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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주은 Jan 06. 2019

나의 정체

'82년생 김지영'을 읽은 밤

  오늘도 퇴근을 하고 또 집으로 출근을 한다.

 또 다른 나의 이름이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다. 나는 나만이 아니다. 능력 있는 선생님, 친절한 엄마, 다정한 아내, 믿음직스런 딸, 군말 없는 며느리, 말 잘 듣는 동서……. 이 중에 하나라도 못하면 무능한 워킹맘,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워킹맘으로 만들어 버리는 사회. 직장으로, 또 집으로 출근을 하면서 전전긍긍 모든 주어진 것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보았지만 어느 순간 멈추어 서서 나를 돌아보니 나는, 얼굴 보기 힘든 이웃집 여자, 놀이터에 애만 내보내고 벤치에서 수다 따위 떨지 않는 재수 없는 아이 친구 엄마, 시아버지 생일날 미역국도 못 챙기는 며느리, 잔소리쟁이 엄마, 땍땍거리는 아내, 늘 헐레벌떡 집에 가는 직장 동료, 정신없는 야속한 딸, 몸사리는 동서……. 아무리 노력하여도 나의 성적표는 언제나 ‘미도달’이다. 집에서 놀면 능력 없는 맘충, 일하면 애는 나 몰라라하고 자기 꿈만 쫓는 야멸찬 워킹맘. 아이가 필통이라도 두고 가면, 준비물을 하나라도 빠뜨리면 엄마가 일을 하니 못 챙겨 애가 저 모양이란다. 애가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엄마가 일을 해서 사랑을 못 받아 그렇단다. 그런 질타와 수군거림 속에서 나는 12년차 아내로, 엄마로 살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나와 같은 시대를 보내고, 같은 사회를 살아내야 했고, 같은 고민을 했어야 했던 김지영, 또 여러 명의 김지영을 볼 때마다 나를 보듯, 울컥거림을 참기가 힘들었다. 나는 81년에 태어나 81년에 엄마로 살아가는 엄마와 함께 그 시대를 보냈다. 다행히 김지영의 엄마는 참으로 내가 보기에 부러운 엄마이다. 가난했지만 그 가난을 뚫고 갈 만한 능력이 있었고, 운도 있었다. 그래서 김지영은 어쩌면 여러 김지영들 중에서 좀 편한 축의 김지영이 아니었나 싶다. 고3때 앉아만 있어서 굵어진 허벅지를 보며 선생님들이 그러셨다. 스트레스 받지 마라. 대학 가면 살 다 빠진다. 이뻐진다. 멋진 남자들이 즐비하다. 그러니 지금은 열심히 먹고 열심히 공부해라. 정녕 그랬다. 한 학기 등록금이라도 아껴볼 생각으로 조기졸업을 목표로 빡빡하게 최대한 많은 수업을 들었었다. 공강 하나 없이 아침부터 오후까지 고등학생 같이 수업을 들었다. 수업이 마치면 부리나케 알바하는 학원으로 갔다. 저녁도 굶고 연강 수업을 하고 집에 오면 12가 넘는다. 그때서야 내 공부를 겨우 할 수 있었다. 그때 나의 소원은 마음껏 내 공부를 해보는 것이었다. 시험 기간이면 가르치는 애들 시험 대비 해주느라 내 공부할 시간은 거의 나지 않았다. 나는 고3 때보다 더 잠을 못 잤고, 심지어 대부분의 끼니를 점심 외에는 라면이나 빵, 편의점 삼각김밥으로 연명했다. 정말 살은 쭉쭉 빠졌다. 살이 찔 틈이 없었다. 살이 가도록 무언가를 열심히, 여유있게 잘 먹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돈을 벌어도 장학금을 놓쳐버린 학기는 학자금 대출을 받아야만 했다. 나는 학교 캠퍼스를 천천히 걸으며 잘생긴 남자를 구경할 시간 따윈 없었다. 사회가 어떻고, 인생이 어떻고, 논하며 여유롭게 대학 생활을 즐기는 동아리 따위도 갈 수 없었다. 

