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봄 늦은 겨울>의 ‘몽환’과 ‘긴장’ 사이에서

서울예술단 <이른 봄 늦은 겨울> 2021.11.12.~24., 국립극장

by 최기현

자율주행은 운전자의 조작 없이 스스로 판단하여 목적지까지 도달하는 주행 시스템이다. 세계 많은 기업이 자율주행 기술을 선점하고자 치열하게 노력 중이다. 세계 최초로 자율주행을 선보인 것은 누구일까? 테슬라도 아니고 현대기아차도 아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1,500년 전 신라 시대 김유신의 말이다.


김유신이 젊었을 때 천관이라는 절세 미인이 운영하는 주막에 자주 드나들었다. 그러다가 부모의 꾸지람 때문에 천관에게 가지 않기로 다짐한다. 어느 날 김유신은 술에 만취하여 말에 올라탔다. 김유신을 태운 영특한 말은 주인이 자주 찾았던 천관의 주막으로 향한다. 뒤의 이야기는 모두가 익히 알고 있어 생략한다. 생각해보면 말에게는 잘못이 없다. 늘 하던 대로 자율주행을 했을 뿐이다. 자신의 의무에 충실했던 말의 의도는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못했다. 살다 보면 처음 의도와 다른 결과가 초래되기도 한다. 이는 옛날이야기에서만이 아니라 공연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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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 <이른 봄 늦은 겨울>(이하 이봄늦겨)이 6년 만에 돌아왔다. 국립극장과 서울예술단이 공동으로 주최하고 서울예술단이 제작한 <이봄늦겨>(2021.11.12.~24., 국립극장 달오름)는 매화를 주제로 10개의 이야기가 연결된 옴니버스 형식의 가무극이다. 매화에 얽힌 고사와 여러 작품의 이야기를 선보였다. 매화를 주제로 서정성을 강조한 다른 작품과는 달리, 보이고 들리는 감각을 강조했다.


<이봄늦겨>는 볼거리가 많은 공연이다. 시각적으로도 청각적으로 관객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조풍래의 랩과 같이 2015년 초연에서 보였던 장면 중 일부를 덜어내고 연출 의도에 맞게 새롭게 재구성했다. 그런데 <이봄늦겨>이 의도했던 연출이 관객에게는 정반대로 느껴졌다면 어떨까? 이 글에서는 <이봄늦겨>의 몽환적인 연출이 관객에게 긴장으로 작용한 내용을 서술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이봄늦겨>가 관객에게 전달하려고 했던 분위기와 구성요소는 무엇이며, 관객은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는지 살펴보겠다.

관객을 몰입시키는 몽환적인 분위기

<이봄늦겨>의 분위기를 두 단어로 정리하자면 ‘몽환’과 ‘긴장’이다. 꿈인 듯 현실인 듯, 이승인 듯 저승인 듯 연출한 몽환적인 분위기는 관객을 공연으로 몰입시키는 역할을 했다. 템포와 분위기를 조절해 관객에게 긴장을 부여한 것도 공연 몰입에 영향을 미쳤다. 적절한 긴장은 관객을 공연에 몰입시키는 작용을 한다. 사실 <이봄늦겨>에서 연출된 기법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 기존에 활용되었던 연출 방식을 적절하게 조합하여 몽환적이면서도 긴장감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관객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던 요소는 크게 의상과 분장, 음악, 무대 연출이다.


