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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명 Nov 13. 2023

미안한 계절이 길어지길 바라는 마음

모든 고양이가 너무 덥거나 춥지 않기를

올해는 가을 날씨가 요상했다. 매년 여름이나 겨울은 올해가 제일 덥거나 춥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날씨가 극단적이어도 그러려니 하고 넘기게 되는데, 봄과 가을은 그렇지가 않다. 기간이 짧다는 것 말고는 이상하다고 느낀 적이 별로 없었는데 올 가을은 한 계절 안에 여름과 겨울이 오락가락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보니 단풍도 딱히 절정이라는 느낌 없이 애매하게 지나가는 것 같아서 아쉬움이 남았다. 그렇지 않아도 가을은 더없이 짧은 계절인데 올해는 변덕이 심해져서 온 줄도 모르게 흘러가버린 것 같았다.

올해 단풍은 다 이런 느낌

사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은 겨울이라서 그동안은 짧은 가을을 크게 아쉬워해 본 적이 없다. 가을이 되면서 아침저녁으로 찬 공기가 느껴지면 이제 곧 겨울이 오겠구나, 하는 설렘이 있는 정도였지 가을 그 자체를 그렇게 반기거나 좋아하는 건 아니었다. 여명이와 함께 살면서도 그랬다. 단풍이 곱게 드는 가을과 꽃이 만발한 봄은 항상 여명이에게 미안한 계절이었다. 밖에 살았으면 낙엽을 밟으면서 친구들이랑 가을을 즐겼을 텐데, 봄에는 꽃구경을 질리도록 하고 꽃밭에서 잠이 들었을 텐데 하며 창문으로 바깥 구경만 하는 여명이를 보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여명이의 가족이 되면서 짧은 봄과 가을에는 미안한 계절이라는 새로운 이름표가 생겼다.

그나마 겨울과 여름은 여명이에게 내가 좀 의기양양하게 굴 수 있는 계절이었다. 딱히 여명이의 의사를 물어보고 데려온 게 아니라서 늘 여명이는 집에서 사는 지금 삶에 만족할까 염려하게 되는데, 그래도 겨울은 ‘집에서 사니까 춥지는 않지?’라고 생색을 섞어서 물어볼 수 있는 계절이다. 여름도 마찬가지다. 사계절 내내 적정 온도를 유지하는 집에 살고 있는 여명이에게 그래도 집고양이로 사는 게 좋지 않냐고 은근슬쩍 답이 정해져 있는 물음을 건넬 수 있다.

그러나 밖에 살고 있는 수많은 고양이를 생각하면 이제는 여름도 겨울도 마음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다. 내가 트는 에어컨이 바깥 온도를 높여서 길고양이들이 이겨내야 할 무더위를 더 고약하게 만드는 건 아닌지, 그게 강추위로 이어져서 겨울을 넘기기 더 어렵게 만드는 건 아닌지 걱정하게 된다. 진짜로 지구 종말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건가 생각했던 올여름의 심각한 더위에 차마 에어컨을 끌 수는 없어서, 설정 온도를 28도 아래로는 낮추지 않는 것으로 마음을 정했다. 그것으로도 충분히 여명이와 덥지 않은 여름을 보낼 수 있었다.

추위를 별로 안타는 집사 때문에 여명이는 난방을 늦게 켜고 일찍 끄는 집에서 살고 있다. 매년 겨울 그나마 난방이 잘 들어오는 바닥을 찾아 돌아다니며 눕는 여명이를 보고 좀 짠한 기분이 들어서 전기방석을 선물했다. 화상을 입을 만큼 따뜻한 방석은 아니지만 그래도 오래 누워있으면 혹시 몰라서 방석 위에는 손수 뜬 방석까지 깔아줬다. 그랬더니 딱 알맞은 온도가 되었는지 겨우내 여명이는 방석과 한 몸으로 살았다. 아마 올 겨울에도 그럴 거다.

겨울이 되면 적당히 따뜻한 집에 따뜻한 방석까지 가진 여명이와 다르게 추위를 맨몸으로 이겨내야 할 길고양이들이 자꾸 눈에 밟힌다. 여기저기 고양이들이 흩어져 있었던 따뜻한 계절과 다르게 추위를 피할 수 있는 장소는 정해져 있어서 고양이가 더 눈에 잘 들어오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의 눈길이 잘 닿지 않는 외진 곳에 고양이들의 밥자리와 겨울집을 설치해 주는 다정한 사람들의 흔적을 보면서 살짝 안심하기도 잠시, 어떻게 찾았는지 외진 곳에 있는 밥자리와 집을 부숴놓는 누군가의 이야기도 종종 듣게 된다. 얼마 남지 않은 가을 단풍을 보려고 나선 산책길 한쪽 구석에서 제법 따뜻해 보이는 겨울집과 밥자리를 발견하고 반가운 한편, 마음이 한없이 좁은 누군가가 그걸 망가뜨리지 않기를 바라야 했다.

추위와 적대적인 사람을 피해 구석구석 숨어있을 고양이들이 모쪼록 추운 겨울을 씩씩하게 이겨내기를, 다음 봄에도 다시 산책로에서 반갑게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산책을 하고 집에 돌아오니 전기방석에 녹아있던 여명이가 눈만 깜빡이며 나를 마중했다. 집고양이인 여명이에게는 앞으로도 계속 미안한 마음이 들 두 계절, 봄과 가을이 더 길어지면 좋겠다. 그래서 무더위와 혹한을 맨몸으로 견딜 수밖에 없는 길고양이들이 이겨내야 할 두 계절이 더 짧아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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