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흔적] 시작하는 방법
사랑이 지나가고, 또 사랑이 지나가고, 아무도 오지 않을 것 같던 내 곁에 누군가 나란히 앉아있다.
내 마음이 망가져버렸다는 핑계로 색안경을 끼고는 다가오는 사람들의 마음을 받기도 전에 거절하고, 새로운 만남들을 시작하기도 전에 망쳐버리던 때였다. 첫눈에 반하는 대신 ‘내 사람은 아닌가 보다.’라고 생각했던 사람이다. 삐뚤어진 마음으로 팔짱을 착 끼고는 ‘아 역시 그 사람이 아니면 안 되는 건가.’하며 색안경을 끼고 그를 똑바로 보지 않았다.
몇 번의 만남을 통해 황폐해진 내 마음을 나조차 돌보고 싶지 않아 방치해두었는데, 사실은 곁에 서있는 작은 마음이 나는 필요했던 모양이다.
원래대로라면 단단히 닫혀있었어야 할 마음의 틈으로 그 사람이 조금씩 흘러들어온다.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두 번 세 번 자꾸만 만나게 되는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마음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두렵고 무서워 발톱을 세우는 나에게 뭐 그게 어떠냐며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툭- 이야기하는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마음을 주고받는 게 너무 어렵고 두려워진 내가 마음을 열기까지 기다려주는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아이 같은 말을 하면서 어른의 마음을 가진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만나면 잔뜩 긴장하는 나에게 손깍지를 다정하게 껴주는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그렇게 궁금한 게 많은 나는 답을 찾기 위해 저 사람을 한번 더 떠올린다.
조급해하지도 느긋하지도 않게 불안한 나를 기다려 준 이 사람에게 조금씩 시선이 간다.
언젠가부터 욕심내지 않는 저 사람이 나의 아침에, 밤에, 새벽녘 찬 공기에 따스하게 스며들고 있다.
저 사람이 좋은 걸까 싫은 걸까 편한 걸까 불편한 걸까. 알 수 없는 물음을 계속해서 던져보아도 나 혼자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답이 궁금한 나는 내 안이 아닌 우리 안에서 답을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밝은 빛의 눈동자에 내 시선을 마주하고, 예쁜 속눈썹을 쓰다듬고, 혈색이 도는 입술을 찬찬히 들여다보다 입을 맞추고, 따뜻하기도 차갑기도 한 손을 포개어 잡고 싶다.
목에 걸리던 말들을 내뱉고, 두려웠던 마음을 고백하고 매일의 즐거움과 슬픔을 함께 이야기하고 싶다.
불 같이 달아오르지 않았으니 갑자기 식어버릴까 미리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다.
알고 있는 것보다 알아가야 할 물음표가 많은 사람이라 시간을 들여야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을 하면서도 사실은 다 알아채고 있는 이 사람을 믿어보고 싶다.
난 또 그렇게 후회할지도 모르는 일을 또다시 시작해보려 한다.
우리 안에서 내가 궁금했던 저 사람을 알아가고, 이제 막 싹을 틔운 이 마음을 건강하고 아름답게 잘 가꾸어서 그렇게 건강해진 내 작은 세계에 초대해 이 사람에게, 덕분에 잘 가꿀 수 있었다고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시작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저 사람이 궁금해'라는 질문으로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