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2호선 세입자>가 보여주지 못한 완결성

창극 <정년이>에 기대하는 완결성

by 최기현

웹툰의 IP 확장

웹툰의 IP 확장이 최근 유행이다. IP는 Intellectual Property의 약자로 ‘콘텐츠를 기반으로 하는 지식재산’을 뜻한다. 웹툰 <이태원클라쓰>, <유미의 세포들>, <여신강림>, <나빌레라> 등 인기 있는 웹툰을 드라마나 영화, 공연으로 제작하여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웹툰 IP를 확장하는 가장 큰 이유는 대중에게 검증된 콘텐츠를 활용한다는 점 때문이다. 드라마나 영화, 공연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많은 예산이 든다. 따라서 흥행 여부가 예측되지 않는 새로운 작품보다는 이미 대중적인 인기를 얻어 검증된 콘텐츠의 IP를 활용하는 것이 보다 안전하다. 또한 원작 콘텐츠의 독자는 2차 콘텐츠의 수요로 유입되며, 2차 콘텐츠의 수요자는 다시 원작 콘텐츠를 소비하는 선순환도 IP 확장의 장점으로 꼽힌다. 동시에 단점도 존재한다. 웹툰을 드라마나 공연으로 만들었을 때 원작의 분위기를 살리지 못하거나 배우의 싱크로율이 떨어질 때 더 많은 비난을 받는다.


원작을 각색할 때 나타나는 상황을 크게 세 가지 경우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원작 그대로 인물과 사건을 설정하되 장르의 특성을 반영하는 경우이다. 감독 강우석의 영화 <이끼>는 작가 윤태호의 웹툰 <이끼>를 각색하여 원작의 내용에 충실하면서도 영화의 서스펜스를 담았다. 두 번째는 원작의 인물이나 배경은 같지만 사건을 각색하여 새로운 내용으로 전개하는 경우이다. 연극 <2호선 세입자>나 연극 <운빨로맨스>가 여기에 해당한다. 세 번째는 원작의 주제만 같고 아예 새로운 인물과 사건으로 창조한 것이다. 연극 <리처드 3세>의 주제를 기반으로 완전히 새로운 공연으로 만든 연극 <틴에이지 딕> 등을 들 수 있다.


각색은 장르 특성, 연출 스타일, 공연이 펼쳐질 공간에 따라 다르며 고유성을 갖는다. 어느 작품이든 각색했을 때 완결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완결성을 갖추지 못한다면 그 작품이 새로운 이야기는 될 수 있지만 완성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연극 <2호선 세입자>(바탕골소극장, 2022.1.14.~오픈런)는 동명의 웹툰 <2호선 세입자>를 원작으로 한 연극이다. 앞에서 언급한 2차 창작물로 제작하는 유형의 두 번째, 즉 원작의 인물이나 배경은 같지만, 사건을 각색하여 새로운 내용으로 전개하는 유형에 해당한다. 이 글에서는 웹툰 <2호선 세입자>를 연극 <2호선 세입자>로 각색하면서 등장인물과 에피소드가 약간 변경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와 이것이 연극에 미친 영향을 제시하려고 한다. 또한 국립극장이 준비 중인 창극 <정년이>와 연결하여 그 의미를 살펴보겠다.


각색 과정에서 발생한 완결성의 문제

웹툰 <2호선 세입자>는 정은경/여원 작가가 2015년부터 1년간 네이버웹툰에서 연재한 작품이다. 서울지하철 2호선을 배경으로 2호선 객차 2129번 차량에 사는 노숙자들의 에피소드를 그렸다. 주인공 이호선의 아버지는 지하철 2호선 기관사였다. 이호선은 돌아가신 아버지처럼 지하철 기관사로 일하고 싶다. 가까스로 시청역 역무원 인턴으로 입사한 이호선은 2호선 객차 내에 노숙자들이 생활한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서울지하철의 이미지가 훼손되지 않도록 몰래 그들을 쫓아내면 정규직이 되게 해주겠다는 역장의 말에 이호선은 노숙자들을 쫓아내기 위해 자신도 노숙자들과 함께 생활한다.


2호선 열차에 사는 노숙자 등장인물은 모두 6명이다. 노숙자들은 서로 이름 대신 홍대(외국인), 구의(60대 할아버지), 성내(20대 여성), 방배(중년 여성), 역삼(중년 남성), 신림(남성 고시생) 등 자신이 탄 지하철역을 따서 이름으로 부른다. 이들은 각자의 사연과 아픔이 있다. 이 작품에서는 옴니버스식으로 서사를 전개하며 등장인물이 가진 아픔을 치유해간다.


