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의 틈을 만들자...
생각이 쌓여 고민이 되고, 그 고민들이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또 생각한다. 멈추면 되는 걸 알면서도 멈추지 못한다. 아마도 고민이라는 건 정답이 없어서 더 달라붙는 게 아니라, 정답이 없는데도 자꾸 정답을 요구하기 때문에 더 커지는 것 같다. 오늘 안에 결론을 내야 할 것처럼, 지금 이 순간에 내 인생이 통째로 걸려 있는 것처럼.
근데 고민은 늘 한 가지 얼굴로만 오지 않는다. 어떤 건 분명 오늘의 문제인데, 동시에 내일도 따라올 것 같고, 또 어떤 건 당장 손댈 수 없는데도 자꾸 ‘지금 여기’에 눌러앉아 나를 붙잡는다. 그래서 고민이 힘든 건, 해결의 순서가 아니라 마음의 속도를 먼저 빼앗아 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생각이 앞질러 달려가 버리면, 나는 내 하루를 살기도 전에 이미 지쳐버린다.
유튜브에서 우연히 보게 된 어떤 래퍼 영상에 100년 뒤다 사라질 존재라는 가사의 의미가 와닿았다. ‘어차피 다 사라질 거’라는 말이 허무가 아니라, ‘그러니 오늘을 더 살아도 된다’는 쪽으로 기운다. 지금 이 마음이, 지금 이 불안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이 오히려 나를 살려준다. 지금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아서 무너지는 건데, 사실은 끝난다. 끝나고, 또 다른 고민이 온다. 그게 인생이라면… 적어도 이 고민 하나 때문에 내가 무너질 필요는 없지 않을까.
물론 말처럼 쉽지 않다. 어떤 날은 잠시 멈추자라는 말이 어려운 숙제가 되지만, 머릿속은 계속 같은 장면을 반복 재생하고, 마음은 계속 같은 문장을 되뇌고, 몸은 그 생각을 따라가기 마련이다. 그럴 때는 멈추려는 의지보다, 멈출 수밖에 없게 만드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산책을 나간다거나, 물을 끓여 차를 한 잔 만들거나, 씻고 나와 머리를 말리거나, 불을 좀 낮추고 침대에 눕거나. 별거 아닌 일들이 오히려 생각을 뚝 끊어 주기도 한다.
나는 가끔 아무도 신경 안 쓸 고민이라는 말을 되뇌기도 한다. 그 말이 내 고민을 무시하려는 게 아니라, 내가 나를 너무 몰아붙이지 않기 위해서. 세상이 생각보다 나한테 관심이 없다는 사실은 외로울 때도 있지만, 동시에 다행이기도 하다. 내가 조금 느려져도, 조금 넘어져도, 세상은 계속 돌아간다. 그러면 나도 굳이 나를 몰아세우지 않고, 다시 일어날 시간 정도는 가져도 되는 것이다.
그 고민을 지금 당장 가지고 있는다고 해결되지 않는다면, 그냥 잠시 생각을 멈추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멈춘다고 도망치는 게 아니라, 숨을 쉬기 위해서. 생각이 나를 다 태우기 전에, 나를 조금 남겨 두기 위해서. 차지연의 노래 가사처럼 살다 보면 살아진다는 말이 어쩌면 살아본 사람들의 메시지가 아닐까
고민으로 무너지는 하루를 보내기보단, 잠시 생각을 놓고 밖을 본다거나, 혹은 샤워나 음악을 듣고 눈을 감는다거나 이런 식으로 잠시 놓아보는 시간을 만들어보자.
잠시 몇 시간 정도의 시간이 어쩌면 지금의 나를 바꿀 수도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