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이가 앞발로 그려도...
나는 여명이를 만나기 전부터도 동물이 나오는 웹툰을 좋아했다.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항상 귀엽고 가끔은 찡하기도 해서 요일별로 기다리는 웹툰들이 있었다. 가끔 그림으로만 보던 웹툰 주인공들의 사진이 첨부되어 있으면 뭔가에 당첨된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사진과 그림은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둘 다 귀여웠다. 그렇게 좋아하던 웹툰을 여명이와 식구가 된 뒤에는 더 깊이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날도 평소에 즐겨보던 웹툰을 보던 중이었다. 문득 여명이도 그림으로 그리면 더 귀엽지 않을까 싶었다. 매번 실물에 못 미치는 사진을 찍는다는 타박을 들어왔으니, 더 귀엽게 그리면 될 일이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셔터도 제대로 못 누르는 내 손이 그림이라고 잘 그릴 리가... 이 간단한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 비싸게 사놓고는 TV로 쓰고 있던 아이패드를 열어서 야심차게 여명이를 그렸다. 수우미양가로 등급을 매기던 학창 시절 내 미술 최고 등급은 ‘미’였다. 그런 내 눈에는 결과물이 아주 만족스러워서 동생한테 바로 (자랑스럽게) 보여줬다.
내 딴에는 실물보다 한 50배 귀엽게 그려놓은 것 같은데 동생 눈에는 안 차는 그림이었다. 우리 여명이는 이렇게 단순하고 흔한 고양이가 아니라는 것이 동생의 변이었다. 이런 그림으로는 여명이의 매력을 담을 수 없다고 한참 꾸짖은 뒤 더 강렬하고 임팩트가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렇게 잘 알면 직접 그려보라는 내 도발에 별안간 그리기 대회가 시작되었다. 동생은 사진을 두고 극사실주의로 그려주겠다고 했다. 한참 그리길래 여명이도 나도 조금 기대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그림을 보고 동생이 극사실주의가 뭔지를 모르거나 여명이를 굉장히 싫어하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림을 보고 바닥을 구르면서 웃었고, 살짝 민망해하던 동생은 다시 그리면 잘 그릴 수 있다고 했다. 이 와중에 내 그림보다 동생 그림이 더 여명이랑 닮았다는 게 좀 슬펐다. 동생은 여명이의 다른 사진을 놓고 또 한참을 그렸다. 이번에 그리는 그림은 좀 낫겠지.
이번에는 좀 더 다듬어지긴 했지만 어쨌든 이것도 여명이는 아닌 것 같았다. 인상적이긴 하지만 이걸 여명이라고 인정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런 인상파 내지 추상화 같은 그림으로는 웹툰을 그릴 수 없다고 단호하게 굴었더니, 그럼 조금 더 귀여운 톤으로 그려 주겠다고 했다. 이제 그만 해도 될 것 같은데. 하지만 저때의 우리에게는 어떻게든 여명이의 귀여움을 그림에 담겠다는 강력하고도 집요한 의지가 있었다.
왜 동생이 임팩트 운운했는지 알 것 같았다. 마지막에 그린 그림이 더 귀엽기는 한데, 맨 처음에 본 그림만 기억에 남아있다. 누나들은 어쩔 수 없는 팔불출인지 처음에 봤던 충격적인 그림도 한 스무 번쯤 보니까 귀여워졌다. 동생이 그린 그림에 이래저래 훈수만 두고 있다가 입만 살았다는 타박에 나도 다시 한 장 그렸다. 사진을 보고 따라 그리는 건 도저히 자신이 없어서 나는 또 내 멋대로 여명이를 상상 속의 동물처럼 그렸다.
이렇게 승자 없이 상처만 남은 그리기 대회가 끝났다. 자매가 둘 다 그림에는 재능이 없으니 웹툰이나 일러스트로 여명이의 귀여움을 담아내기는 글렀다. 여명이가 귀엽다는 건 아무래도 우리만 알 것 같지만, 집에서 누나들 집착받으며 아이돌처럼 자라고 있으니 여명이는 큰 불만이 없을 것 같다. 오히려 여명이는 우리가 그림을 그린다고 키득키득하는 게 더 싫은 것 같았다. 아마 그래서 아이패드를 책상 아래로 밀어 떨어뜨렸을 거다. 말로 해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