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는 끝에 몰린 사람이 해내는 직업이다. 이것 못 팔면 우리 아부지 굶는다, 우리 엄니 얼어붙는다, 내 형제들 팔려나간다, 이런 자세로 팔 것."
처음 장사라는 걸 해보겠다고 나섰을 때였다. 오랜만에 안부도 여쭐 겸 스승님께 메일을 드리면서 근황을 전했더니, 저 두 문장이 적힌 답장이 날아왔다. '그 정도 각오쯤은 이미 해두었으니, 얼른 돈 많이 벌어 맛있는 식사 대접하겠다'라고 호기로운 답장을 다시 보냈던 것 같다. 제자를 그리 못 믿으시다니.
내 첫 사업 종목은 카페였다. 20대 중반 즈음이었는데, 당시 삼청동 쪽에 한창 와플 카페가 유행이었더랬다. 긴 웨이팅 끝에 맛본 와플은 길거리 노점상에서 사 먹던 사과잼 바른 천 원짜리 와플과는 차원이 달랐다. 와플 한 장을 굽고 거기에 바나나 몇 조각과 아이스크림 한 스쿱, 아몬드 슬라이스와 슈가 파우더, 초코시럽을 얹어주자 만 원이 넘는 고급 디저트가 됐다. 그래, 이거다.
그렇게 유명한 카페 두어 군데를 더 다녀본 후에 나는 바로 와플 카페를 해보기로 결심했다. 서울에서 막 붐이 일기 시작했고, 내가 살던 지역에는 아직 이런 카페가 없으니 내가 선점해보자 싶었다. 마침 이모가 대학교 근처에서 호프집을 하시다가 잠시 쉬고 계셨기 때문에 가게를 구하는 데는 큰 부담이 없었다. 절호의 기회였다.
다음날 바로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무턱대고 가게 오픈 준비를 시작했다. 해외구매대행 사이트에서 와플 기기를 주문하고, 집기류와 재료들을 구매했다. 가게를 꾸밀 내 취향의 소품들을 사러 다니면서 피곤한 줄도 모르고 그저 신이 났다. 그렇게 한 달도 되지 않아 카페를 오픈했다.
여기서 잠깐. 지금까지 읽고 나서 어떤 생각이 드셨으려나. 일사천리라거나, 결단력에 추진력까지 있다고 생각했다면 당신은 틀렸다. 잘 생각해 보시라.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나는 그때까지 와플을 한 번도 구워본 적이 없었다. 어떤 재료를 어떤 비율로 섞어 얼마나 구워야 하는가 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연구 과정이 스킵됐다. 고작 몇 번 구워서 가족들에게 시식을 시켰을 뿐, 가게를 오픈할 때까지 나만의 레시피는 완성되지 않았다.
그러니 이 카페가 흥할 리가. 같은 재료 비율로 만드는 와플이었지만 매번 상태가 달라 당황스럽기 일쑤였고, 일관된 맛을 유지하는 방법은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준비되지 않은 가게는 손님들이 귀신같이 알아챈다. 특히 음식 장사는 첫 번째 방문에 입맛을 사로잡지 못하면 두 번은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차차 나아진다는 건 없다는 얘기다. 결국 관심을 보이며 카페를 찾던 발걸음들이 점점 줄기 시작했고, 반년 정도 지난 후에 간판을 내렸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다. 도대체 나는 장사를 얼마나 가볍게 생각하고 장난처럼 덤볐던 것인가. 그때 손님으로 왔던 모든 분들에게 일일이 환불해 주며 사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리고 이런 무모한 실수를 일찌감치 선행학습해 준 어린 시절의 나에게 고마움마저 느낄 정도.
그렇게 가게를 접고 난 후 뒤늦게서야 스승님의 당부를 다시 떠올렸다. 나의 가벼움과 무모함을 스승님은 어찌 그리 잘 아셨을까. 물론 이후에도 끈기 없이 꽤 많은 직장과 자영업을 거쳐오긴 했지만, 어느 자리에서건 마지막 순간에 한 번 더 이를 악물게 하는 주문이 되어주었다.
장사는 장난이 아니다. 나와 내 가족의 입으로 들어가는 밥술을 오롯이 내 손으로 책임져야 한다. 절박할 수밖에 없고, 악착같아야만 한다. 만약 장사를 생각하고 있다면, 혹은 하던 장사를 그만둬야 할지 고민 중이라면 잠시 멈추고 스승님의 두 문장을 천천히 되뇌어보길 바란다. 당신은 '이런 자세'로 장사에 나설 준비가 되었는가. 그동안 '이런 자세'로 장사에 임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