<2호선 세입자>에서 가장 중요한 캐릭터는 여주인공 ‘성내’이다. 성내는 작품 내내 투피스 정장 치마를 입고 주인공과 티격태격하는 매력적인 인물이다. 성내역 사고로 죽은 남자친구를 잊지 못하며 남자친구의 죽음이 자신의 탓이라고 자책한다. 잠실나루(성내역의 현재 이름)를 지날 때마다 예쁘게 화장하고 남자친구가 자신이 탄 열차를 타길 기다린다. 주인공 이호선과 성내의 로맨스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성내가 가진 아픔이 해결되어야 한다. 여기에 계기가 되는 다른 등장인물이 외국인 홍대이다. 홍대는 2호선 객차 2129번 기관사 희주를 짝사랑하지만 흑인 노숙자인 자신의 상황 때문에 희주 앞에 나서길 주저한다. 여러 사건을 통해 희주는 이호선과 마찬가지로 2호선 노숙자들과 교류를 갖으면서 성내역 사고를 일으킨 사람이 희주라는 것이 밝혀진다. 성내는 기관사 희주와 주인공 이호선의 위로를 통해 남자친구의 죽음이 자신의 탓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그녀의 아픔은 치유되고 주인공과 로맨스를 성취한다.


연극 <2호선 세입자>는 웹툰의 배경과 인물, 사건을 거의 비슷하게 재현했으며 소극장 메인무대는 지하철 2호선 열차 내부를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노약자석과 일반석 의자 아래, 선반 옆에 공간을 만들어 사람이 오면 재빨리 숨을 수 있도록 무대 장치를 만들었다. 연극에서는 노숙자 등장인물 중 외국인 홍대를 제외하면서 6명에서 5명으로 조정되었고 기관사 희주는 등장하지 않는다.


소극장이라는 무대 공간의 한계 때문에 등장인물과 사건이 각색되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웹툰과 연극 모두 <2호선 세입자>가 노숙자 각자의 아픔을 치유하는 것, 주인공 이호선과 성내의 로맨스 성취를 향해 서사가 진행된다. 즉 주인공과 성내의 로맨스가 성취되기 위해서는 성내의 아픔이 먼저 치유되어야 한다. 웹툰에서는 외국인 홍대와 기관사 희주의 로맨스가 성내와 연결되면서 성내의 아픔을 치유했다. 연극에서 외국인 홍대와 기관사 희주가 등장하지 않는다면 다른 에피소드를 통해 성내의 아픔을 치유해야 서사의 개연성을 얻는다. 다른 노숙자의 사연은 다 해결되는데 정작 전체 스토리에서 가장 중요한 성내의 아픔은 해결되지 않고 주인공의 “그냥 잊고 새 출발 해요” 정도로 석연치 않게 마무리했다.


각색을 하면서 생긴 또 하나의 문제는 성내의 복장이다. 웹툰 원작에서 성내는 처음 등장할 때부터 마지막까지 정장 투피스를 입고, 밤에 잘 때만 잠옷으로 갈아입는다. 정장을 입는 데서 오는 당당한 커리어우먼의 이미지는 주인공과 티격태격하며 주인공을 구박하는 행동에 합리성을 부여한다. 잠실나루역을 지날 때마다 남자친구에게 잘 보이려고 예쁘게 화장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내의 캐릭터 특성을 형성한다.


연극 <2호선 세입자>에서 성내는 캐주얼한 트레이닝복을 입었고, 장면에 따른 복장의 변경은 없다. 노숙자를 연기하는 배우에게는 인기척을 느끼면 재빠르게 열차 곳곳에 숨었다가 사람이 지나가면 다시 나타나는 장면이 많다. 따라서 자유로운 동선을 위해서는 복장이 자유로워야 한다. 웹툰 원작에 등장하는 성내의 정장 투피스 치마 복장으로는 객실 내에서의 재빠르게 숨었다가 나타나는 동선이 매우 불편하다. 이 때문에 연극에서는 트레이닝복을 착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보니 정장이라는 복장이 주는 당당함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주인공과 싸우면서 친해져야 하는데 성내가 가진 당당함의 부재 때문에 성내의 타박은 주인공을 향한 단순한 짜증으로 전락해버렸다.


김달님의 웹툰 <운빨로맨스>를 원작으로 하는 연극 <운빨로맨스>는 <2호선 세입자>와 마찬가지로 기본 설정 및 사건 전개는 웹툰과 같지만 등장인물과 사건을 각색하여 제작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주인공과 여주인공의 로맨스가 중심이며 다른 요소는 극을 전개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칠만한 부분이 없었기 때문에 등장인물이 줄어들고, 사건이 변형되더라도 전체적인 스토리 전개에 큰 문제가 없다.


결국 연극 <2호선 세입자>의 문제는 성내라는 캐릭터 해석의 부족에서 초래되었다. 이호선과 성내의 로맨스의 연결고리가 되는 홍대의 누락과 성내의 복장 변경으로 웹툰에서 느꼈던 완결성은 연극에서 의도치 않게 희석되었다.