 그렇게 졸업을 했다. 졸업을 했지만 나의 학력이나 나의 배운 것으로 뭘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또 편입을 했다. 또 그렇게 돈을 벌며 공부를 했다. 졸업을 했으나 여전히 같았다. 그런 와중에도 청춘은 청춘이라 결혼을 했다. 사람은 원래 어려울 때 작은 배려에도 깊이 감동하는 법이다. 청춘은 힘들어도 연애를 하고, 슬퍼도 연애를 하고, 돈이 없어도 연애를 한다. 그리고 결혼도 하고, 또 애도 낳는다. 그게 청춘들만이 가질 수 있는 무모한 용기이다. 터널 같은 이십대를 보냈는데 결혼을 하니 이건 정말 말도 안 된다. 내가 지금껏 사는데 아무 것도 해 준 적 없는 시부모들은 너무도 당당하게 무언가를 요구하기 시작하고, 시누들은 이제 자신의 엄마를 좀 편히 살게 해드리고 싶어 하고, 남편은 당연히 내가 애를 아주아주 잘 기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당연히 직업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말이다. 나는 돈도 잘 벌어 와야 하고, 애도 잘 길러야 하고, 살림도 잘 살아야 하고 갑자기 가족이 된 모두를 잘 보살펴야 했다. 결혼이란 이렇듯 비논리적이고, 불평등하였다. 

 아프게 된 김지영이 시어른께 하나하나 따지는 장면에서 나는 참 웃기면서도 슬펐다. 그런 생각을 하면 안 되겠지만 나도 한번쯤 잠시나마 아프게 되어 그런 말을 해보고 싶어졌다. 늘 명절에 시댁을 나올 때마다 어머니의 따가운 눈초리가 힘겨웠다. 마치 죄인처럼 나와야 하는 그 시간이 말이다. 한번은 내가 좀 일찍 친정에 가면 안 되냐는 나의 말에 어머니는 너무도 어이없어 하시며 그럼 시누랑은 항상 얼굴도 못 보는데 시누 오면 하루는 같이 보내고 가야하는 것 아니냐며 당당히 말씀하시는 어머니. 우리집 시누들은 나는 항상 못 보는데 말이다. 여자의 적은 여자. 어머니도 명절에 친정 한번 못 가본 게 한이시라며 입버릇처럼 말하시지만 결국 어머니도 그런 어머니가 되시고 말았다. 나도 나의 아들이 장가를 가면 이런 어머니가 될까? 문득 생각해보게 된다. 

 이 책에서 작가는 말한다. 우리 어머니들은 이랬고, 우리는 좀 더 나아진 것도 같고, 그러면 우리의 딸들은 더 나아져야하는데 우리 사회를 보니 내가 어머니와 별반 다른 것이 없는 것처럼 우리 딸들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것. 참으로 그러하다. 나의 딸이 과연 이 모든 관습을 뛰어넘고, 이 모든 편견을 뛰어넘고 온전히 자기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사실 우리는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어머니 세대보다 낫다는 생각. 적어도 우리에겐 뼈아픈 가난은 없지 않은가? 산업화 과정 중에서 겪은 그들의 힘겨움이 작지 않지만 그 과정을 끝내고 이룩한 지금의 시점에서 ‘우리가 가지는 행복의 총량이 과연 클까?’ 하는 문제에서 우리는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다고 우리가 또 완벽히 그 가난을 벗어났느냐의 문제는 또 미지수다. 우리는 다 함께 가난하여 그런 시대를 잘 이겨내었다 칭송받지도 못하면서 여전히 가난하고, 그 힘겨운 가운데서 아이를 잘 키워내고 있다 다독임도 받지 못하면서 끝없이 홀로 아이를 짊어지고 가야함에 서 있다. 게다가 우리는 엄마가 없어도 혼자서 잘 컸고, 아빠가 없어도 혼자서 잘 해냈다. 지금에서야 보면 그게 깊은 흉터로 남아 있지만 그땐 그렇게 다 컸다. 하지만 어려움을 모르는 나의 자녀 세대는 그러한 작은 불친절도 용납하지 않는다. 조금의 상처도 허용하지 않는다. 이런 아이를 길러내야 하고, 가난을 극복하고 우리를 이만큼 키워낸 부모님에 대한 부채 또한 가득하다. 게다가 실업율이 10퍼센트를 넘어선 이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살면서 치열히 돈을 벌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해야 나는 비로소 어머니의 제대로 된 이름을 찾는다. 이 얼마나 어이없는 일인가! 갈수록 더하면 더했지 덜해지지 않는 것을 보니 나의 딸은 더 심히 고통을 느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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