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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명의여명 Jan 06. 2023

외로운 아이들에게 숲은 너그럽고 넉넉하다

버팔로 라이더(2015)- 조엘 소이슨


태국 감독이 쓴 각본으로 미국 감독이 연출하고 미국과 태국의 제작자가 공동제작하여 태국의 배우들이 연기하고 태국에서 촬영된 영화는 태국영화일까? 메인이 되는 제작사가 어디인가에 따라 영화의 국적이 분류되기 때문에 혹시라도 미국영화인가 싶어 찾아보았는데, IMDB에서는 이 영화를 태국영화로 분류하고 있어서 아시아영화 카테고리에 소개할 수 있었다. 다행이다.



사랑하는 엄마가 죽은 뒤 제니는 충격으로 말을 잃고 분노하여 세상과 담을 쌓는다. 미국인 양아버지는 이런 제니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외할머니가 있는 태국의 시골로 제니를 보내지만, 인터넷도 되지 않는 오지에서 제니는 자신이 외계인 같다. 아니 그들이 외계인인가? 다니기 시작한 학교에서 가정폭력과 학교폭력의 피해자인 말 못 하는 분로드를 만나 친구가 되고, 분로드의 유일한 친구이자 가족인 물소 삼리, 분로드, 제니는 서로를 공감하며 친구가 된다. 도시와 시골, 현대와 근대, 어른과 아이, 언어적인 폭력과 비언어적인 공감, 삶과 죽음 등 영화 속에는 서로 대립되는 상징들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제니와 분로드는 그 경계를 넘나들면서 서로의 상처를 이해하고 치유하며 성장한다.



제니의 할머니가 사는 곳은 태국의 촌부리주의 남쪽에 위치한 방글라멍 Bang Lamung, 유명한 휴양도시인 파타야가 있는 지역의 내륙이다. 처음부터 기괴한 곤충과자로 제니를 놀라게 한 할머니의 집은 버스를 내려서도 한참을 트럭 뒤에 타고 숲과 들판을 달리고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처음 본 친척도, 익숙하지 않은 음식도, 아이패드를 충전할 콘센트 하나 없다는 사실도 모든 게 낯설고 낯설다. 제니가 지각 때문에 선생님의 꾸중을 들으며 시계를 들고 서있는 동네의 천덕꾸러기 분로드의 손목을 잡고 교실을 빠져나온 것은 아마도 말을 하라고 닦달하는 선생님 앞에 묵묵히 서있는 분로드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길에서 분로드를 두고 돌아선 이유도 그렇게 아무것도 가진 게 없이 불우해 보이기만 하는 분로드에게 물소 삼리와 개라고 하는 가족이 있다는 것이 부러웠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다음날 제니는 동네 유지의 아들이 이끄는 무리들에게 폭행당하는 분로드를 구해주고는 그 무리에게 쫓겨 달아나고, 분로드는 그 와중에 떨어진 제니의 스케치북을 주워든다. 그렇게 도망치던 제니는 숲 속으로 들어간다.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는 숲 속의 나무들은 제니가 공책에 그린 나무귀신의 모습을 하고 있다. 무서운 나무귀신에게 도망치다 제니는 물에 빠지고 물에서 나온 곳에는 부처상과 그리고 분로드가 있었다. 그렇게 숲에 더 익숙한 분로드의 도움으로 분로드와 제니는 숲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그렇게 말도 통하지 않고 공유하는 것은 하나도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은 친구가 된다.



영화 속 태국의 자연은 우리에게 익숙한 휴양지의 모습이 아니다. 물소는 그 힘을 빌어 땅을 갈아야 하는 일꾼이고 논밭을 따라 흐르는 하천은 흙탕물이다. 포장되지 않은 길은 흙먼지가 일고 키 높은 야자수 나무나 바나나는 의외로 많이 보이지 않는다. 축축한 열대우림이어서 앞으로 전진도 못 할 정도로 우거진 정글일 것 같은 숲 속의 환경은 의외로 낙엽이 많이 깔려 푹신해 보이는 토양을 가진 해가 잘 드는 공간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대벌레도 보이고 아마도 제작팀에서 놓치고 치우지 못한 듯 보이는 거미줄도 화면을 가로지른다. 나무가 뒤틀리는 소리는 나무귀신의 악몽을 꾸는 제니에게는 조금 견디기 힘든 것이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공포의 공간이었던 숲은 물에 빠진 제니가 물에서 나오는 순간 특별한 공간으로 바뀐다. 새소리가 들리고, 나뭇잎을 비켜가며 내려오는 햇살은 다정하다. 나뭇가지가 밟혀 부러지는 소리도 공포가 아닌 기대이다. 그리고 제니의 스케치북과 가방을 건네는 브로드와 눈으로 인사하는 제니를 내려다보는 인자한 얼굴의 불상이 있다.



혹, 황순원의 '소나기'가 생각나지는 않는가?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소녀와 소년의 이야기는 아주 많은 곳에서 너무나 많이 이야기되어왔기 때문에 새로울 것이 또 있을까 싶었는데, 태국의 신화 속 판타지와 지극히도 현실적인 가정폭력과 지역텃세를 버무리니 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그 모든 이야기 속 숲과 자연은 두 사람의 간의 차이를 허물고 서로를 이해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숲 밖의 세상에서 제니에게 도움을 받은 분로드는 숲 안의 세상에서는 제니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가 된다. 숲이라는 공간에서 두 사람의 힘은 역전되고 그 역전된 상황을 경험하여 둘은 나란히 마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이 아마 숲의 힘, 자연의 힘이 아닐까?



어린이가 주인공인 영화에서 숲과 자연의 역할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숲은 어떤 불행과 슬픔을 가진 아이도 포용한다. 그곳에는 불쌍한 아이가 없다. 모두 같은 눈높이에서 눈을 맞추고 인사하는 이들뿐. 어쩌면 이리도 너그럽고 넉넉한 숲을 알게 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외로움을 안고 있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뜬금없는 덧글 1

대사 한마디 없는 제니의 역할을 연기한 배우는 누구일까 찾아보았다. 알고 보니 제니역을 맡은 배우는 이영화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고, 분로드 역할을 한 배우도 이전에 한 번 단역으로 영화를 찍은 적이 있지만 이 영화를 끝으로 더 이상 연기는 하지 않은 듯하다. 아무래도 뭔가 어색하고 뻣뻣한 이 어린 배우들이, 어쩌면 이 영화를 더 사실적으로 생동감 있어 보이게 하는 것 같다. 그 들이 숲 속 장면을 찍을 때 어땠을까?



뜬금없는 덧글 2

영화 속에는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이런저런 상징과 시각적 메타포로 가득하다. 그리고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대사가 한 마디라도 있는 캐릭터들은 거의 다 평면적이지 않은 복잡한 캐릭터의 소유자들이다. 영화에서 설명해 주지 않는 이야기, 얼마나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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