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물은 어쩌면 목표에서 눈 돌린 내가 만든 환상일 뿐...
각자에겐 서로 다른 속도가 있다.
누군가는 한 발을 내딛는 동안, 누군가는 반 발조차 떼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왜 굳이 그 속도를 서로 비교하며 나아가려 할까?
나 역시 속도가 느린 편인지 모른다.
무언가를 해야 할 때 결과가 빨리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지고, 늦게 출발한 사람이 나보다 먼저 앞서 있을 때 부러움보다 먼저 “나는 잘못된 길을 가는 건가?”라는 의심이 찾아온다.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고, 선택을 잘못한 것 같아 흔들리기도 한다.
알면서도 멈추기 어려운 순간이 있다.
나의 잣대를 타인에게 대입하는 순간 무너지는 건 늘 나 자신 뿐이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막상 비교 앞에서는 스스로를 바닥까지 끌고 간다.
사람은 ‘아는 것’과 ‘마주한 상황’ 사이에서 늘 흔들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까?
지금의 힘든 시간이 어떤 결과로도 이어지지 않을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같은 출발선에 있었던 사람들이 이미 저 멀리 보이면 “나는 아닌가 보다” 하고 너무 쉽게 포기해 버린다.
그러나 사람은 처음부터 각자의 속도로 태어난다. 왼손잡이에게 갑자기 오른손으로 생활하라 하면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능력과 적성의 속도 역시 제각각이다.
비밀스럽게 다 다른데, 우리는 그것을 보지 못한 채 남의 속도에 나를 억지로 끼워 맞추려 한다. 어쩌면 그만큼 인간은 나약한 존재라서 일 것이다. 그러니 흔들려도 된다.
타인과 비교되고, 자존감이 낮아지고, 스스로가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순간이 와도 그건 이상한 게 아니라 사람이기에 당연한 일이다. 다만 그 속에서도 나를 믿었으면 한다.
속도를 맞추려 하지 말고, 지금의 걸음으로 묵묵히 걸어가기를.
내가 좋아하는 문장이 있다.
“장애물이 생겼다는 건 목표에서 눈을 돌렸기 때문이다.”
지금 보이는 장애물은 어쩌면 내가 만들어낸 것일지도 모른다.
애초에 타인과 나는 다르게 태어났고, 서로를 제대로 알지도 못한다.
그러니 타인의 속도를 따라가느라 정작 목표에서 눈을 떼지 않기를 바란다.
그저, 지금의 걸음으로 너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