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셰와 창의성

by 브레첼리나

여러 곳에서 찾은 클리셰(Cliché)의 의미를 모아 보자면 '진부한 표현', '상투구', '고정관념' 정도가 된다. 주로 영화나 드라마같은 영상을 다루는 분야, 문학이나 시나리오같은 글을 다루는 분야에 쓰이지만, 간혹 디자인이나 예술분야에서도 쓰인다. 전체적으로 창의성이 드러나는 분야에서 쓰이는 비평용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예를 들어 우리가 영화에서 판에 박힌 듯한 연출방식을 보게 된다면 클리셰가 난무하는 영화였다고 평할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의 의미만을 가지고 클리셰의 모든 용법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사람들마다 생각하는 클리셰의 범위도 다르고, 시대마다 의미가 조금 변하기도 하고, 분야마다 다른 뜻으로 쓰여지기도 하니 말이다. 하지만 클리셰를 쉽게 정의할 수 없다 하더라도 그것이 창의성과 대조되는 용어라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


나는 디자인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가끔 로고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한다. 내 분야와 연결해서 클리셰에 대해 설명해 보자면, 예를 들어 독일과 관련된 로고디자인 프로젝트가 있다고 하자. 내가 만약 검정, 빨강, 노랑 세 가지 색으로 구성된 독일 국기, 브레첼(독일의 빵), 그리고 맥주를 심볼화해서 작업을 했다면 클리셰를 벗어나지 못하는 창의적이지 못한 디자인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클리셰를 다 빼고 나는 독일과 관련된 로고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부정적이다. 클리셰를 뺀다면 독일과 관련된 로고를 절대 만들 수 없다. 사람들이 로고를 봤을때 독일을 떠올리게 해야한다면, 디자이너들은 클리셰를 무시한채 새로운 독일을 만들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디자이너들은 클리셰를 버리지 않으면서도 매우 창의적이고 훌륭한 작업물을 내놓아야 하는 아주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인 것이다. (사실 디자이너들은 항상 이런 난처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물론 크리스토프 니만(Christoph Niemann)처럼 클리셰를 이용해 위트있게 작업하는 훌륭한 디자이너도 있다.


클리셰를 이용한 가장 좋은 예는 코미디 분야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략 패러디라고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데, 클리셰를 대놓고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에게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코미디 프로에서 중2병에 걸린 학생이 교실 창가 쪽 맨 뒷자리에 앉거나 창가에 걸터 앉아 사색하고 있는 모습을 연출한다면 클리셰를 이용한 코미디라고 볼 수 있다. 유일하게 클리셰를 그대로 가지고 오면서도 욕먹지 않고 오히려 창의적인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창의적인 일을 하면서 클리셰를 버리기란 쉽지 않다. 영화감독, 시나리오작가, 디자이너 그리고 예술가들은 그들의 작품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받고 사랑받기를 원할것이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게 대한 사람들의 거부감을 무시할 수 없고 또한 진짜 완전한 100% 창작물이란 불가능하기에, 클리셰가 들어간 작품들을 창의적이지 않다고 비판하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창의적이고 좋은 결과물이란 클리셰를 잘 활용한 작업이라 볼 수 있겠다. 클리셰를 다른 관점에서 해석해보기도 하고 아주 살짝만 비틀수도 있으며, 혹은 그것을 대놓고 활용할 수 도 있다. 나는 클리셰란 창의적인 작업을 하는 데 있어서 제일 먼저 필요한 소스(재료 또는 소재)라고 생각한다. 가장 직관적이며,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 딱 떠올리는 진부하지만 익숙한 것. 클리셰를 버리고 창의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고자 한다면 그 작업은 아무에게도 공감받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그것은 완전히 새로운 클리셰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일은 아주 아주 드물게 일어난다). 우리가 만일 클리셰를 긍정적인 요소로 본다면 작품을 만드는 입장에선 많은 사람에게 공감받을 수 있는 하나의 좋은 소재로서 작용할 것이다. 또한 감상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창작자가 클리셰를 어떻게 자기만의 것으로 활용했는지 보는 재미가 쏠쏠할 것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