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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레첼리나 Jan 11. 2021

디자이너에게 미래가 있을까?

지금 우리는 하루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단어들이 쏟아져 나오며 새로운 삶의 방식이 요구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내가 지금 갖고 있는 직업이 10년뒤에도 여전히 남아 있을지 알 수 없다. 나는 디자이너로서 다른 직업들 보다 변화에 더 빠르게 발맞춰야 겨우 살아남을 수 있다. 트렌드의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는데, 이제는 거의 다달이 새로운 트렌드가 나오는 것 같다. 새롭게 등장하는 디자인의 종류와 이름을 알아가는 것만으로도 벅찰 지경이다. 물론 변화가 설레고 즐거운 것은 사실이다. 사용하던 디자인 툴이 업데이트 되면 새로운 기능들이 생기고 작업효율이 높아져서 기분이 좋다. 그리고 더 쉽고 직관적인 툴이 나오기를 기다리게 된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디지털에서는 웹에서 모바일로)로, 이제는 디지털 내에서도 증강, 가상현실로 디자인의 무대가 옮겨지고 있다. 디자인이 더이상 손에 만져지지 않는다. 디지털로 만든 디자인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해서 업데이트 되어야만 한다. 원래 영원한 것은 없다지만 이렇게 빨리 소비되고 금방 사라지는 디자인을 만들다보니 내 삶 또한 디자인과 함께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것만 같다. 디자인이 채택되기 위해서는 트렌드를 고려해야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고려가 아니라 카피이다. 디자이너는 더 이상 창의적인 직업이 아닌 유행하는 디자인과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어야 하는 기계적인 직업으로 되버린 것 같다. 요즘은 더욱이 인공지능이 디자인을 하기도 하고, 많은 디자인 제작 플랫폼이 있어 누구나 디자인을 손쉽게 할 수 있는 시대이다.


반대로 디자이너로서 장점도 많다. 시대의 변화를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파악할 수 있고, 소수의 능력있는 디자이너들은 트렌드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좋은 점은 계속해서 공부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영감을 받기 위해 디자인 외에 다른 분야에도 관심을 많이 갖게 되어 시야가 넓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와 협업 프로젝트를 하기에 디자인만큼 좋은 분야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디자인을 하면서 반복되는 고민은, 과연 디자이너로서 나는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는가이다. 그저 클릭률을 높이기 위해, 한번이라도 사람들의 눈에 띄기 위해 디자인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서 겉만 번지르르하게 포장하는 내가 종종 사기꾼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CI(Corperate Identity) 작업을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기업의 정체성과 철학을 담아 열심히 작업한 결과물을 클라이언트에게 보여줬을때 반응이 좋지 않거나, 혹은 여러번의 피드백을 거쳐서 많은 시간을 들여 작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끝나지 않았을때는, 내가 무엇을 위해 혹은 누구를 위해 디자인 작업을 해야 하는가 심각하게 자문하곤 한다.  


시대와 사회의 변화는 디자이너에게는 좋은 동기 부여가 되기도 하지만, 종종 회의에 빠지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 시대에 디자이너로서 산다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그 가치관과 정체성을 깊이 성찰해야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디자인의 본질을 구성하는 어떤 불변의 원리나 디자인의 철학적 근본 토대 같은 것이 과연 있는지, 만일 있다면 그것을 끊임없이 변화하는 디자인의 실제에서 어떻게 항구히 보존할 수 있는지, 나는 우리 사회 변화에 디자이너로서 어떠한 태도를 취할 것인지, 그리고 유저들을 어떻게 고려하며 디자인할 것인지와 같은 여러 질문들에 대한 나만의 답변을 마련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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