창극 <정년이>를 기대하며

2022~2023년 국립극장 레퍼토리 공연으로 국립창극단의 <정년이>가 제작된다. 창극 <정년이> 역시 웹툰 <정년이>(서이레, 나몬/네이버웹툰)를 원작 콘텐츠로 하며 국립창극단이 공연한다. 국립창극단의 전신은 1962년 창단된 국립국극단이다. 창단 당시 국립국극단은 1950년대 조직된 국극사와 김연수 창극단, 여성국극단 단원들을 중심으로 구성되면서 창극 관련 공연 단체의 대표성을 지녔다. 국립국극단의 창단 첫 공연은 1962년 3월 22일부터 4월까지 김연수 단장이 연출한 <춘향전>이었다. <춘향전>은 이원경 연출을 중심으로 1976년 새로운 연출 기법을 도입하여 ‘전통의 현대적 계승과 재창조’라는 모토 아래 창극과 연극의 연결고리를 찾았다는 의미를 발견했다. 국립창극단은 창단 이후 58년간 판소리 다섯 바탕(춘향가, 심청가, 흥부가, 수궁가, 적벽가)의 노래와 사설을 따라가는 전통 스타일의 창극 무대를 선보여왔다. 공교롭게도 웹툰 <정년이>에서 주인공 정년이 매란국극단에 입단하여 첫 번째로 연기하는 공연이 <춘향전>이며 창극 <정년이>는 국립국극단을 모체로 한 국립창극단에게도 의미가 있다.


창극은 1인창 판소리를 여러 사람이 분창하면서 시작되었다. 판소리는 이야기에 운율을 맞춰 노래를 부르는 형태이다. 창극은 판소리에서 나왔기 때문에 이야기 형식을 취한다. 여기에 인물이 분화되고 연극의 요소가 추가되었다. 이제는 필요하다면 국악관현악 방식과 양악 화성법을 시도하고 현대 악기도 주저 없이 도입한다.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 이것이 창극이 가진 매력이다.


국립창극단이 창극 <정년이>를 각색하여 만들 때 <2호선 세입자>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공연의 완결성에 신경써야 한다. 소리, 등장인물, 무대 등으로 나누어보자.


첫 번째, 소리이다. 웹툰에는 소리가 없다. 소리의 부재는 웹툰의 태생적 한계이다. 정년이의 목포 사투리는 차치하고서라도 등장인물이 부르는 노래는 “사랑~ 사랑~ 내 사랑~~”처럼 웹툰의 말풍선 안에서 물결표시로만 존재하며 음성으로 실재하지 않는다. 드라마나 영화를 공연으로 만든다면 원작의 소리나 움직임 등을 그대로 재현하거나 아예 새롭게 창조할 수 있지만 웹툰에는 소리가 없기 때문에 등장인물들의 개성과 특성에 맞는 창법 및 소리는 완결성 측면에서 중요하다.


두 번째, 등장인물이다. 여성국극을 주제로 하는 작품이기 때문에 대부분 여성이 등장한다. 웹툰 <정년이>에서도 일부 남성이 등장하긴 하지만 악당 또는 조연으로만 나온다. 반면 여성 등장인물은 뚜렷한 개성을 지닌 캐릭터로 등장한다. 국극을 통해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윤정년, 매란국극단의 에이스이자 정년이의 라이벌 허영서, 기생들이나 하는 국극을 낮춰보는 백도앵의 시각까지 국극을 향한 매력적인 웹툰 캐릭터들의 욕망은 모자라지도 과하지도 않게 개성있게 표현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무대이다. 국극은 1인의 판소리가 아닌 여러 사람의 노래, 소리, 연기, 군무 등으로 구성된다. 이를 무대에서 어떻게 나타낼 것인지, 여성 간의 연대를 어떻게 표현할지, 파란색 하늘과 황토색 건물을 보색으로 대비하여 표현한 시원한 느낌을 무대에서 어떻게 펼칠지 등의 요소는 작품의 완결성을 위해 신경 써야 할 부분이다.


국립창극단은 판소리 다섯 바탕을 위시하여 그동안 다양한 소재를 섭렵하며 실험을 해왔다. 그리스 비극 <메디아>,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영화를 소재로 한 <내 이름은 오동구>를 거쳐 이제 웹툰 <정년이>까지 왔다. 국립창극단의 공연 제작 소재가 다변화되는 가운데 웹툰 IP에 담긴 무궁무진한 이야기에 주목했으면 한다.


그 첫 번째 계기가 되는 것이 창극 <정년이>이다. 웹툰이자, 여성서사, 여성국극을 다루는 <정년이>는 창극의 소재이기도 하지만 역사 속에서 사라진 여성국극을 재현하는 계기이다. 근현대사 속에서 여성의 잃어버린 예술사를 복원하는 중요한 의미가 창극 <정년이>에 담겨있다. 국립극장의 새로운 시도가 무척 의미 있는 이유다.


2022.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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