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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명 May 21. 2021

입사의 목적이 퇴사는 아니겠지요

집사의 이직은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지난 4월, 나는 여섯 번째 회사를 박차고 나와 일곱 번째 회사에 입사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이쯤 되면 내 이직 횟수가 적은 편은 아닌 것 같다고 이번에 문득 느꼈다. 모든 회사가 그렇듯이 직전 회사도 장단점이 있었고, 그걸 저울질하다가 이직을 결심했다. 안정적인 일을 정년까지 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었지만, 접두사 '개'가 붙는 박봉이라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1인 가구라면 그럭저럭 가계를 꾸려나갈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1인1묘가 살아가기엔 턱없이 부족한 급여였다. 우리의 10년 뒤를 생각해보다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제 내 노후만이 아니라 반려 맹수의 노후까지 책임져야 하는 입장이었다. 아주 풍족하지는 않더라도 미래를 위해 얼마간은 차곡차곡 쌓아나갈 수 있는 급여가 필요했다. 그리고 아직은 안정적인 일보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

그렇게 나는 일곱 번째 회사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사실 안정적인 직장에서 이직을 계획하는 건 어지간한 결심이 아니면 힘들다. 대문호가 된 기분으로 자소설을 집필해야 하고, 그 후에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답변이 금지된 청문회와 같은 면접이 기다리고 있다. 그 번거로운 과정을 생각하면 다니고 있는 직장의 장점을 마른행주 쥐어짜듯 찾아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분이 들 때마다 월급날이 돌아왔고, 정신이 번쩍 든 나는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다행히 내 자소설을 감명 깊게 읽은 누군가가 나에게 일할 자리를 내어 주었고, 나는 4월부터 조금 넉넉해진 급여를 받으며 다시 내가 하고 싶었던 책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딸이 얼마를 받아왔는지는 모르고 내심 직전 회사에서 정년을 맞았으면 하던 부모님은 내 이직 소식에 도대체 누가 그렇게 너를 뽑아주냐며 분통을 터뜨리셨다. 저러다 쟤는 환갑 때까지 이직하게 생겼다는 끔찍한 탄식도 덧붙이셨다.

이번 이직은 나에게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오직 내 입맛에 맞는 곳으로 일터를 정했던 지난 이직들과는 다르게 우리 집 고양이를 우선순위에 놓고 생각해야 했다. 여명이와의 생활을 확보할 수 있도록 출퇴근 시간이 자유롭고, 집에서 많이 멀지 않으며, 1인1묘의 생활을 커버하고 미래까지 계획할 수 있는 급여를 받을 수 있는 곳이어야 했다. 물론 노동을 하는 건 나니까 업종은 내가 정했다. 업종만 내가 정한 것 같은 기분도 들지만, 아무튼 그렇다. 그렇게 입맛에 맞는 곳이 있을까 싶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런 곳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다. 사주에 소가 셋이나 들어앉아서 노인이 될 때까지 일을 쉴 수 없다는 내 팔자와 평생 풍족하게 어려움 없이 산다는 사주가 되는 날로 생일을 정한 여명이 팔자의 시너지가 아니었나 싶다.

이직의 일등공신

운 좋게 이번 회사에서는 유연근무제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딱 정해진 출근시간 없이 자유롭게 출근해서 8시간을 근무한 뒤 퇴근하면 되고, 야근은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다. 이른 퇴근이 지상과제인 나는 마음속 마지노선을 정해두고 그 시간 안에 출근하려고 노력한다. 출근시간이 정해진 회사를 다닐 때 항상 분초를 다투며 출근했었던 나에게 유연근무제는 너무나 아름다운 제도였다. 아침에 여명이가 만족할 때까지 사냥놀이를 해줘도 지각을 하게 될까 봐 노심초사할 필요가 없다는 게 나와 여명이에게는 큰 장점이다. 다만, 통근 시간이 10분 정도 늘어나면서 여명이가 혼자 있어야 할 시간이 30분 정도 늘어났다. 시계를 볼 줄 아는 것도 아닐 텐데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는 걸 눈치채기라도 한 듯 여명이는 내가 돌아오면 평소의 3배 정도 더 격렬하게 환영해준다. 한 30초 정도 환영해주고 나서 '이 정도 반겨줬으면 됐지?'라는 느낌으로 당당하게 밥과 놀이를 요구한다. 그럴 때는 낯선 회사에서 긴장 상태로 하루를 보내고 돌아와 기진맥진하거나 말거나 낚싯대를 잡아야 한다.

한때 새벽에 수시로 크레이지 파티광이 되어 나에게 지옥을 보여줬던 여명이는 이제 제법 점잖은 고양이가 되었다. 영원히 안 맞을 것 같던 우리의 생활 패턴이 드디어 서서히 맞아가는 중이다. 여명이는 요즘 아침 5시에 일어난다. 트렌드에 민감한 고양이라서 미라클 모닝을 실천하는 중이다. 내가 알기로 미라클 모닝에는 명상이 필수라는 것 같았는데, 우리 집 고양이는 어디서 뭘 좀 잘못 배워온 듯하다. 명상의 ㅁ도 없이 5시부터 닭인지 고양인지 모를 느낌으로 콘서트를 시작하는데 정말 귀에서 피가 날 것 같다. 한 시간을 억지로 버티다가 나도 6시에는 일어나야 한다. 이쯤 되면 그냥 나도 5시에 일어나서 같이 하루를 시작해야 하나 생각하면서도 6시까지 억지로 버틴다. '나도 나지만 너도 너다'라는 눈빛을 보내는 여명이랑 눈만 안 마주치면 버틸만하다. 내가 더 일찍 일어나도 놀이 시간이 늘어나지는 않는다는 걸 알았을 텐데도 계속 저렇게 아침마다 나를 깨운다. 출근 전, 퇴근 후, 자기 전에 우리는 적어도 15분씩 신나게 사냥놀이를 한다. 아무리 피곤해도 거를 수가 없다. 놀이가 부족하면 그런 날은 새벽 3시부터 지옥문이 열린다는 걸 알기에.

지옥문 열리기 5초전

새로운 회사에서 근무한 지도 벌써 한 달이 넘었다. 다행히 새 회사는 일도 사람도 근무 환경도 모든 게 무난하다. 굉장히 좋은 것도, 굉장히 싫은 것도 없는 그런 무던한 회사에 들어올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여명이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1인 가구였다면 나는 이직을 생각하지 않았거나, 이직 과정의 귀찮음을 이기지 못했을 것 같다. 출근 전에 항상 정신없이 바빠 보이던 집사 누나가 여유롭게 놀아준 뒤 집을 나서고, 하루 세 번 놀이 시간도 확보되어 여명이의 만족도 역시 꽤 높아 보인다. 나도 여명이도 만족스러운 곳에서 일을 시작해서 정말 다행이다. 벌써 수십 번째 맞이하는 봄인데도, 올봄은 나에게 여러모로 특별하다. 여명이와 함께 맞는 첫 봄이기도 하고, 마지막 직장일지 단지 일곱 번째 직장일지 모를 새로운 곳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기 때문에. 늘 봄날 같을 수는 없겠지만, 일도 내 생활도 여명이와의 관계도 지금처럼 무던하게 흘러가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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