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의 편의점은 정적조차 형광등 불빛에 하얗게 탈색된 것만 같다. 자동문이 열릴 때마다 들리는 '딩동' 소리는 이 고요한 성소에 입장하는 이들의 도착 신호다.
문이 열리고 들어온 남자의 어깨 위에는 이 도시의 밤안개가 눅눅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그는 말없이 삼각김밥 매대 앞에 섰다.
그의 손가락은 잠시 허공을 배회했다. 전주비빔, 참치마요, 스팸구이. 1,500원이라는 가격표 아래 놓인 정갈한 삼각형들.
누군가에게는 간식거리조차 되지 못할 가벼운 무게지만, 이 시간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삼각김밥은 하루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탱하는 최소한의 성찬이다.
남자는 가장 저렴한 참치마요 하나를 집어 들고 카운터로 왔다. 그의 손톱 밑에는 지우지 못한 기름때가 거뭇하게 박혀 있었다.
우리는 늘 거창한 성취를 위해 달린다. 10년의 경력, 억대 연봉,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
하지만 그 거창한 목표들이 나를 배신하고 등을 돌릴 때, 우리를 마지막까지 붙잡아 주는 것은 의외로 사소한 것들이다.
남자가 지불한 1,500원은 단순히 쌀밥과 김의 가격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 하루의 고단함을 견뎌낸 자신에게 허락한 유일한 ‘보상’이자, 내일의 노동을 위해 지불한 ‘생존 비용’이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매몰 비용'은 이미 지출되어 회수할 수 없는 비용을 뜻한다. 우리는 지난 세월 쏟아부은 열정과 시간이 무위로 돌아갔을 때, 그 매몰 비용의 늪에 빠져 허우적댄다.
하지만 새벽 편의점에서 마주하는 1,500원은 매몰된 과거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 가장 밑바닥에서 다시 시작하려는 인간의 정직한 허기다. 10년의 노력이 서류 한 장으로 부정당했을 때, 나를 일으켜 세운 것은 대단한 격언이 아니라 입안 가득 퍼지는 고소한 참치마요의 식감이었다.
남자는 전자레인지의 ‘웅’ 하는 소리를 견디며 초조하게 숫자를 응시한다. 30초. 그 짧은 시간이 그에게는 하루 중 가장 긴 명상의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따뜻해진 삼각김밥을 손에 쥐고 그는 구석진 테이블에 앉았다. 비닐을 벗기는 바스락 소리가 정적을 깨운다. 1번, 2번, 3번. 정해진 순서대로 껍질을 벗겨내는 그의 손길은 경건하기까지 하다.
그는 삼각김밥의 뾰족한 모서리를 크게 베어 물었다. 세상은 우리에게 더 둥글어지라고, 더 유연해지라고 강요하지만, 때로는 저 삼각형의 모서리처럼 단단하게 버티고 서야만 지켜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밥알 하나하나에 스민 온기가 그의 위장을 타고 내려가 차가웠던 마음까지 데우기를 나는 카운터 너머에서 빌어본다.
남자가 떠난 자리에는 투명한 비닐 껍데기만 남았다. 나는 그가 앉았던 자리를 행주로 정성스럽게 닦아낸다. 그것은 단지 청소가 아니라, 누군가의 치열했던 식사 시간에 대한 예우다.
퇴근길, 편의점을 나선 나는 집으로 향하는 긴 복도를 걷는다. 그리고 싱크대 앞에 서서 시원한 물 한 잔을 들이킨다. 1,500원으로 채워진 그의 밤도, 그리고 나의 새벽도, 이 물 한 잔처럼 투명하게 정화되기를 바란다. 거창한 복수는 필요 없다. 그저 오늘을 버티고 내일을 맞이할 힘, 그것이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