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두려움
알면서도 못 하는 선택이 있다.
해야 하는 걸 안다. 지금이 아니면 더 늦어진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도 손이 멈춘다. 마음이 먼저 몸을 잡아당겨서, 나는 자꾸 같은 자리에서 제자리걸음을 한다. “조금만 더 생각해 보자”라는 말로 오늘을 넘기고, 오늘이 쌓이면 선택은 더 무거워진다. 선택이 커진 게 아니라, 내가 그 앞에서 점점 작아지는 쪽에 가깝다.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한다. 나는 선택이 무서운 게 아니라, 선택 이후가 무서운 거라고.
결정하고 나면 달라질 표정들이 있다. 관계의 방향이 바뀔 수도 있고, 누군가가 실망할 수도 있고, 내가 틀렸다는 걸 확인해야 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무서운 건 그 장면들 끝에서 내가 나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질까 봤다. “역시 나는…” 같은 말이 내 안에서 쉽게 자라나는 걸 아니까.
내가 가장 자주 멈추는 시간은 이상하게도 밤이다.
하루가 끝나면 용기가 생길 줄 알았는데, 오히려 반대다. 불을 낮추고 침대에 눕는 순간, 미뤄둔 선택들이 또렷해진다. 몸은 쉬고 싶은데 머릿속은 계속 다음 장면을 재생한다. ‘그 말을 하면 어떤 반응이 올까.’ ‘그 결정을 하면 내 생활은 어떻게 바뀔까.’ ‘괜히 건드렸다가 더 엉망이 되면 어떡하지.’ 생각은 성실하게 최악을 준비한다. 그래서 나는 안전한 쪽을 고른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쪽. 변하지 않는 쪽. 그런데 그 안전은 이상하게도 편하지 않다. 내 안에 작은 죄책감이 함께 눌러앉아서, 매일 조금씩 나를 갉아먹는다.
아들러 가는 “인생에서 가장 큰 위험은 지나치게 조심하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무조건 용감해져라’로 읽지 못했다. 그냥 “아, 내가 지금 너무 조심해서 내 삶을 계속 늦추고 있구나”로 읽혔다. 조심은 나를 지키지만, 과하면 나를 멈추게 한다. 그리고 멈추는 시간이 길어지면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고 습관이 된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는 표정으로 굳어버린다.
사실 원래라는 건 스스로를 포장하기 위한 말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떤 선택에 대해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려고 만드는 것들임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그 안에 자신을 끼어넣어 스스로를 낮추기도 한다.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사람은 없다지만, 아마도 나약함을 증명하는 하나일 것이다.
강함과 나약함은 모두 나로부터 나오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나약함을 선택해 버리는 것 그것이 지금을
또는 내일을 피폐하게 만드는 것이다.
사실 “원래”라는 말은 스스로를 포장하기 위한 말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떤 선택 앞에서 책임을 피하고 싶을 때, “난 원래 이런 사람이야”를 꺼내 든다. 그 말은 핑계처럼 편해 보이지만, 동시에 나를 안쪽으로 밀어 넣는다. “나는 여기까지야.” “나는 이런 걸 못 해.” 같은 문장들이 내 등 뒤에서 조용히 나를 낮춘다.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사람은 없다고들 한다. 맞다. 누구도 일부러 나약해지려고 살지 않는다.
그런데도 어느 순간, 나는 나약함을 ‘증명’하는 쪽으로 기울어 버린다. 실패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너무 커지면, 차라리 시도하지 않는 사람이 된다. 상처받지 않으려다,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 된다.
강함도 나약함도 결국 나에게서 나온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종종, 강함을 선택하기보다 나약함을 먼저 선택한다. 그게 덜 아프니까. 덜 책임져도 되니까. 오늘을 넘기기 쉬우니까. 하지만 그 선택이 쌓이면, 오늘만이 아니라 내일까지 피폐해진다. ‘지금은 아닌 것’들이 늘어날수록, 나는 점점 더 작은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요즘은 이렇게 생각하려고 한다.
선택은 단번에 끝내는 결심이 아니라, 연습이라고.
완벽한 용기가 생겨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작은 움직임을 반복하면서 용기가 생긴다고. 오늘은 한 발만 옮겨도 된다. 결론까지 못 가도 된다. 대신 “원래”라는 말로 나를 덮지 말고, “지금은 겁이 나”라고 정확히 인정한 뒤에, 그 겁을 데리고 아주 조금만 앞으로 가보는 것.
선택은 나를 바꾸는 사건이 아니라, 나를 다시 선택하는 습관이다.
그러니 오늘 내가 할 일은 거창한 승리가 아니라, 한 번의 연습일지도 모른다.
두려움이 있는 채로도 움직여보는 연습.
그 연습이 쌓이면, 언젠가 나는 “원래”가 아니라 “그래도”라는 말로 나를 설명하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