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저분한 이력서'라는 브런치북 제목처럼 이것저것 많이 하며 살았다. 사회생활 20년 하면서 거쳐온 직업만 13개. 평범치 않은 이력임에는 분명하다.
그 가운데 장사 경험도 제법 있었는데, 분식집이나 카페처럼 음식을 만들기도 했고 온라인 쇼핑몰, 편의점처럼 판매를 하기도 했다. 도대체 그때의 나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지금도 그렇지만 젊은 시절의 나는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도, 용기가 두둑한 사람도 아니었는데 말이지. 아마도 그 시절 나는 똥인지 된장인지 꼭 먹어봐야 아는 사람이었던 거 같다. 그래도 그 무모함 덕분에 나는 내가 장사에 소질이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됐고, 그래서 미련도 없다.
내가 장사 체질이 아니라고 느낀 몇몇 이유가 있는데 일단 나는 셈에 젬병이고, 더 큰 매출을 위해 손해를 감수할 줄 아는 배짱이 전혀 없다. 이건 장사하는 사람에겐 분명 치명적인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사장님 마인드 부족'이었다.
내 마지막 장사는 편의점이었다. 30대 중반에 1년 반 정도 했다. 편의점은 위치의 특성에 따라 점포마다 주요 판매 물품들이 다른데, 내가 있었던 편의점은 지방 대학의 강의동에 위치해 있어서 FF(Fresh Food, 도시락·샌드위치·햄버거·삼각김밥·빵·김밥·유제품 등 신선하게 유지되어야 하는 상품) 매출이 컸다. 학교 식당까지 꽤 멀어서 연강이 있는 학생들이 편의점 음식들로 식사를 대신했기 때문이다.
하루에 삼각김밥 300개, 줄김밥 200개, 햄버거랑 샌드위치 100개 정도 팔았던 것 같다. 24시간이 아니라 오전 7시부터 오후 8시까지 13시간 운영했던 걸 감안하면 보통 편의점에서는 생각지도 못하는 물량이다. 지금 생각해도 저걸 어떻게 다 팔았나 싶게 까마득하다.
나는 진짜 열심히 일했다. 밤 11시에 퇴근해 새벽 4시에 일어나는 생활을 반복했다. 해도 뜨지 않은 새벽 시간에 산 속 외진 곳에 있는 편의점까지 걸어서 출근할 때마다 무서움을 떨쳐내려 노래를 흥얼거렸다. 일하는 동안에는 알바 친구들을 어화둥둥 모시고 지냈다. 물건이 배달되면 알바 친구들을 카운터에 앉혀두고 산더미 같은 물건들을 내가 다 옮겼고, 청소도 내가 했다. 월급날이면 몇 만 원씩 더 얹어서 넣어줬다. 좀 더 챙겨주면 더 만족하면서 일도 잘해주겠지 생각하면 내 월급 몇 만 원 빼는 건 문제도 아니었다. 그런 마음으로 매달 회식도, 생일도 꼬박꼬박 챙겨줬다. 퇴근하면 온몸이 멍투성이에 수면 부족으로 종일 비몽사몽 지냈지만, 괜찮았다. 그래야 내 마음이 편했으니까.
내 사업이니 내가 제일 열심히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사람을 부리면서 스트레스받는 것보다 내가 좀 더 움직이고 몸을 쓰면서 피곤한 게 낫다 싶었다. 하지만 당장은 괜찮았을지 모르지만, 길게 보면 옳지 않은 생각이었다. 결국 몸도 마음도 쉽게 지쳐버렸고, "자선사업 하냐"라는 비웃음 섞인 농담을 들으면서 장사를 접었다. 좀 더 현명하고 노련한 사장님 마인드가 필요했었다.
편의점 이전에 했었던 분식집이나 카페는 나 혼자 꾸려갔기 때문에 그 '사장님 마인드'의 중요성을 몰랐다. 그저 손님을 향한 서비스 정신만 확실하면 된다고 생각했었고, 그런 면에서는 제법 자신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누군가를 고용해 일한다는 건 손님에 대한 것과는 또 다른 서비스 마인드가 필요한 것이었다. 내 성격으로는 쉽지 않았다.
그나저나 수백 개의 김밥과 햄버거, 도시락을 진열하면서 언젠가는 꼭 종류별로 다 먹어봐야지 벼르곤 했었는데, 결국 그러지 못했다. 유통기한 내에 팔지 못해 폐기가 생기는 게 아까웠던 소심한 성격 탓에 발주량은 늘 적었고, 그나마 나오는 폐기 제품들은 알바 친구들 손에 쥐어줬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득 진열된 걸 보는 것만으로도 배부르고 좋았더랬는데.
역시, 이번 생에 장사는 글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