇게 나뉘어 있긴 하지만 뭐가 다른지 몰라 대충 손에 잡히는 대로 쓰고 있는데, 이번에 왜 경성치즈용 나이프가 짧고 뾰족하게 생겼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팔마잔 같은 크고 단단하며 아주 비싼 경성치즈 큰 한 덩어리를 자를 일이 아마도 없을 예정이라, 앞으로도 제 용도로는 사용하는 일이 없을 것 같다.
뜬금없는 덧글 3
영화 속에 등장하는 많은 먹거리 중 가장 입맛을 다시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우유'였다. 영화의 첫 부분, 얼어붙은 채 눈보라를 뚫고 와타루의 목장을 찾아온 코토에의 몸과 마음을 녹여주었던 우유, 상실의 고통을 극복하고 자신이 만든 치즈를 마주하여 긴장하고 있던 와타루에게 코토에가 건넨 한 잔의 우유. 목장이 배경이라 아마도 원유라 짐작이 되는 우유는 여러 처리를 거치지 않아서인지 노란빛을 띠고 있다. 너무나도 고소할 것만 같은 그 우유가 참으로 맛나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