먼저, 의상과 분장에 관해 살펴보자. 장면에 따라 조금씩은 다르지만 배우들이 대체로 흰색 의상을 착용하고 흰색 얼굴로 분장했다. 특히 남자 배우의 흰색 모자와 복장은 저승사자를 연상시켰다. 거기에 흰색 얼굴 분장이 더해져 그 의미는 더욱 강해졌다. 흰색 얼굴 분장은 크라운에서 많이 볼 수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1970년대 흑백 텔레비전 시절 <전설의 고향>의 최상식 PD가 저승사자의 이미지로 흰색 얼굴 분장을 사용하여 대중에게 알려졌다. 마치 가면을 쓰고 있는 이 분장은 신비롭기도 하지만 무표정한 얼굴 때문에 배우의 감정을 의도적으로 감춘다. 흰색 의상과 분장이 조명과 결합하면서 마치 저승 앞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둘째, 신비로운 분위기의 음악과 노래다. 임도완 연출은 <이봄늦겨>를 제작하면서 르네 오브리의 음악을 작곡가에게 들려주며 비슷한 느낌으로 부탁했다고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 프랑스의 작곡가인 르네 오브리는 단순한 멜로디를 사용하지만 듣는 사람이 추억에 젖을 수 있도록 연주한 것으로 유명하다. 르네 오브리 음악에 영향을 받았을 <이봄늦겨>의 노래와 음악은 몽환적인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거기에 서울예술단 배우들의 가무극 특유의 발성과 결합했다. 어떤 장면에서는 경극에서 들을 법한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했다. 흰색의 시각적인 요소와 음악이 결합하며 몽환적이면서 긴장감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셋째, 무대 연출이다. 이 공연에서 쓰인 소품은 많지 않다. 눈길을 끈 소품이 흰색 항아리, 다도 세트 정도이다. 매화를 주제로 한 작품인 만큼 매화가 일부 나오긴 하지만 계속해서 나오지는 않는다. 때로는 영상으로도 보이긴 하지만 억지로 매화를 보여주지 않는다. 흰색 항아리는 위에서 언급한 흰색 의상과 분장과 어우러졌다. 영상도 한몫했다. 영상을 단순하게 배경화면으로 사용하지 않고 7개의 벽을 입체적으로 사용하여 매핑 효과를 살렸다. 눈발이나 매화꽃이 날리는 것은 직접적으로 표현하긴 했지만 매화를 직접 투사하는 것을 최대한 피했다. 인간의 뇌파같이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이미지를 표현한 부분도 돋보였다. 의상과 분장, 음악과 노래, 소품과 영상 등의 요소가 결합하여 <이봄늦겨>는 몽환적인 분위기와 긴장감을 만들어내며 관객을 공연으로 몰입시켰다.


몽환적인 분위기는 왜 관객에게 긴장으로 다가왔을까?

분명히 <이봄늦겨>의 몽환적인 분위기와 긴장감은 관객을 공연으로 몰입시키는 역할을 했다. 문제는 <이봄늦겨>가 의도한 몽환적인 분위기가 관객에게는 반대로 작용했다는 데에 있다. 몽환적인 분위기는 의도치 않게 공연 초반부터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관객을 긴장시켰다. 임도완 연출이 대표로 있는 ‘사다리움직임연구소’가 2000년대 초반에 공연한 <두문사이>가 공연 내내 떠올랐다. <두문사이>에 등장하는 망자들은 흰색 의상을 입고 흰색 얼굴 분장을 했다. <두문사이>에서 문은 이승과 저승을 뜻한다. 이승과 저승 사이의 몽환적인 분위기는 <이봄늦겨>에서 거의 비슷하게 연출되었고, 실제로 저승 앞에 온 것과 같은 분위기 속에 관객은 긴장된 마음으로 관람할 수밖에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배우들이 인형과 함께 나오는 장면에서는 갑자기 위에서 인형 하나가 툭 떨어진다. 그렇지않아도 저승과 죽음의 이미지로 인해 긴장하고 있는 관객은 가슴 철렁함을 느낀다. <이봄늦겨>에 사용된 음악, 그리고 음악에 맞춘 배우의 발성 역시 위에서 언급한 긴장감을 한몫 거들었다.


이른 봄 늦은 겨울의 매화를 소재로 한 것이나, 특별히 매화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관객 자신의 경험에서 어느 한 지점을 추억하게 한다는 좋은 의도는 결국 관객의 긴장감을 해결하지 못하고 어그러져 버렸다. 세 사람의 이야기꾼이 나와 한 사람이 다른 행동을 하고, 다른 두 사람은 핀잔을 주면서 익살스럽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부분 외에는 관객의 긴장감을 풀어줄 여지가 거의 없었다. 관객을 공연에 몰입시키기 위해 적절한 긴장감을 주되 강약을 조절했으면 어땠을까? 템포를 조절하며 극을 전개했다면 관객이 좀 더 편안하게 공연에 몰입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봄늦겨>는 처음부터 끝까지 ‘강, 강, 강, 강’의 템포로 진행했다. 중간에 일부 템포를 조절했으나, 전체 공연을 놓고 볼 때 템포 조절에 실패했다.


