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이유로 심란한 두 누나
원래는 한 달 살기를 할 예정이었는데, 생각보다 내 일이 빨리 정리돼서 여명이는 3주 만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새벽마다 고통받았던 동생은 막상 여명이가 돌아간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너무 허전한 모양이었다. 이제 퇴근하고 와도 여명이와 숨바꼭질을 못한다고 생각하니 서글프기까지 하다고. 하지만 새벽 2시가 되면 역시 여명이는 언니네로 가는 게 좋겠다고 마음을 고쳐먹는다고 했다. 이사는 지난번처럼 주말에 아빠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아빠는 도대체 그놈의 고양이가 언제 입양을 가냐며 탄식했다. 동생 집에 있는 동안 입양을 갈 수 있기를 바랐는데 여전히 여명이의 입양 문의는 0건이었다. 이쯤 되면 정말 내 눈에만 귀여운가 싶었다.
이사를 앞두고 나는 마음이 바빴다. 이사 전에는 여명이가 내 방 창문 근처에 못 올라가도록 네트망으로 철벽 방어를 했었다. 그런데 짧은 3주 동안 여명이는 창문의 매력을 알았다. 여명이는 동생 방 창문으로 밖을 보는 걸 좋아해서 밤낮없이 창틀에 올라가 있었고, 거기서 잠을 자기도 했다. 혹시나 위험할까봐 여명이가 창문 쪽으로 가면 항상 동생이든 나든 창틀 가까이 앉아있었다. 여명이는 사연있는 고양이처럼 아련한 눈으로 창밖을 한참 동안 보곤 했다. 창문의 매력을 알게 된 여명이는 점프력도 일취월장했다. 내가 네트망으로 만든 철옹성은 이제 아무 의미가 없을 터였다.
여명이가 오기 전 나는 방묘문을 설치했고, 창문 앞을 막았던 네트망을 뜯어서 방묘창을 만들었다. 어차피 원천봉쇄를 못할 거라면 안전하게 올라갈 수 있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리고 화장실도 바꿔주기로 했다. 500g 시절에 쓰던 화장실은 이제 여명이에게 좀 버거워 보였다. 아기 고양이들이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는 이야기는 여기저기서 읽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여명이의 아깽이 시절은 쏜살같이 지나갈 텐데, 가족이 늦게 나타나서 이 귀여운 시절을 못 보면 어쩌나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귀여운 파티광 시절을 볼 수 있도록 하루라도 더 일찍 여명이의 가족이 나타나면 좋겠다고 다시 한 번 생각했다.
동생은 마음의 준비를, 나는 공간 준비를 부지런히 하다 보니 어느새 이삿날이었다. 가라는 시집은 안가고로 시작되는 아빠의 잔소리 메들리에 나는 짜증 한 음절도 낼 수 없었다. 아빠의 넋두리에 지당하십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느낌의 추임새를 넣어가며 1시간 반을 달려 무사히 여명이는 익숙한 내 방에 도착했다. 아니, 익숙한 줄 알았다. 이동장에서 꺼내자마자 여명이는 두 달 전 내 집에 처음 왔을 때처럼 후다닥 숨었다. 3주 만에 초기화가 될 줄은 몰랐다. 반나절 동안 여명이는 밥도 물도 아무것도 안 먹고 화장실도 안 가며 심기가 불편함을 드러냈다.
처음 왔을 때는 여유롭게 들어가던 책장 아래에 이제는 엉덩이가 껴서 못 들어가는 게 또 다른 빡침 포인트였던 것 같다. 여명이 너도 어지간히 자기 객관화 안 되는 고양이구나...? 애착 바지를 꺼내 주고 나서야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는지 여명이는 5시간쯤 지난 뒤에 드디어 밥을 먹기 시작했다. 익숙한 공간에 다시 오는 거니까 좀 더 수월하겠지 싶었는데, 정말 야무진 꿈이었다. 여명이는 처음부터 다시 적응을 시작했고, 사람과 고양이 모두 고생했다. 그래도 처음보다는 훨씬 빠르게 적응을 마쳤다. 특히 이번에 내어준 창문 쪽을 마음에 들어해서 뿌듯했다.
여명이는 이틀 정도 지나자 내 방(특히 창문)에 많이 익숙해진 모양이었다. 단 한 사람, 내 동생만 여명이 없는 집에 적응을 못하고 있었다. 여명이가 없는 빈 집이 아직도 낯설고 가끔은 너무 허전해서 울고 싶다고 했다. 3주가 짧다고 생각했는데, 동생의 후유증을 보니 그렇게 짧지만은 않은 기간이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