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불 님, 저 옮겨요."
1년 전까지 같은 팀에서 일하던 동료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왔다. 아아... 나도 모르게 탄식이 흘러나왔다.
'어공'. 이제는 많은 이들이 아는 '어쩌다 공무원', 즉 임기제 공무원으로 일했었다. 일반 공무원들이 담당하기 어려운 전문분야의 일들을 하기 위해 계약기간을 정해두고 채용되는, 공무원 세계의 계약직 같은 자리다. 내가 일했던 팀은 업무특성상 팀장부터 대여섯 명의 팀원까지 모두 어공이었는데, 그래서인지 참 다사다난했다.
내가 겪은 바에 따르면 '늘공', 즉 일반 공무원들이 생각하는 어공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첫째는 '존재 없음'. 어차피 전문적인 영역의 일을 하는 계약직들이니 업무로 엮일 일도 없고, 싫으나 좋으나 한 직장에서 퇴직하는 날까지 얼굴 봐야 하는 사이도 아니니 굳이 애써 가까워질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다.
둘째는 '눈엣가시'. 이건 보통 상급 공무원일수록 많이 나타나는 양상인데, 본인들이 모르는 영역의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100% 업무파악이 안 된 상태에서 컨트롤해야 한다는 불안감에서 비롯된다. 연차가 올라갈수록 안 돌아본 부서가 없고, 조직 내 모르는 일이 없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다 보니 업무상 부딪히는 경우가 잦다. 어공들의 업무 프로세스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사들은 무리한 업무지시를 내릴 때가 많고, 하다 하다 현실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임을 이해시키려다 보면 자칫 말끝마다 딴지를 거는 '명령 불복종'의 하극상으로 비춰지는 것.
셋째는 '도우미'. 이 경우는 늘공을 어떻게 이용해 먹느냐에 따라 두 부류로 갈라진다. 어공의 계약 연장권한을 쥐고 있다는 핑계로 머슴처럼 부리는 늘공은 잘못된 경우, 어공을 전문가로 인정하고 협조를 구하며 자신의 업무 시너지를 높이는 늘공은 바람직한 경우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런 현명한 이는 극히 드물다. 아쉬운 일이다.
어찌 됐든, 늘공이나 어공이나 어차피 국민을 위해 일하는 건 매한가지라고 생각하며 일했다. 늘공들은 몇 년씩 공시생으로 죽어라 공부하며 얻어낸 나랏녹 먹는 자리를 몇 년 단위로 쪼개 연장해 나가야 하는 어공들은 눈에 보이는 성과를 부지런히 내야 했다. 팀의 존속 연장시한도, 개인의 계약 연장기간도 쉴 틈 없이 돌아왔다. 연초마다 작성하는 목표 그 이상은 당연히 해내야 했고, 각종 시상식에서 조직의 이름을 드높이며 추가실적도 끊임없이 만들어냈다. 힘들었지만 괜찮았다. 동병상련의 띠로 묶인 채 같은 배를 탄 사람들이 늘 함께 했으니까. 으쌰으쌰 하며 서로의 '존버'를 응원했으니까.
하지만 '존버'를 무너뜨리는 균열은 내부에서 시작됐다. 팀원 중 한 명이 계약 연장에 실패하면서 새롭게 합류하게 된 팀원이 견고하던 팀에 금을 내는 모래알이 됐다. 다른 조직에서 어공으로 일했던 그는 어공 제도의 맹점을 제대로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계약기간 동안은 임기가 보장되기에 본인의 업무를 등한시했고, 고스란히 팀원들에게 전가했다. 팀 존속을 위해 함께 손잡고 달려도 모자랄 판에 주저앉아 움직일 생각도 않는 이를 누가 좋아라 하겠는가. 팀원들의 볼멘소리가 몇 차례 이어지자 그는 팀원들이 자신을 괴롭힌다며 상사에게 고충을 호소했다.
마침 그 상사는 우리 팀을 눈엣가시처럼 생각해 오던 고위 공무원. 모래알이 상사를 찾아갔던 그날 부로 우리 팀은 '죽음의 디스코팡팡'에 탑승했다. 맨 처음 팀장이 계약 연장에 실패했다. 후임으로 온 늘공 팀장은 말도 안 되는 고압적인 자세로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힘들어도 맞잡은 손을 더 꽉 쥐어왔던 팀원들이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한 채 퇴직원을 제출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튕겨대는 디스코팡팡 위에서 하나둘씩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가며 팀은 무너졌다. 순식간이었다.
그리고 오늘, 마지막까지 버티던 팀원이 이직하면서 이제 그 팀엔 모래알만 남았다. 사연이 무엇이든 과정이 어떻든 결국 모래알은 '존버'에 성공했다. 털어낼 승객을 모두 아웃시켰으니 미친 듯 돌던 디스코팡팡도 곧 멈출 것이다. 그러면 모래알은 뿌리 깊은 바위가 되려나. 그는 자신의 계약 연장기간에 때마침 몸이 아파 병가휴직을 신청했고, 자연스럽게 계약이 연장됐다. 아픈 사람을 내치는 늘공은 없다. 그들은 나쁜 사람이 되는 것, 이슈를 만드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한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전적으로 내 시점이다. 조직이나 모래알의 시점에서 우리 팀은 '자기들끼리 뭉쳐 다니며 고개만 뻣뻣한 불순물들'일지도 모르겠다. 모두 '존버' 해보고자 나름 애썼던 것들이지만 실패했으므로 이해를 바라지는 않겠다.
어공의 계약 연장기간은 최대 10년이다. 단, 임기를 연장시킬 수밖에 없을 만큼의 탁월한 업무성과를 인정받아야 한다. 어느 회사에서든 마찬가지일 거다. 뛰어난 업무능력, 그리고 이를 압도하는 처세술이 뒷받침되어야 비로소 '존버'의 영광이 주어지는 법이다. 이력서가 지저분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만큼 이직이 잦았던 나는 늘 둘 다 어설펐다. 일을 잘하려다 보면 관계에서 뒤처졌고, 관계에 신경 쓰다 보면 일 잘하는 동료들에게 밀렸다. 뭐든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부터 불안했고 견딜 수 없었다. 그리고 결국엔 퇴사. 역시 나에게 '존버'는 꿈에 불과한 것인가.
오늘도 '존버'를 외치며 모든 역경을 참아낸 모든 이들에게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낸다. 혹시 그런 본인이 구질하게 느껴지는가. 엄두도 못 내는 사람이 여기 있으니, 적어도 당신은 나보다 낫다는 안도감을 가져도 좋다. 그렇게 힘들게 쌓인 하루하루가 험난한 디스코팡팡도 거뜬히 클리어할 수 있는 좋은 쿠션이 되어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당신은 그렇게 '존버'해 나가라. 나 같은 조무래기는 엉덩방아를 좀 더 찧고 난 후 쫓아갈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