왜 이런 결과가 발생했을까? 연출 측면에서 조심스럽게 두 가지 추측이 가능하다. 하나는 초연과 비교하여 무대 크기가 달라져 퍼포먼스 밀도가 바뀌었거나, 다른 하나는 임도완 연출의 연출 스타일에서 발생했을 가능성이다. 국립극장 달오름과 2015년 초연 당시 공연이 열렸던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의 가로 폭은 비슷하지만, 이른바 ‘깊이’라고 표현하는 세로 폭은 확연히 다르다.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의 가로 폭은 14.6m, 세로 폭은 20.6m이며, 국립극장 달오름의 가로 폭은 16m, 세로 폭은 14m이다. 초연 무대에 비해 깊이가 무려 6m 가량 줄어들었다. 넓은 무대에서 하던 퍼포먼스를 좁은 무대로 가져오다 보니 배우들의 동선이 제한될 뿐만 아니라 퍼포먼스 밀도가 너무 높아졌다. 초연에 비해 한정된 공간에 너무 많은 것을 넣어 높아진 밀도에서 긴장감이 발생했을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임도완 연출의 연출 스타일의 영향이다. 임도완 연출의 스타일은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고 자로 잰 듯 정확히 계산하여 공연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과거 우리나라 마임의 양대 산맥이었던 유홍영과 임도완 두 배우의 연기 스타일 차이는 이를 좀 더 분명하게 보여준다. 유홍영 배우가 감성적인 이미지를 구사하며 관객에게 여운을 주는 스타일이라면, 임도완 배우는 한 치에 오차도 없는 틀을 만들고, 본인만이 할 수 있는 테크닉을 구사한다. 사다리움직임연구소 대표로 작품을 만들 때도 비슷했다. 당시 실력 있는 후배들과의 호흡을 맞춰 관객이 만족하는 작품으로 그가 추구하는 작품 세계를 증명했다. 임도완 연출의 <보이첵>의 미마쥬(Mimage) 구현 양상을 연구한 논문에서도 알 수 있다. 그의 연출개념은 ‘자끄 르콕의 미마쥬(마임과 이미지의 합성어)를 기반으로 하며 상징물, 가면 등 무대장치나 오브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궁극적으로 삶의 본질과 맟닿은 극적상태를 클로즈업하여 관객에게 울림을 주고 연출가가 상상한 이미지를 관객 스스로가 주체적 인식으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다.


<이봄늦겨>는 마치 좋은 물건을 테이블에 한가득 펼쳐놓고 어떤 물건을 관객에게 보여줄까 고민하는 듯한 느낌이다. 좋은 볼거리가 너무 많아서 이것도 보여주고 싶고, 저것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인 듯하다. 임도완 연출의 스타일상 치밀하게 계산하여 공연에서 시각적으로 보일 수 있는 부분, 청각적으로 들릴 수 있는 부분, 영상으로 잘 연출할 수 있는 부분을 고르고, 고르고 또 골랐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보여줄 것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관객은 공연 내내 긴장하며 피곤함을 느꼈다. 연출의 의도와 관객이 받아들이는 지점이 어긋났고 임도완 연출이 의도한 몽환적인 분위기는 오히려 관객에게는 긴장으로 작용한 셈이다.


관객을 몰입시키는 공연은 좋은 공연이다.

우리는 누구나 좋은 공연을 보고 싶어 한다. 문제는 좋은 공연을 구별하는 기준이다. 어떤 공연이 좋은 공연일까? 세계 최초의 윤리 교과서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쓴 아리스토텔레스는 좋은 것(Agathon, 善)을 ‘다수의 행복 실현의 목적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공연에 적용하면 많은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공연이 좋은 공연이다. 유익의 기준은 각각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관객이 공연에 몰입하고 만족했을 때 유익했다고 느낀다. 좋은 공연은 관객을 그 공연으로 초청하여 연출자가 의도한 공연 속 세계관에 충분히 몰입하게 만드는 공연이다.

영화관에서 재난 영화나 스릴러 영화에 몰입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 영화가 설정한 세계관에 들어가 관객이 영화의 주인공이 되어 긴장감 속에서 재난에 대처한다. 현실의 고민을 잠시 놓아두고 영화에 몰입하는 사이에 관객의 현실을 짓누르던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효과도 경험할 수 있다. 공연도 마찬가지이다. 관객은 현실에서 하던 고민을 잠시 공연장 밖에 내려놓고 공연 속으로 들어간다. 공연이 재미있다면 현실의 고민을 잊은 채 공연이 설정한 세계관과 서사에 집중하고, 배우에게 감정을 이입하면서 공연과 하나가 된다. 공연이 재미없을 때 관객은 지루함을 느끼며 공연이 끝나기를 애타게 기다린다. 그나마 초대권으로 온 관객이라면 양해가 가능하다. 비싼 돈을 내면서 공연을 즐기고자 한 관객에게는 별로인 공연이다.


장면마다 심혈을 기울여 몽환적인 분위기와 긴장감을 연출하며 관객을 공연에 몰입시키려는 의도는 훌륭하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을 과도하게 긴장시키는 공연은 곤란하다. 공연이 끝났을 때 관객의 피로도가 높은 공연이 좋은 공연일까? <이봄늦겨>가 추구한 연출의 방향은 아닐 것이다. 관객을 몰입시키는 공연은 분명 좋은 공연이다. 연출의 의도가 잘 전달된다면 공연 덕분에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공연장을 나서는 관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봄늦겨>가 그런 공연이 되었으면 좋겠다.


2021.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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