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원사계 Dec 30. 2023

커피 없는 삶

디카페인 커피는 어떻게 끊나요?

현대인의 필수 3요소라고 한 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카페인, 니코틴, 알코올 이 세 가지를 일컫는 말이다. 그중 알코올과 카페인에 거의 중독되다시피 지내왔던 시간이 무척 길었다. 전 날 새벽까지 죽도록 술을 퍼마시고 다음 날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해장하는 그 기분! 정말 최고이다. 쌉쌀한 원두향이 코를 스치면서 빈 속에 카페인이 쭉쭉 내려가는 느낌이 기가 막힌다. 천년 묵은 숙취도 내려갈 것 같다. 그러나 커피와 카페인 모두를 끊어버린 나는 더 이상 그 짜릿한 기분을 느낄 수가 없게 되었다.


발단은 귀에 이상이 생기면 서부터이다. 어느 날부터 오른쪽 귀가 먹먹하니 물 먹은 소리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방 문이 닫히는 소리, 비행기가 지나가는 소리 같은 낮은 소음에 귀가 답답해지는 증상이 심해졌다. 병원을 돌고 돌아 저주파 난청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병을 진단받았다. 돌발성 난청과는 약간 다른 질환인데 스트레스가 가장 큰 위험요소라고 하는 것이다. 허허. 살다 보니 이런 일도 다 겪는구나. 그래도 원인 불명의 증상으로 시달릴 때보다는 정확한 병명을 알고 나니 속이 편한 기분이었다.


문제는 술과 커피였다. 나는 커피가 귀에 자극을 주는지 처음 알았다. 술과 커피, 나트륨까지 전부 다 끊어내랴 하는 상황이라 그 마음이 절망도 이런 절망이 없었다. 본디 입이 자극적인 편은 아닌지라 나트륨을 줄이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술이랑 커피.. 내가 이 두 가지 없이 잘 살아낼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할 여력이 없었다. 당장에 둘 다 끊어내야만 했다.


의외로 술은 끊는 게 어렵지 않았다. 한 3일 먹지 않으면 딱히 생각이 나지 않고 술을 대체할 수 있는 것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어려움 없이 술과는 작별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커피였다. 커피는 나의 뇌 어딘가에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다가 어느 순간 충동이 툭하고 건드려진다. 카페인의 힘 없이는 도저히 눈이 떠지지 않는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그런 날 정말 미치도록 커피가 마시고 싶어 진다. 


커피만 끊어내는 것이 레벨 3 정도라면 카페인이 들어있는 모든 것을 끊어내는 것은 레벨 5 정도 되는 것 같다. 그토록 사랑하던 녹차음료가 아메리카노보다도 카페인이 초고함량이라는 것을 알게 된 뒤로 무너진 마음은 복구되지 않는다. 녹차만 있으랴 초콜릿에는 또 카페인이 어찌나 많은지. 그동안 그린티 프라푸치노에 자바칩을 넣고 거기에 샷까지 추가한 카페인 덩어리를 먹어온 순간들이 이명처럼 다가왔다 사라지고 있었다. 카페인을 멀리하는 삶은 너무 고단하고 힘들다.


그래서 종종 디카페인 음료를 마시기 시작했다. 카페인을 99% 제거했다고 하니 그래도 안심하고 마실 수 있었다. 정말 눈이 안 떠지고 힘든 날에는 디카페인이라도 한 잔씩 마셔주었다. 놀랍게도 미량 남아있는 카페인 만으로 몸이 반응을 했다. 이게 가능하다고? 고작 1% 남은 카페인으로 정신이 조금 차려진다고? 매번 카페 직원에게 약간의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다른 주문들과 헷갈려서 일반 원두를 넣은 건 아니겠지? 커피를 들고 직원에게 가서 다시 되물은 적도 몇 번 있었다. 그만큼 나는 카페인에 취약한 인간이 되어 버린 것이다. 


지금은 몸이 디카페인 커피에 적응을 했는지 잠이 확 깬다거나 두근거림이 있다거나 하는 증상은 없다. 그러나 문제는 디카페인 커피에 중독이 되어 버린 것이다. 금연껌 못 끊는 신현준 씨의 마음을 절절하게 공감하는 중이다. 아아 정녕 이렇게 디카페인 중독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냐는 말이다. 사는 게 뭐하나 쉬운 것이 없다. 디카페인 커피는 뭘로 끊어내야 하나요?




작가의 이전글 장기여행은 필요할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