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기 좋은 이름_김애란
매번 소설을 참 재미있게 읽어서, 첫 산문집이 나온다고 했을 때 기대를 많이 했다. 기대했던 것보다 더 재미있게 읽은 <잊기 좋은 이름>은 김애란 작가의 소설들처럼 담담하고 따뜻한, 때로는 가슴이 시리고 찡한 이야기들이 한가득이었다. 좋아하는 작가의 어린 시절부터 주변 환경을 작가가 직접 보여주고 들려주는 느낌이었다. 가족과 친구, 동료들의 이야기에 따뜻한 애정이 묻어 있어서 읽는 동안 마음이 시리기도 훈훈하기도 했다.
살았던 기간에 비해 깊은 인상을 남기고 큰 영향을 주었다는 '맛나당' 생활 이야기를 읽는데, 모르는 곳인데도 그 칼국수집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삼익피아노와 밀가루 포대가 공존하던 맛나당에서 작가는 알게 모르게 어머니가 긍정적이고 주체적으로 삶을 대하는 태도를 보고 배웠다고 고백한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맛나당'에서 어린 작가가 치는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긍지로 얼굴이 빛나는 어머니의 손칼국수를 먹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필 '정숙'이라는 말이 붙은 컴퓨터실에서 등단 소식을 듣는 바람에, 공중제비를 돌고 싶을 만큼 기뻤지만 양껏 기뻐하지 못한 작가의 지난날 이야기에 웃으면서도 짠했다. 나에게는 처음부터 소설가였기 때문에 시와 소설 사이에서 고민했던 시절이 있었는 줄은 몰랐다. 담담하지만 섬세하고 따뜻하게 인물을 그려내는 김애란 작가의 소설들을 너무 좋아해서 역시 시보다는 소설이 낫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문장들을 보고 있으면 시도 괜찮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선에도 못 올랐다는 그 시가 문득 궁금했다.
먹구름을 예감한 곤충처럼 심란해졌다는 표현 때문에 좀 웃었다. 어쩌면 이런 표현을 생각했을까. 어떤 마음인지를 너무 잘 알겠고, 나도 그런 마음이었던 적이 있었다는 생각에 여기서 좀 터졌던 것 같다. 읽고 싶다기보다 읽어야 한다는 강박으로 작성했다는 작가의 그 당시 희망 목록은, 아마 대학교 1학년 때 받아 들었던 권장 도서 100선에서 어려운 책만 추려놓은 것 같은 느낌이었겠지. 책을 읽는 내내 나도 이런 적 있었어! 하면서 반가웠던 장면들이 몇 있었는데, 이 헌책방 대목이 유독 그랬다. 요즘은 사러 가기보다는 팔러 가는 일이 더 많은 곳이지만.
부사 이야기에도 크게 공감했다. 부사를 되도록 안 쓰는 게 좋은 문장을 만드는 방법이라는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듣지만, 부사를 안 쓰고는 양껏 오바를 할 수 없는데요...? 이렇게 많은 부사를 써보기는 처음이라고 했던 저 많은 부사들을, 나는 글 한 편 쓸 때 거의 모든 종류 다 쓰는 느낌이다. 되도록이면 너무 많이 안 쓰도록 노력하겠지만, 나는 부사가 너무 좋다.
창비 50돌을 위한 글이라는 '생일 축하'는 공감 가는 부분들이 많았다. '농담이 불가능한 시기'를 버텨낸 선배들이 마련해 준 찧고 까불며 놀 수 있는 마당에서 하는 작가의 농담은 선배들의 진담에 빚지고 있다는 부분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사람을 만나도 복원할 수 없는 당대의 공기와 감촉'은 오랜만에 방문한 모교 도서관에서 느꼈다. 철제 서가들은 그대로인데 20살 새내기 때 그 느낌이 아니라서 마음이 이상했었다. 복원할 수 없는 당대의 공기와 감촉 때문이었나 보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해주는, 내가 좋아하는 다른 작가들의 이야기를 듣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특히 김연수 작가 이야기를 담은 부분이 좋았다. 서른다섯 무렵의 김연수 작가, 서른다섯 무렵의 김애란 작가 이야기를 곧 그 무렵이 되는 내가 읽고 있다는 게 기분이 묘했다. 좋아하는 작가들이 들려주는 '산 문장'에 머물면서, 서른다섯이 되면 다시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에 막내 동생이 안산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막내는 그 친구들보다 한 학년 아래였다. 같은 학교가 아니었음에도, 누군가의 형제였고 친한 친구였고 안면이라도 있는 사이라서 관계가 없는 사람을 찾는 게 더 어려웠다고 한다. 막내는 충격을 받았고 한동안 우울해했다. 막내뿐만 아니라 친구들 대부분이 그랬다. 작가 말대로 우리 모두 '아는 사람'였는데, 안산에서 학교를 다녔던 그 또래들이 받은 충격은 오죽했을까 싶었다. 작가의 시선은 우리와 같은 것을 보고 알아버린 또래 학생들에게 머물렀다가, 제발 그냥 놔두라는 절절한 애원을 하는 유족들을 향했다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슬픔을 나누기 위해 모인 분향소에서 만난 이름 모를 사람들에게서 멈춘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그해 4월을 떠올리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어쩔 줄을 모르겠다.
모의고사를 풀 때 저 작품이 나와서 문제를 풀던 내가 식은땀이 날 것 같았다. 전짓불 뒤에 누가 있었을까. 어느 편이라고 대답을 해야 할까. 저 소설을 처음 지문으로 만난 날 악몽을 꿨다. 실제로 나에게 닥친 일이 아닌데도 그 순간이 너무 무서웠다. 잊기 좋은 이름에서 저 대목을 다시 만날 줄은 몰랐는데, 작가도 '원초적인 두려움'을 일깨우는 장면이라고 해서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싶었다.
그동안 많은 소설을 쓰면서 수많은 인물과 이름을 만들었을 작가에게는 잊혀진 이름들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잊기 좋은 이름은 없다'는 마지막 말이 너무 좋았다. 마음에 남는 구절들이 너무 많아서, 추리고 추렸는데도 인용한 부분이 이렇게 많다.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할 때, 부담스럽지 않은 따뜻한 위로가 필요할 때, 주변 사람과 환경을 따뜻한 눈으로 보고 싶어질 때 종종 꺼내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