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환장 속으로_곽민지
혼자서 부모님을 모시고 가는 스페인 자유여행이라니. 정말 웃음이 하나도 안 나오는 소재였는데, 읽는 내내 (작가분 혈압은 급경사였을지언정) 너무 유쾌해서 계속 웃으면서 읽었다. 가족의 이야기다 보니 읽으면서 뭉클할 때도 있고 찡할 때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쾌함이 더 컸다. 작가분께는 미안하지만, 열 받아서 펄펄 뛰실 때조차 읽는 입장에서는 웃음이 계속 비져 나왔다. 특히 한국에 있는 아가리가이드가 등장하면서부터 유쾌함이 배가 되었다.
내 부모님의 환갑 선물도 여행이었지만, 내가 직접 가이드를 해서 자유여행을 가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동네 뒷산에만 같이 가도 말다툼할 확률이 500%인데, 해외 자유여행이라니.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가서 고생하고 돌아와서 학을 떼더라도 한 번 정도는 같이 자유여행으로 가봐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30초 정도 했다.
외국에서 외국어로 소통하는 자식을 보는 부모님의 마음은 다 비슷한가 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같이 외국에 있을 때 음식점에 들어가서 메뉴판을 가리키며 이거 하나랑 이거 둘이요, 정도 소통을 하는 나를 보면서도 세상 뿌듯해하던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났다.
책에서 작가분의 어투는 시종일관 유쾌한데, 가끔 이렇게 촉촉할 때가 있었다. 유독 이 부분은 나에게 영화처럼 느껴졌고, 언젠가 스페인에 간다면 저 광장에 가보고 싶어졌다.
딸의 눈으로 바라본 부모님에 대한 서술에서도 스페인어로 소통하는 딸에 대한 자부심과 자랑스러움이 느껴졌다. 이런 부분들을 읽으면서 나는 내 부모님의 환갑 때 그런 자랑스러움을 느낄 기회를 못 드린 것이 살짝 미안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 찰나의 자랑스러움을 위해 자유여행을 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미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어서, 말하기 전에 잘 생각해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다. 그러나 머리를 거치기 전에 말이 튀어나올 때나, 당시에는 옳다고 생각해서 한 말인데 나중에 돌이켜보면 후회되는 말을 할 때가 여전히 많다. 여행지에서 그런 말을 했고, 사진을 볼 때마다 생각이 나면 두고두고 후회가 될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공감되는 부분이 정말 많았는데, 이 대목도 그랬다. 선택지가 많은 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여행지에서는 조금 예외인 것 같다. 여러 가지가 한정적인 여행 상황에서는 하나를 고름으로써 포기해야 하는 것이 늘어나는 게 더 안타까울 수밖에 없으니까. 작가의 말처럼 항상 내가 고른 게 최선이었기를 바라게 된다.
꼭 여행지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좋은 걸 보거나 맛있는 걸 먹을 때는 항상 이런 마음이 된다. ‘두고’ 온 가족들이랑 같이 나중에 꼭 다시 와야지.
아가리가이드가 등장하면서 작가는 화날 일이 늘어났고, 나는 웃을 일이 늘어났다. 둘 다 쉽지 않겠지만 부모님과의 자유여행을 두고 둘 중에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아가리가이드가 되고 싶다.
여행보다 더 소중하고 어려울 수 있는 일상에 대한 이야기에 많이 공감했다. 가족이 완벽할 이유도 방법도 없다는 작가의 말을 읽으면서 나는 공감을 넘어 위로를 받는 기분이었다.
아직도 여전히 부모님을 대동하고 해외 자유여행을 갈 자신은 없다. 그래도 책을 읽고 나서는 부모님과의 자유여행이 내 인생에서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 아니라 한 번쯤은 해보고 싶은 일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 엄마 아빠가 이 책의 존재를 몰랐으면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