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남이 오락하는 걸 보고 있어?
이해가 될지 모르겠지만 비디오게임을 즐기는 사람들 중 일부는 다른 사람이 게임하는 모습을 온라인으로 보길 즐긴다. 사실 말이 '일부'지 이런 사람은 대단히 많다. (중략) 도대체 왜 다른 사람이 게임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데 시간을 보내고 거기다 돈까지 낸단 말인가?
— 탈레스 S. 테이셰이라, 《디커플링》
게임 스트리밍 시장이 날로 커지는 것과 별개로, 이 현상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다. 대체 왜 남이 게임하는 걸 보냐는 것이다.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에게 게임 방송 시청이라는 건 뭔가 남이 대신해줄 수 없는 부분을 맡기는 행위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나 대신 잠자기, 나 대신 놀기, 나 대신 게임하기. 놀고 먹는 건 내 자신이 해야 좋은 거지, 그걸 남이 하는 걸 보는 게 그렇게 좋을까?
반대로 게임 방송을 보는 사람들은 이런 질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 나를 포함한 게임 방송 시청자들에게 이런 질문은 마치 "왜 축구를 직접 하지 않고 축구 경기를 보는 거지?" 내지는 "왜 여행을 직접 가지 않고 여행 예능을 보는 거지?"와 같이 들린다. 직접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대리만족이라는 점에서 게임 방송 시청은 여타의 방송 콘텐츠와 큰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유독 게임 방송에 대해서만 이런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와 내가 어떤 전제부터 공유가 안 되는 건지 고민하게 된다.
통계에 따르면 세계 최대 게임 스트리밍 플랫폼 트위치twitch.tv의 월간 사용자 수는 약 1억 4천만 명이라고 한다. 남이 게임하는 광경을 보는 건 어떻게 수천만 명의 취미가 되었을까. 위에서 인용한 《디커플링》의 저자 테이셰이라 교수는 경영학적인 관점에서 게임 시청의 가치를 이렇게 분석한다. "프로게이머에게서 배울 기회를 얻고, 또한 관객으로서 프로스포츠를 볼 때와 비슷한 즐거움"을 누리는 것.
이 말은 틀린 것은 아니지만 게임에 대해 굉장히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게임 스트리머가 모두 프로게이머는 아니기 때문이다. 심지어 게임을 평균 수준보다 못하는 스트리머도 제법 많은데, 단순히 '프로 스포츠를 보는 것과 같은 경험' 정도의 비유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내가 생각하기에 게임 방송을 시청하는 현실적인 이유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는 듯하다.
게임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게임을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쉽게 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런 사람들이 게임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그 옛날 '동네 오락실'에서 '100원짜리'로 '한 판 가볍게' 할 수 있었던 슈팅이나 격투 게임 정도에 머물러 있다. PC 게임 쪽도 마찬가지다. 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컴퓨터 기사는 윈도우 설치를 해주며 '서비스'로 불법 복제 컴퓨터 게임을 깔아주곤 했다(물론 윈도우도 불법 복제판이다). 게임을 하기 위해 전기세 이상의 어떤 추가 비용이 들어간다는 개념 자체가 희소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계정 단위로 라이센스를 부과하는 방식이 되면서, 게임은 (원래 당연한 일이지만) 이제 돈을 주고 사야 하는 재화가 되었다. 5-7만원 정도를 지불하고 패키지를 사든, 월 2-3만 원 정도의 월정액 비용을 내든, 아니면 게임 자체는 무료지만 수십-수백만 원의 과금을 하든. 또한 죽을 때까지 2D 고전게임만 할 생각이 아니라면 어느 정도 사양이 되는 컴퓨터를 구비해야 한다. 특히 요즘은 그래픽카드 가격이 미친 듯이 날뛰어서 좀 쾌적하게 게임을 하고 싶으면 백만 원 이상 지출은 각오해야 한다. 콘솔 게임을 하려면 당연히 게임기를 구매해야 하며 그 비용 역시 수십만 원대다. 게임 스트리머들은 이 모든 비용을 시청자 대신 감수하고 게임을 최대한 재밌게 즐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유튜브나 트위치 앱을 켜서 그걸 지켜보는 건, 게임을 직접 하는 것보다 훨씬 수월한 일이다.
