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톤과 웜톤 사이

뜻밖의 퍼스널 컬러 찾기

by 김여명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여명이는 2차 접종을 했다. 이번에도 선생님은 여명이가 많이 컸다며 감탄하셨고, 체중계에 찍힌 1.6을 보고 말을 잇지 못하셨다. 매일 얼굴 맞대고 사니까 여명이가 날마다 크고 있다는 걸 잘 모르겠더니, 병원에서 숫자로 보면 부쩍 커있어서 놀라웠다. 이제는 익숙해진 동물수첩을 꺼내서 2차 접종 날짜를 적고, 선생님과 3차 접종일을 맞춰보았다. 3차 접종이 있을 다음 달 초까지는 여명이의 진짜 가족을 찾아줘야 할 것 같아서 살짝 마음이 무거웠다.

여기저기 아픈 곳이 보이던 여명이가 낫고 점점 애교가 많아지면서 내 고민은 날마다 깊어졌다. 여명이를 많이 사랑해줄 좋은 가족을 찾아 보내는 건 좋은데, 여명이가 자기를 버렸다고 생각할까봐 걱정이 됐다. 사람 말을 할 줄 알면 알아듣도록 설명이라도 할 텐데, 어느 날 갑자기 낯선 집에 가서 자기가 버림받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를 여명이를 생각하니 벌써부터 많이 미안했다. 조금이라도 덜 미안하려면 아직 하루라도 더 어릴 때 보내야겠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급했다. 상황을 모르는 여명이는 내가 집에 있을 때면 항상 나한테 몸을 붙이고 털썩 눕고, 자기 전에는 나에게 꾹꾹이를 한참 하다가 잠들었다. 고새 여명이도 나도 서로 정이 많이 들어서 큰일이었다.

잠 잘 때 꼭 붙어서 자는 편

나한테 붙어서 잠든 여명이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복잡했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몸무게는 3배 넘게 늘었지만, 여명이는 아직도 머리며 발이 너무나 작았다. 이렇게 작은 여명이가 어른 고양이가 되면 어떤 모습일까를 생각하다가, 나는 그 모습을 직접 볼 수 없겠구나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허전했다. 먼 미래까지 갈 것도 없이 이제 여명이가 있는 게 너무 당연한 내 공간에서 여명이가 없어지면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도 염려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명이를 입양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현관문을 여는 순간부터 반가워서 어쩔 줄 모르고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여명이에게는 혼자서 보내는 10시간 넘는 시간이 너무 길 것 같았다.

본격적인 입양 홍보를 하기 위해 나는 우선 여명이가 잘 나온 사진을 골라야 했다. 여명이의 불행 중 하나는 임보 누나가 사진을 정말 이상하게 찍는다는 것이었다. 내 눈에야 여명이 실물이든 사진이든 다 예뻐서, 처음에는 여명이가 잘 나온 수많은 사진 중에 뭘 추려야 할지가 고민이었다. 의기양양하게 사진을 몇 장 추려서 홍보글을 완성했다. 그러다가 다른 고양이들의 입양 홍보글을 봤을 때, 나는 현실을 깨달았다. 여명이 큰일 났네. 전문 사진작가가 찍은 것처럼 예쁜 사진이 넘쳐나는데, 우리 여명이만 하이퍼 리얼리즘 사진들이었다. 일단 부랴부랴 글을 내렸다. 실물만큼이라도 찍어줘야지.

어떻게 찍어야 할지 모르겠어서 고양이 사진 잘 찍는 법을 찾기 시작했다. 빛을 어느 쪽에 두고, 고양이는 어느 위치에 오도록 유도하고, 고양이가 잘 나오는 색을 배경으로 찍으라는 등 다양한 조언이 있었다. 공통적인 조언은 제대로 된 한 장을 (기적적으로) 건지기 위해 쉬지 말고 찍으라는 것. 일단 다른 건 대충 따라 하겠는데, 여명이가 찰떡같이 잘 나오는 배경색을 알 수가 없었다. 내 눈에는 다 잘 어울리는데. 여명이를 실제로 본 동생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걔가 안 어울리는 색이 있어? 라는 대답을 듣고 동생한테도 도움받기는 글렀다고 생각했다.

안 어울리는 색이 없는데...?

나는 친구들에게 여러 색을 배경으로 찍은 여명이 사진을 보내서 의견을 물었고, 정말 놀라울 정도로 의견이 모아지지 않았다. 웜톤과 쿨톤으로 갈렸고 쿨톤 중에서도 여름 쿨톤인지 겨울 쿨톤인지 의견이 분분했다. 결국 아직도 여명이의 퍼스널 컬러는 모르겠다. 아무리 사진이 이상해도 여명이를 알아보고 따뜻하게 맞아줄 가족이 나타날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을 가지고 오늘도 나는 너무 귀엽지만 실물보다는 조금 못한 사진을 찍고 있다. 이래서야 입양을 어떻게 보내나 싶지만 여명이가 아직은 내 눈에만 예뻤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조금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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