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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Sep 23. 2022

스위스에도 김치가 있나요

몇 주 전, 소소하게 쓰던 블로그에 새 댓글이 달렸다는 알림이 떴다. 2020년 프라이탁 공식 홈페이지에서 프라이탁을 직접 구매하고 후기를 쓴 글이었다. 프라이탁은 제작 특성상 같은 가방이 없다. 다르게 말하면, 예쁜 패턴을 가진 가방을 가지려면 어느정도 경쟁이 필요하다. 


프라이탁에서 가장 흔한 패턴은 빨간색, 아니면 이케아 색 조합의 가방들이다. 이런 가방을 갖고 싶지는 않았다. (심지어 빨간색 프라이탁은 멋모르던 시절에 이미 사서 가지고 있는 중이었다!)


출근길 버스 안에서도, 갑자기 문득 깨어나 다시 잠들지 못하는 새벽에도 스마트폰으로 프라이탁 홈페이지를 줄창 들락날락하던 끝에 마음에 쏙 드는 가방이 홈페이지에 올라왔다. 함께 프라이탁 브랜드를 좋아하던 친구에게 카톡을 보내자 이렇게 답장이 왔다. ‘저건 투자라고. 빨리 사라.’


당시 공홈에 올라왔던 메신저백 하이파이브오. 색깔도 마음에 들었지만 패턴이 유니크해서 더욱 마음에 들었다.


다급했던 친구의 카톡 메세지.


실제로 오후 아홉시 이십 일 분에 나는 프라이탁 가방을 결제 중이었다. 그리고 실제로는 빠르지만 나에게는 아주 느린 속도로 프라이탁 가방이 스위스에서 우리 집으로 도착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다급하게 택배를 뜯었는데, 택배 안에는 내가 본 사진과 비슷하지만 어딘가 낯선 모습의 프라이탁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택배를 받고 나서 바로 찍은 사진. 공식 홈페이지에서 깨끗해 보이던 흰색 부분에는 난데없는 얼룩이 있었다.


아니 대체, 이게 무슨 얼룩이란 말인가? 순진했던 나는 물티슈를 가져와 얼룩을 지우려고 했지만 턱도 없었다. 방수포에 남아 있던 정체를 알 수 없는, 지워지지 않는 흔적인 듯했다. (프라이탁은 버려진 천막, 자동차 방수포로 물건을 만든다.) 


게다가 광택이 없는 이 가방은 유니크하지만 어쩐지 너무나 후줄근하게 느껴졌다. 당시 나는 블로그에 가방의 후기를 꼭 올려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었기 때문에 한 손은 택배를 열고, 한 손은 사진을 찍으려 스마트폰을 들이대고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마음을 추스르고 가방을 다시 만져서 정리했다. 스위스에서 날아오느라 이리저리 찌그러진 가방을 펴서 모양을 잡아주어 그럴싸하게 만들었지만, 결국 김치 국물같은 자국은 지워지지 않았다.


여하튼 이 글은 내 블로그에서는 인기가 많은 편이었다. 모두들 내게 몇 시에 가방 업데이트가 활발한지 비밀 댓글로 물어보던 때에 특이한 댓글이 하나 달렸다.



[아 김치 국물 너무 웃기네요ㅋㅋㅋ]



당시에는 ‘나의 선택이 틀릴 리가 없어!’라고 절규했던 것 같은데, 들다 보니 색깔도 마음에 들고 해서 어찌어찌 가장 잘 들고 다니는 가방이 되었다. 하지만 가끔 가방에 국물 튀었다고 닦아주려는 사람들이 있긴 했다.


그렇게 프라이탁을 처음 받았을 때의 난감함도 잊혀 가고 이 가방도 내 일상 속에 확연히 정착한 2022년에 댓글이 달린 것이다. 나는 누군가 또 질문 댓글을 남긴 줄 알고 답변을 남기러 블로그에 접속했다. 


그런데 댓글을 단 사람은 다름 아닌 ‘아 김치 국물 너무 웃기네요’였다.



[아 이거는 1년 만에 봐도 웃기네요ㅋㅋㅋ]



인터넷 세계는 기묘하다. 에세이도 아닌 구매 후기글을, 1년 만에 웃기다고 굳이 다시 찾아와(이 사람은 내 이웃도 아니다.) 댓글을 남겨준 사람이. 나의 구매 후기글을 웃기다고 해 준 사람이 참 고맙다는 다소 생소한 감정이 밀려왔다. 나는 답글을 열심히 달았다.



[잘 지내시죠? 이 가방은 여전히 저의 최애가방입니다……. 처음 가방 본 사람들이 국물 튄 줄 알고 닦아주려고 해요 ^^ ㅎㅎ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나는 오랫동안 글을 써왔지만 처음 에세이를 쓰기로 했을 때는 다소 난감한 기분이 들었다. 일기도 많이 썼고, 시와 소설을 가리지 않고 창작물도 제법 썼다. 내가 쓰기 싫어도 나에게는 항상 마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에세이는 남에게 보여줄 수 있는 나의 이야기를 써야 한다. 


나의 이야기에 대한 쓸모를 생각하다 보면 항상 정제되고 교훈적인 이야기, 누군가에게 감동과 깊은 울림을 줘야 한다는 사명감에 휩싸이게 된다. 하지만 내 글과 문장이 누군가에게 웃음을 줄 수 있다는 것, 언제 봐도 편하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이 내게 기쁨이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 글을 쓰고 싶어 브런치에서 에세이를 쓰기로 했다. 이미 세상에 많이 있는 정제되고 교훈적인 이야기를 따라 쓰는 것보다 나만의 글을 가지고 승부를 보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처음은 후줄근한 출발일지라도 뭐 어떠랴. 지워지지 않는 김치 국물이 튄 프라이탁이 결국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방이 된 것처럼, 이 글도 누군가에게 두고두고 읽을 글이 될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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