게임을 하기 위해 소모되는 정신력도 비용이라고 볼 수 있다면 이 역시 증가했다고 볼 수 있다. 전투기를 조종해 총알을 쏘거나, 오른쪽으로 진행하면서 동전을 먹는 단순한 구성의 게임은 이제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퍼즐 장르에는 아직 단순한 게임들이 많지만, 시장의 주류에 해당하는 액션, 전략, 롤플레잉 게임들은 기존 방식에 쉽게 싫증을 내는 고객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점점 복잡한 방향으로 발전했다.
그래서 요즘 게임은 새로 시작할 때마다 거의 신규 업무 파악에 준하는 심적 리소스가 들어간다. 조작법을 익히고, 최적화된 장비 세팅과 전략을 찾아보고, 장편소설과 맞먹는 볼륨의 스토리를 따라가야 한다. 남과 함께 하는 방식의 게임은 더 심하다. [리그 오브 레전드]처럼 승패를 걸고 5대5로 벌어지는 팀 전투 게임은 그냥 작은 협업 프로젝트라고 봐도 좋다. 그것도 나의 작은 실수조차 용납하지 않고 온갖 모욕과 불평불만을 노골적으로 쏟아내는 상사 4명과의 협업. 어떤 의미론 역설적이지만, 이런 점들 때문에 이제 게임을 직접 플레이하는 건 매우 성가시고 피곤한 일이 되었다.
요즘 게임에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영화와 구분되지 않는 것들이 많다. 단순히 그래픽만 좋아진 것이 아니라, 대화 씬의 연출 기법이 영화와 매우 유사해졌다. 헐리우드 스타가 얼굴 모델링을 제공하고 더빙이나 모션 캡처 연기에 참여하기도 한다. 그뿐 아니라 스토리도 치밀한 복선과 반전을 갖춘 것들이 많다. 이런 게임에 대한 상찬으로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다"는 구태의연한 표현이 자주 쓰이기도 한다.
이런 게임의 플레이 영상을 보는 경험은, 직접 게임을 하는 것과 비교했을 때 생각보다 많은 부분을 충족시켜준다. 직접 캐릭터를 조종하는 손맛이야 없겠지만, 그 부분만 잠시 스트리머에게 맡긴다고 생각한다면 스토리를 즐기는 부분만큼은 직접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스토리를 진행하기 위해 게임을 잘 할 자신은 없는데 스토리만 궁금한 사람이라면 게임 방송을 보는 것만큼 좋은 선택지가 없다.
게임을 잘 못 하는 것을 컨셉으로 잡은 것이 아니라면, 게임 방송을 전문으로 하는 스트리머들은 게임을 웬만큼은 하는 사람들이다. 테이셰이라 교수가 말했듯 이 사람들의 플레이를 보며 '한 수 배워가는' 것 역시 게임 방송에서 얻는 즐거움 중 하나다. 스포츠 경기나 바둑 방송을 보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사람들이 바둑, 골프, 요리 방송의 존재 의의를 인정하면서도 게임 방송엔 같은 잣대를 적용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게임을 어떤 '깊이'가 있는 취미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바둑판을 보며 형세를 읽고 최선의 수를 찾아내는 역량이 존중받을 만한 것이고, 흐트러짐 없이 완벽한 자세의 스윙이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상대의 행동을 예측해 반격 기술을 입력하는 판단력과 순발력 역시 가치있는 것일 수 있다.
게임 방송의 존재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은 비단 기성세대뿐만이 아니다. 내 지인 중에는 먹방을 즐겨 보면서도 게임 방송은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20대 여성이 있다. 반대로 먹방을 보지 않는 나는 그 문화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어떤 이유에서건 음식을 마음껏 먹지 못하는 나 대신 누군가가 먹음직스럽게 먹는 광경을 보고 싶어하는 마음은 알 것 같다. 하지만 식사에서 가장 중요한 감각인 미각이 누락된 경험이 식사를 대신할 수 있다는 점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결론은 내가 먹는 걸 그렇게까지는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식도락을 진심으로 즐기는 사람들은 음식의 비주얼과 그것을 먹는 장면만 봐도 큰 즐거움을 얻는다. 나는 그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게임 방송에 대해서도 역지사지의 유추를 할 수 있었다. 게임 방송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게임을 그렇게까지 좋아하지 않고 잘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타인이 게임하는 걸 보기만 해도 즐겁다는 그 감각을 상상하지 못한다.
사람은 경험해본 만큼만 상상할 수 있고, 그건 취미에 대한 입장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무언가에 매료된 사람이 충분히 많다면 거기에는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