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간 관계에도 추억이 붙을 수 있는가.
나는 작은 것에 쉽게 연연하곤 한다. 어릴 때는 더더욱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도 고치지 못하는 습관 같은 게 바로 그거다. 이를 쉽게 정의하자면 ‘미련’이라 부르는데, 두자로 정의된 단어는 곧 내가 될 때가 많았다. 머릿속에 생각주머니가 하나 있다면 가장 큰 방에는 미련이, 그다음 큰 방에는 후회가 가득 차 있을 거라는 생각을 종종 했다. 다른 사람들이 쉽게 생각하는 것들은 내가 봤을 땐 결코 쉽지 않았고, 그들에게는 말이 그 자체일 때가 많았지만 나는 그 속의 뜻을 파헤치기 바빴다. 내게 뱉은 작은 말에도 쉽게 상처 받고 오래 아파했다. 그래서 이 습관이라는 녀석 때문에 웃는 날보다 우는 날이 더 잦았다.
그저 내 곁을 맴도는 사람들이 좋았고 스쳐 지나가는 관계도 허튼 관계로 두지 않았다. 소중했다. 그렇게 연연한 만큼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많이 웃고, 또 많이 울었다. 성격 테스트를 하면 꼭 대인관계 점수가 높았고 ‘정 때문에 망할 수 있음’이라는 전체적 소견이 나오기도 했다. 결과를 친구에게 보여주면서 마냥 웃을 수만도 없었다. 사람을 대할 때는 누구보다 진심을 다해서 사랑했지만 돌아오는 건 실망감뿐이었다. 무언가를 바라고 베푸는 건 아니지만, 진심을 다한 만큼 그들도 나와 같은 정도의 깊이를 사랑해줄 줄 알았다. 다수의 친구들과 있을 때 한 명이 기분이 안 좋아 보이면 나머지 다수보다 그 한 사람을 더 신경 썼고, 두 명과 네 명이 앉아있는 자리에서는 꼭 내가 그 두 명에게로 갔다. 네 명은 서운하다는 말을 하기도 했지만 나는 다수보다는 소수를 사랑했고 내가 있는 한 누구도 소외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됐다.
사실 오지랖이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오지랖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만큼 그들은 나를 생각하지 않았고, 그들 곁에는 회의감만 둘러쌀 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소수의 감정에는 크게 목메지 않았고 크게 관심을 두지도 않았다. 모두가 내 생각과 같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강요하고 싶지도 않고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이가 들수록, 관계에 돌아서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게 가장 먼저 찾아온 괴리였다. 꼬리에 꼬리를 물수록 나는 점점 멀어졌고 그들은 그들끼리 점점 더 가까워졌다. 나도 모르게 하는 ‘기대감’은 실망과 절망으로 옮길 뿐이었다.
나는 보기보다 철저하지 못한 사람이어서 쉽게 데었다. 양치를 하다가 물을 틀었는데 생각지 못한 뜨거운 물이 나와 손이 붉어진다거나, 빨래를 돌려놓고 다른데 정신이 팔려 널지 못해 새벽녘에 세탁기를 다시 돌리는 것만 봐도 그렇다. 남들은 우습게 여길 수도 있을 아주 작은 것들이 내게는 어렵다. 습관이어서가 아니라, 선천적이어서가 아니라 작은 것들은 내게 크고 소중할 때가 많았다. 오히려 큰 것들은 작고 얕을 때가 많았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늘 나를 붙잡고 흔드는 것들이었고 작지만 깊은 것들이었다. 돌고 돌아 크게 요동쳐 다가오곤 했다.
작은 것에 너무 깊게 연연하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내 곁을 떠났다. 쉽게 벌어진 관계는 한 곳으로 모으기 힘들지만 흔들리지 않으면 도저히 사랑할 수 없었다. 떠나는 것들조차도 사랑했던 것들이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흔적을 남기지 말 것.
진심을 다해 사랑하되 후회는 하지 말 것.
떠나가는 것들이 생겨도 너무 오래 잡아두지는 말 것.
한참 삼킨다. 한참 뱉는다.
은연중에 삼키는 말들은 곧 다짐이 될 때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