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페어런트 트랩>
<페어런트 트랩>은 서로의 존재조차 모르고 살던 두 쌍둥이 자매가 우연히 여름 캠프에서 만나게 되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린 우당탕탕 영화입니다. 영화 초반 두 쌍둥이 '애니'와 '할리'는 평범한 자매들이 그렇듯 박 터지게 싸우며 친해지는데요, 두 캐릭터가 가진 매력이 완전히 상반되기 때문에 또래다운 모습의 두 쌍둥이 캐릭터에 몰입하며 영화를 볼 수 있어요.
쌍둥이 자매임을 알게 된 '애니'와 '할리'는 여름 캠프가 끝날 때 서로인 척하며 각자의 집에 바꿔 가는 계획을 짜는데요, 서로를 흉내 내기 위해 노력하는 두 자매의 모습이 귀엽고 사랑스러워 영화에 보는 재미를 더해줍니다. 특히 평생 엄마를 그리워하며 살아온 '할리'가 처음으로 엄마와 만나 시간을 보내는 장면들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애틋함을 불러일으켜요. 반면 '애니'의 경우 처음 만난 아빠가 낯선 사람과 사랑에 빠져있어 애틋함을 느낄 시간이 주어지지 않아 좀 안타깝긴 하더라고요.
디즈니 영화답게 <페어런트 트랩>은 가족의 사랑과 화합에 대해서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는 쌍둥이 자매에 집중하기 보다는 후반부로 갈수록 엄마, 아빠의 재결합에 더 큰 방점을 줘요. 그러다 보니 영화 초반 눈을 끌던 쌍둥이의 매력이 후반부로 갈수록 빛을 잃어 아쉬움이 남더라고요. 그러나 또래답게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중무장한 린제이 로한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즐거운 영화이기도 합니다.
<페어런트 트랩>의 가장 흥미로운 포인트는, 영화 속 발랄한 쌍둥이 자매를 배우 한 사람이 연기했다는 점입니다. 이 영화에서 린제이 로한은 1인 2역을 완벽하게 소화하는데요, 영국에서 온 '애니'와 미국의 '할리'는 태도, 성격부터 억양까지 모든 면이 다르기 때문에 두 캐릭터의 세밀한 차이를 아역 배우가 완벽하게 살려냈다는 점이 신기할 정도입니다.
게다가 꽤 오래전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한 배우가 같은 화면 안에 등장하는 장면이 크게 이질감 없이 구성되어 있어요. 한 배우가 쌍둥이를 연기하는 경우 어설픈 화면 구도나 CG 처리 때문에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스토리보다 화면 구성에 더 정신 팔리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페어런트 트랩>의 경우 정말 린제이 로한의 쌍둥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편집, 연출되어 있기 때문에 온전히 스토리에만 집중할 수 있습니다.
다만 각각 독특한 개성을 부여해 매력적이었던 쌍둥이 자매가 스토리가 진행될수록 각각의 독립적인 캐릭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뭉치로 변해 개성을 잃어가는 점은 좀 아쉬웠어요.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자매는 '애니'와 '할리'로서의 존재감을 잃어가는데요, 스토리 상으로 두 자매를 구분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기껏 쌓아온 캐릭터의 개성을 뭉그러뜨리는 지점이라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페어런트 트랩>이 우연히 다시 만난 쌍둥이 자매가 엄마와 아빠를 다시 사랑에 빠지게 하여 가족을 재결합시킨다는 귀여운 스토리를 가진 영화이긴 하지만, 엄마 아빠의 사랑의 장애물로 아빠의 부를 탐내는 젊은 여자를 설정한 것은 좀 진부하고 게으른 선택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메러디스'를 새로운 가족으로 받아들이자는 아빠의 말(재혼을 의미)에 큰 언니로 입양하는 것이냐는 '애니'의 말이 이 소재에 유일한 펀치라인이나 마찬가지일 정도입니다.
'젊고 돈을 좋아하는 사악한 새엄마'라는 클리셰의 안타까움도 충분히 문제가 되지만 재혼까지 준비하던 아빠가 갑작스럽게 엄마와 다시 사랑을 빠지는 과정 역시 솔직히 찜찜함을 남깁니다. 여기서 진짜 빌런이 누구인가라고 한다면 솔직히 '메러디스'만을 찝기 어려워지는 것도 사실이고요. 엄마와 아빠를 다시 사랑에 빠지게 하기 위해 진부한 클리셰가 아닌 뭔가 새로운 사건이나 인물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영화는 돌고 돌아 동화 같은 결말을 선사합니다. 결국 '애니'와 '할리'가 원했던 모습 그대로 엄마와 아빠가 다시 재결합을 하니까요. 이들 가족의 행복을 응원하고 싶긴 하지만, 동화 같은 결말 뒤에 있을 현실의 모습에 훨씬 신경 쓰이게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각자 영국과 미국에서 나름의 성공을 한 인물들이기 때문에 앞으로 각자의 커리어나 삶의 터전은 어디가 될지 결말 뒤의 이야기가 계속해서 눈에 밟혀요.
두 사람 모두 각자의 직업과 커리어가 있는데, 활동 무대가 너무 떨어져 있기 때문에 누군가가 반드시 희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다가, 이미 불같이 싸워 헤어졌던 부부에게 다시 같은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도 없는 법이라 어른들의 헤피엔딩이 그렇게 동화같은 여운만을 남기지는 않아요. 가족의 재결성이라는 따뜻한 메시지는 좋긴 하지만, 이 두 사람만큼은 굳이 다시 만나지 않더라도 친구로 남아있는 것이 훨씬 좋지 않았나 싶어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디즈니의 사랑, 가족, 행복에 대한 집요한 메시지가 놀랍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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