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 10분. 편의점 시계가 정해진 궤도에 다다르면 나는 경건한 의식을 준비한다. 단말기에 '폐기 등록' 버튼을 누르고 도시락 바코드를 찍는다. '삑-' 소리와 함께 8,500원이었던 소불고기 정식은 한순간에 0원이 된다.
유통기한이 단 1분 지났을 뿐인데, 세상의 기준에서 이 도시락은 '상품'에서 '쓰레기'로 강등된다.
나는 카운터 뒤 구석진 바닥에 주저앉아 그 도시락의 비닐을 뜯는다.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밥알과 윤기가 흐르는 고기반찬. 이것이 과연 버려져야 할 존재인가 하는 의문이 매일 밤 나를 괴롭힌다.
세상은 우리에게도 끊임없이 바코드를 찍어댄다. 서른이 넘으면 '신선함'이 떨어졌다고 하고, 경력이 단절되면 '재고 가치'가 없다고 말한다. 효율성이라는 잣대 앞에 우리는 언제든 '폐기'될 수 있다는 공포를 안고 살아간다. 마치 유통기한이 임박한 삼각김밥처럼, 우리는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대 앞줄로 나서려 애쓴다.
하지만 폐기 도시락을 직접 먹어본 사람만이 안다. 유통기한이 지났다고 해서 그 맛이 변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오히려 차갑게 식은 밥을 꼭꼭 씹다 보면, 그 안에 담긴 재료 본연의 고소함이 더 진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시간'이라는 냉혹한 기준이 부여한 사형 선고는, 사실 이 도시락의 본질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외부의 폭력일 뿐이다.
나는 이 행위를 '폐기를 먹는 것'이 아니라 '존엄을 회복하는 과정'이라 부르기로 했다. 세상이 정한 기준에서 탈락한 존재들을 내 몸속으로 받아들여 다시 생명의 에너지로 바꾸는 일. 그것은 버려지는 것들에 대한 나만의 애도 방식이자, 동시에 언젠가 버려질지도 모를 나 자신에 대한 긍정이다.
우리는 늘 무언가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 속에 산다.
성공한 작가, 유능한 직장인, 다정한 부모. 하지만 그 역할들이 나를 규정하는 전부일 수는 없다. 바코드가 찍히지 않는 내면의 고유한 가치, 세상의 유통기한과는 무관하게 흐르는 나만의 시간. 그것을 발견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매대 위의 상품으로 살지 않아도 된다.
가끔은 나 자신의 비루함에 고통스러울 때가 있다. 6개월째 편의점 앞을 지키며 남들이 버린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는 나의 처지가, 마치 유통기한이 지난 상품처럼 느껴져 서글퍼질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나는 더 정갈하게 젓가락을 움직인다. 반찬 하나하나의 맛을 음미하고, 밥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비워낸다. 나의 존엄은 누군가의 평가가 아니라, 내가 나를 대접하는 이 태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복수란 상대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나에게 매긴 가치를 비웃어주는 것이다. "당신이 나를 폐기라 불러도, 나는 여전히 맛있고 영양가 넘치는 존재다"라고 온몸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오늘 밤 나의 복수는 이 차가운 소불고기 정식을 가장 따뜻한 마음으로 먹어치우는 것으로 완성된다.
창밖으로 푸르스름한 새벽빛이 밝아온다. 나는 다 먹은 도시락 용기를 깨끗이 씻어 분리수거함에 넣는다. 흔적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순환을 준비하는 몸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