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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레첼리나 Feb 08. 2021

지속가능한 디자인과 사회를 위해서

처음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라는 단어를 접한 것은 이태리에서 패션 경영을 공부하는 유학생을 통해서였다. 그 친구는 'Ermenegildo Zegna'라는 이태리의 명품 브랜드를 예로 들면서 이 기업이 지속가능 패션을 위해 어떻게 노력하고 있는지, 그리고 왜 지속가능 패션이 중요한지 알려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Zara나 H&M 같은 패스트 패션의 브랜드를 즐겨 입었는데, 이 개념을 접한 뒤에 사실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그 친구를 통해 나는 나의 무분별하고 생각 없는 소비가 지구에 얼마나 해를 끼쳤는지, 자연환경뿐만 아니라 윤리적인 부분에서도 얼마나 큰 해악을 끼쳤는지 크게 깨달을 수 있었다. 그 후로 나는 '지속가능 패션' 뿐만이 아닌 지속가능한 여러 분야에 대해 점점 관심을 넓혀 나가게 되었다.


내 분야인 '그래픽 디자인'에서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면, 대표적으로 패키지 디자인을 예로 들 수 있다. 소비자들도 환경문제에 대한 의식이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아마 앞으로는 많은 기업들이 친환경소재로 된 용기, 라벨 그리고 포장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디자이너인 나는 어떻게 지속가능한 디자인을 해야 할 것인가? 우선 지속가능성에 대한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단순히 친환경소재만 사용한다고 해서 지속가능성을 실천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소비자에게 지속가능한 사회를 같이 만들자고 내가 만든 디자인을 통해 설득해야 하는 것이다. 소비자들의 의식이 변해야 하고 소비의 패턴을 변화시키는 디자인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디자인을 이쁘게 하는 것에만 머무를 것이 아니라 소비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디자인하고, 더 나아가 사회와 인간의 삶 자체를 디자인할 수 있어야 나 역시 지속가능한 디자이너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독일은 한국보다는 지속가능에 대해서 아마 조금은 앞서 있다고 볼 수 있겠다. 그 이유는 이곳에는 오래전부터 국민들이 지속가능함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또 여러 가지를 실천해 왔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물이나 음료수, 맥주를 살 때 알루미늄 캔과 페트병 및 유리병에 약간의 보증금을 추가로 내고 사야 하는데, 빈 용기를 마트에 다시 갖다 주면 보증금을 다시 돌려받는다 (이것은 독일에서는 이미 일상 문화로 정착되어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용기의 수거율, 그리고 재활용률을 높이는 것이다. 그리고 과일이나 야채를 낱개로 구매할 때는 비닐 대신 각자 개인의 장바구니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최근에는 여러 슈퍼마켓에 소위 '우유 자동판매기'가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유를 구매하려면 각자 빈 병을 따로 가지고 와서 이 기계에서 우유를 받아가면 된다. 그리고 식당에서 음식을 포장할 때도, 일회용 포크나 비닐은 웬만하면 사용하지 않는다. 이미 많은 가게에서 친환경 소재로 된 포장용기를 사용한다. 하지만 독일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현명하게 소비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나는 이러한 시스템이 한국에도 똑같이 도입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수용 주체의 조건들을 고려하지 않은 무비판적이고 무조건적인 답습은 오히려 실패로 끝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속가능성에 대해서 우리 모두가 깊이 공부해야 할 필요성은 느낀다. 수박 겉 핥기 식으로만 안다면, 우리가 지속가능성을 단지 슬로건으로만 받아들이고 깊이 있게 성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린마케팅(green marketing)을 하는 많은 기업들에게 이용당하기만 할 것이다 (그런 기업들 중 대부분은 실상에 있어서는 '그린워싱'(green washing)인 경우가 허다하다). 지속가능한 사회 그리고 더 나아가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드는 일이란 사실 생각만큼 쉽지 않다. 어느 특정 분야만이 아닌 모든 분야에서 실천을 해야 겨우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디자이너로서, 그리고 한 명의 소비자로서 나는 어떻게 해야 진정한 지속가능성을 실천할 수 있을지 고민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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