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진, 편지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을 때

by 브레첼리나

성인이 된 후 처음 연애를 시작했다. 설레기도 했지만, 처음 느껴보는 감정들 앞에서 두렵기도 했다. 나에게서 낯선 모습들이 나타날 때마다 나는 나 자신에게 실망했다. 연애 상대에게 이렇게까지 내 감정을 쏟아낼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렇게 서툴고 낯설었던 첫 연애는 허무하게 끝나고 말았다.

첫사랑은 뜨겁지도 않았고, 오래 기억되지도 않았다. 그 사람이 내 머릿속에서 자연스레 사라져 갈 즈음,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났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스스로 받아들일 준비가 된 것처럼, 나는 아낌없이 사랑을 주었다. 내가 살고 있던 세상이 전혀 다른 세상이 된 것 같은 경험을 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나를 떠나버렸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알 수 없었다. 그 사랑의 아픔은 생각보다 오래갔다. 가슴이 타들어 가듯 아팠다. 나는 그 사람을 증오했고, 나 자신을 비관했다. 그와 함께했던 시간 속의 내가 부정당했다고 느꼈다. 도대체 내가 어떤 존재였기에 헤어지자는 말 한마디조차 들을 수 없었을까. 아니면 마지막 인사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비겁하고 초라한 사람을 내가 사랑했던 걸까. 그렇게 나는 수없이 그 사람과 나 자신을 미워했다.

그 후로 나는 사람을 믿지 않았다. 오직 나 자신만을 위해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사랑만큼 쓸데없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며, 철저히 나만을 위해 살았다. 그 시기에 나는 독일에 갈 마음을 먹고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다니던 대학교를 잠시 휴학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조금씩 모았다.

아르바이트를 하던 곳에서 나는 성실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나와 꽤 나이 차이가 나는 사람이었다. 어른스러웠고, 묵묵하게 성실히 일하는 사람이었다. 과묵했지만 자신의 감정에는 솔직한 사람 같았다. 그 사람과 함께하며 나는 지난 사랑에서 받은 상처들을 조금씩 치유받았다. 다시 사람을 믿게 되었고, 사랑이라는 위대한 힘을 진정으로 체험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나의 꿈을 위해 독일로 떠나야 했다.

우리는 헤어지지 않았다. 미래를 약속할 수는 없었지만, 다시 한국에 돌아왔을 때 만나면 될 거라 생각했다. 독일로 가는 날, 그 사람은 공항까지 나를 데려다주었다. 나는 독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내내 울었다. 그 사람과 헤어짐이 슬퍼서였는지, 아니면 그것이 마지막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다. 다만 평소 눈물이 많지 않던 내가 그렇게 눈물이 멈추지 않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두려울 것이라 생각했던 독일 생활은 나에게 엄청난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매일 독일어를 배웠고, 독일에서 보내는 하루하루 속에서 나는 성장하고 있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고, 새로운 문화를 배웠다. 한국에 있던 그 사람과도 자주 연락했다. 오늘 내가 무엇을 했는지 이야기했고, 가을쯤 독일에 와서 함께 여행하자는 말도 했다. 나는 그 사람과 함께할 유럽 여행을 혼자서 기대하고 있었다. 하루하루가 벅찼기에, 나는 그 사람이 느끼고 있을 감정들에 귀 기울일 여유가 없었다. 나는 어렸고, 그 사람은 어른이었다. 나는 매일 변화하고 있었고, 그 사람은 안정적인 가정을 바라던 시기였다.

어느 날, 여느 때처럼 통화를 하던 중 그 사람이 결혼하고 싶은 여자가 생겼다고 말했다. 뒤통수를 크게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그 사람에게 모든 분노를 쏟아냈고, 그렇게 우리의 관계를 끝냈다.

그리고 그해 가을, 나는 혼자 독일에서 유럽 여행을 떠났다. 혼자 걸으며 유럽의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다가 문득 그 사람에게 깊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상처들이 그 사람 덕분에 사라졌고, 다시 사람을 믿고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또, 나의 손을 놓아야 할 때를 알고 놓아주어서 고마웠다.

많은 사람들이 김광진의 <편지>를 좋아한다. 이 담백한 멜로디와 목소리는 사람들을 조용히 울린다. 아무렇지 않게 말하듯 노래하는 김광진의 목소리는 내 가슴을 과하지 않게 어루만진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나는 잊고 지냈던 그 사람이 떠오른다. 그 사람에게 너무 고마웠다고, 잘 지내시라고. 당신은 잊었지만, 당신의 따뜻한 마음만은 잊지 않았다고 말해주고 싶다.


https://www.youtube.com/watch?v=KkvFvmNPF-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