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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Dec 06. 2022

팔공산과 슈퍼스타


“혹시, 워크맨 알아요?”


스무 살, 아니면 스물한 살. 댄스동아리에서 열심히 활동 중이고, 아이돌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를 좋아하는 대학생 A에게 물었다. 


지루한 일터를 감내하고 있는 중에 구형 은색 소니 워크맨이 순간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던 것이다. 요즘 대학생들은 전부 아이패드로 필기를 한다며? 와 같은 영양가 없는 질문을 시작으로 한바탕 아이패드 필기의 장점에 대해 말하고 난 후였다. 


대학생 A와는 나이 차이가 꽤 나는 편이었지만 나는 MZ세대의 중간 즈음에 위치한 나이이기도 하다는, 약간은 허황된 세대 간 교감을 염두에 둔 질문이었다.


A는 왜 갑자기 그걸 묻는다는 듯이 나를 잠시 쳐다보더니, 바로 대답했다.


“장성규 <워크맨>이요, 언니?”


혹시 카세트테이프를 넣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워크맨을 생각하셨다면, 당신은 탈락입니다. 라는 문구가 내 머릿속에서 깜빡이고 있는 듯했다. 장성규의 <워크맨>이라니! ‘Workman’이라니. 


워크맨으로 짐작해보건대 MZ세대의 범위는 시급히 수정되어야 함이 분명했다. 카세트테이프와 CD 음악을 들으며 자란 세대와 스마트폰 어플 음악을 들으며 자란 세대는 분명히 다른 세대다. 


어떤 것이 더 좋고 어떤 것이 더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이 둘은 본질적으로 뭉뚱그려서 부를 수 없는, 서로 다른 세계에 있다고 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것이다.


실제 팔공산의 정기가 깃든 소니 워크맨(WALKMAN). 작동 여부는 확인 불가.

어렸을 때 우리 집은 대구의 팔공산을 가끔 갔었다. 정상까지는 오르지 않고 동전바위가 있는 곳까지 올라갔는데 아마 그곳이 불상도 있고 많은 사람들이 절을 하던, 불교를 믿는 부모님에게는 상징적인 장소였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이였던 나에게는 오르기 버거운 산은 분명했지만, 또 어렸기 때문에 토를 달지 않고 얌전히 산을 올랐다. 분명 산을 올랐던 것은 (당시의) 하늘 같았던 부모님의 명령을 거스를 수 없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내가 팔공산을 오를 수 있었던 이유의 8할은 쥬얼리 때문이었다. 


손에 결연히 소니의 은색 워크맨을 손에 쥐고 팔공산을 오르는 초등학생의 귀에는 쥬얼리의 ‘Super Star’가 반복 재생으로 울리고 있었다.


처음 워크맨을 갖게 되었을 때, 클래식 음악 테이프를 듣는 나를 보고 엄마는 감탄했다. 내가 태어나기 전 태교를 할 때 클래식 음악을 많이 들려주었다는 것이었다. 


물론, 나는 클래식 음악을 좋아한다. 피아노의 선율과 오케스트라의 웅장함도 좋아하지만 본능적으로 어린이의 음악 유전자를 결정한 것은 팔공산을 오르며 들은 쥬얼리의 ‘Super Star’였다. 그때 나는 다시는 이전의 순수했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는 케이팝 뽕짝에 입성했음을 깨달았다.(그 뒤로 나는 케이팝의 망령이 되어 구천을 떠돌고 있다.) 


쥬얼리의 ‘그댄 Super Star’ 응원으로 팔공산을 올라 절벽에 500원을 붙여놓는(사실 여러 각도로 비스듬히 깎인 돌에 동전을 기대두는 것에 더 가까운) 미신적 행위까지 마친 후에 무사히 하산을 할 수 있었다.


내 책상 첫 번째 서랍에는 카세트테이프 몇 개와 회색 파우치에 담긴 워크맨이 항상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머지 카세트테이프에 대한 기억이 희미한 것으로 비추어 보았을 때 쥬얼리의 노래는 어린 나에게 엄청난 충격을 줬던 것임에 분명하다. 


그 이후로 CD를 모으기 시작하고, 두어 개의 MP3 플레이어를 거친 끝에 지금은 간편하게 휴대폰 어플로 노래를 듣지만 어쩐지 테이프가 틱틱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쥬얼리의 노래를 듣고 싶을 때가 있다.

안타깝게도 쥬얼리의 카세트 테이프는 찾을 수 없었지만 버즈 카세트 테이프가 있었다. 어린이 제이는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을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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