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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레첼리나 Feb 01. 2021

나는 왜 예술가가 아니라 디자이너가 되었는가

누구에게나 그런 시기가 오듯, 독일로 유학을 와서 졸업을 한 후 나 역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할 때가 있었다. 사람들은 유학까지 갔으면, 자기 미래에 대한 확신이 있을 거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예술학교에 다니는 동안 오히려 더 방황을 했었다. 막상 겪어보니, 학교에서 배웠던 예술은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애석하게도 그 다름이 나를 더 가슴 뛰게 만들지는 못했다.) 그리고 같은 학교에 다녔던 학생들과 졸업한 사람들의 삶을 보니, 예술가의 삶을 살아낼 자신이 없었다. 그 삶이 가난하고 고달파서가 아니라, 내가 꾸준히 예술작품을 만들어 낼 자신이 없었고 그 삶이 나를 행복하게 해 줄지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학교생활을 하며 내면의 방황을 했을 때, 내가 유일하게 재미있어했던 일은 디자인 잡지를 보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작업의 영감을 얻고자 보기 시작했는데, 예술과는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디자인의 세계에 점점 빠져들게 되었다. 잡지에서 본 디자인 작품들은 예술적이면서 동시에 세상과,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었다. 나는 이러한 작품을 만든 디자이너는 사람들에게 미적 경험뿐만 아니라 실제로 도움을 주는 이 사회의 영향력 있는 사람일 거라 생각했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예술에 대한 회의를 느꼈기 때문에 그 당시의 나는 더 디자인의 매료되었던 것 같다. 나는 예술작품을 만들고 나서 그저 나 스스로 만족할 뿐 어떠한 보람도 느끼지 못했다. 또한 예술가가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많은 의구심이 들었다.


학업에 집중하는 대신 나는 디자인을 독학하기 시작했고, 짧게나마 작은 예술 잡지사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실습을 하기도 했었다. 그래도 어쨌든 졸업은 해야 하기에 마지막 학기에는 졸업전시회를 준비했고, 다행히 졸업장을 받을 수 있었다. 디자인 경험도 있으니 졸업 후 디자이너로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실 취업준비를 하면서도 여전히 예술가로 살아야 할지 디자이너로 살지 마지막까지도 고민을 했다.


정말 운이 좋게 취업이 되어서 지금은 디자이너로 살아가고 있다. 일하면서 나는 디자인이 재미없다고 느낄 때도 많고, 이 생활이 너무 힘들다고 느끼기도 한다. 또 디자이너로서 앞으로 오랫동안 살아갈 자신이 없기도 하다. 학생 시절 예술에 대해서 똑같이 느꼈듯이 말이다. 하지만 디자인 일을 할 때는 예술에서 느꼈던 그러한 답답함, 고독함은 없다. 예술 자체가 답답하고 고독하다는 게 아니다. 예술을 해야 했던,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던 내가 느꼈던 감정들을 말하는 것이다. 현재 디자이너로서 나는 가끔 깊은 회의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내가 이 사회의 구성원임을 느끼고 보람을 얻는다. 디자이너로 살든 아니면 또 다른 직업으로 살든 나는 앞으로의 미래가 기대가 되고, 지금 디자이너로서의 삶이 앞으로의 나의 삶에 좋은 발판이 될 거라는 점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러한 의미에서 적어도 졸업 후의 나의 선택에 대한 후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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