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 사수'였다

스물셋. 대학을 졸업하고 드디어 사회생활이 시작됐다. 첫 직장은 방송국이었다.


어디는 안 그렇겠냐마는, 방송국은 정말 전쟁터였다. 9 to 6의 굴레에서 벗어나 있는 대신 아예 출퇴근의 개념이 없었다. 누구 하나 삐끗하면 곧장 방송사고로 이어지는 긴장 속에서 다들 영혼까지 갈아 넣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신입을 챙겨주는 여유는 감히 바랄 수도 없는 일. 무서웠다.


막내작가는 다 잘해야 했다. 기본업무인 자료조사도 잘해야 했고, 경계하는 인터뷰이를 설득하는 능력도 필요였으며, 무엇보다 돌아가는 흐름을 파악하면서 필요한 걸 재빠르게 해내는 눈치와 센스가 필수였다. 그동안 알바하면서 찍먹 해봤던 사회생활과는 달랐다. 실수와 꾸지람과 자책의 무한반복 속에서 구르다 보면 금세 너덜너덜해졌다.


이미 베테랑인 회사 사람들은 시간에도 야박했다. 출근하고 일주일 정도 지났을까. 이미 나는 천둥벌거숭이 같은 막내로 평가되고 있었다. 덤벙대고 허술하고 무대포인. 왜 가르쳐주는 데는 인색하면서 평가와 지적에는 과하게 반응하는 걸까. 신입의 필수코스인 '화장실 오열'을 몇 차례 겪으면서 진지하게 퇴사를 생각했다.


그러다가, '큰언니'가 등장했다. 막내 중에 가장 나이와 경력이 많았던 큰언니가 내가 출근을 시작한 날부터 2주간 휴가를 보낸 후 컴백한 것이었다. 큰언니라고 해봤자 스물일곱이었지만 나에게는 어른이었다. 큰언니는 정말 달랐다. 모든 일을 침착하고 나이스하게 해냈는데, 나는 몇 번이고 속으로 감탄을 내질렀다. 그래, 저렇게 일해야 하는 거구나! 일머리도 없는데 숫기까지 없던 나는 언니에게 다가가지도 못하고 곁눈질로 흘끔흘끔 그 유려한 일솜씨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큰언니가 먼저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그날부터 큰언니는 내 사수였다. 프리랜서들이 모여 팀별로 일하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정식으로 사수가 있었던 것도, 굳이 해줘야 하는 것도 아니었으니 내가 사수로 삼았다는 게 맞겠다. 다들 정신없이 자기 일 하기도 벅찬 상황에서도 큰언니는 틈틈이 업무 팁들을 전수해 줬다. 마치 전쟁통에 굶어 죽어가는 갓난 동생에게 마른 젖을 물리는 언니 같았달까. 자신이 시간을 들이고 몸을 쓰며 익혔던 것들을 거저 내어주는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어찌어찌 우당탕탕 시간이 지나고 출근 한 달째. 드디어 내가 참여해 만든 첫 번째 방송이 마지막 편집을 앞두고 있었다. 사흘 밤을 새우고 비몽사몽 하면서 편집실로 가는 길. 큰언니가 포스트잇 붙은 박카스 하나를 두 손에 꼬옥 쥐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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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일주일 만에 퇴사를 생각했던 나는 사수 덕분에 일 년을 더 버틸 수 있었다. 일이 어느 정도 익숙해졌을 때 즈음부터는 큰언니와 이야기가 통하고 제법 도움도 줄 수 있게 되었는데, 그게 그렇게 기쁘고 뿌듯했더랬다. 이후 나는 다른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옮겼고, 먼저 옮겼던 큰언니는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과 함께 캐나다로 이민을 가버렸다. SNS도 제대로 없던 시절이라 유일한 창구였던 싸이월드가 닫히면서 연락이 끊기고 말았다.


이후 후배들을 받을 때마다 좋은 사수, 다정한 선배가 되려고 노력했으나 역시나 쉽지 않았다. 늘 내 코가 석자였고, 가르쳐줄 만한 노하우도 설익어서 내놓기 부끄러웠다. 다만, 더딘 후배들에게 한 번 더 눈길을 주고 살가운 말 한마디 더 하려고 애썼다. 내가 큰언니에게 받았던 것 중에 '먼저 내밀어준 손'이 제일 고맙고 도움이 됐었으니까.


큰언니의 포스트잇은 부적처럼 무려 20년이나 내 지갑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 잡았다. 다짐의 용도로 넣어뒀지만 반성용으로 꺼내보는 날들이 숱했다. 시간이 흘러도 사고를 치지 않는 것도, 잘하는 것도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재작년에 지갑을 잃어버리게 되면서 영영 이별하고야 말았는데, 지금까지도 아쉽고 또 아쉽다. 다행히 사진 한 장 찍어둔 게 있어서 이렇게 가끔 꺼내볼 뿐.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 하늘 같던 메인작가 선배들도 고작 30대 초중반에 프리랜서 신세였으니 자신의 실력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얼마나 치열했을까. 늘 날이 서 있고 매정했던 그들을 이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어서 나이 드는 게 나쁘지만은 않다.


어느 직장에서든 사람 때문에 힘들고, 사람 때문에 힘이 난다. 특히, 첫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사회생활의 강렬한 첫인상을 만들어주는 '엄마 오리'같은 존재다. 당신이 만약 선배의 입장이라면 미운오리새끼에게마저 좋은 엄마 오리가 되어주길 바란다. 그리고 만약 직장에서 사람 때문에 힘이 들어 고민 중이라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길 바란다. 지저분한 이력서를 가진 내가 꼰대 같은 소리 좀 해보자면, 어차피 어딜 가도 비슷하다. 그럴 땐 차라리 내가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주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주변을 천천히 돌아보자. 내가 먼저 손을 내밀고 마음을 써줄 만한 사람이 분명히 보일 것이다. 한 번 시도해 보고 사직서를 던져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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