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4
아침에 온 가족이 번갈아가며 날 깨워주었다. 나는 "조금만 더"를 힘겹게 뱉으며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잠을 청하다 간신히 일어났다. 엄마는 긴장한 표정으로 항암제를 드시고는 속이 쓰리신지 식사로 속쓰림을 잡아보려 하고 계셨다. 쌀밥과 함께 어묵볶음 조금, 덜 익은 김치, 감자 볶음이 전부인 식사였다.
식사하시는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입은 계속 오물오물 하고 계시지만 눈은 울음을 참고 계시는 듯 했다. 눈이 울먹이는 듯이 보였다. 처음엔 약 때문에 얼굴이 부어서 그렇게 보이는건가 했는데 다시 보니 곧 우실 것 처럼 보였다. 내 예상은 곧 현실이 되었다. 엄마는 울음을 터뜨리셨다. 식탁에서.
울고 계시는 엄마를 안아드리는데 아빠는 아무일 없다는 듯, 보이지 않는다는 듯 청소를 하고 계셨다. 아빠는 별일 아니라며, 기침 좀 하셔서 그런 것이니까 너무 걱정말라고 말씀하셨다. 평소와 달리 좀 무심하신게 이상하다 싶었다. 그래도 혼자 엄마를 달래드렸다. 아마 엄마는 요양원 가는 것 때문에 서러우셨나보다. 아빠는 청소하다 말고 식탁으로 오셔서는 엄마도 약한 마음 버리고 맘 단단히 먹어야 한다고 하셨다. 나도 엄마와 같은 마음으로, 엄마가 요양원에 가시는게 싫어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아빠가 야속하다고 느껴졌다. 아빠가 덧붙이시길 지금 엄마에게 가장 중요한 건 먹는 것과 깨끗한 공기인데 우린 아무 것도 제대로 챙길 수 없다고 하셨다. 새벽에 엄마의 기침이 끊임없이 계속되어도 아빠가 하실 수 있는게 없다고 하셨다. 그러니 엄마가 좀 외로워도 요양원에서 관리 받으시면서 치료를 하셔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아빠의 목소리는 조금 높아서 남들이 보면 화내신다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빠가 화가 나신거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아빠 아들이니까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아빠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널널해진 런닝 셔츠가 눈에 들어왔다. 살이 빠져 널널해진 런닝셔츠 때문인지 아빠가 부쩍 마르시고 야위어 보였다.
얘기를 마친 아빠는 벌떡 일어나셔서 화장실로 들어가셨다. 문이 쾅 닫혔다. 난 아빠가 상황에 대한 분을 못 참고 그러신건가 싶었다. 아빠 말씀을 듣고 다시 서럽게 눈물 흘리시는 엄마를 달래드리는데, 화장실에서 아빠의 흐느낌이 들려왔다. 못 들은척, 잘 못 들은거라 생각하기엔 우리집 화장실 문의 방음이 허술했다. 아빠가 우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나로써는 상당한 충격이었다. 아빠가 강조하시던, 무심함으로 포장된 '단단한 마음' 은 아빠도 원치 않으시는 것이었고, 아빠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던 것이다.
아빠의 흐느낌이 줄어들고 나서 아빠는 괜히 양치를 하시고 머리를 감고 나오셨다. 그러나 빨개진 눈은 양치질로도 샴푸로도 씻겨지지 않았다.
그런 상황의 집을 뒤로 하고 수업을 가기 위해 나오는데 괜시리 화가 났다. 어째서 이런 상황이 우리 가족에게 닥친걸까. 아빠가 그러시듯, 엄마가 그러시듯 병마가 불러오는 끊임없는 악재 앞에서 나 역시 무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