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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진 Nov 02. 2021

암흑의 늪

엄마의 시간 속으로

세월은 자꾸만 간다.

큰언니와 형부에게 신세 져서 힘들게 구한 전셋집도 물거품처럼 날아갔다.

매일 싸운다.

다독여도 보고, 채근도 해보지만 소용이 없다.

단 한 번을 월급으로 가져오는 일이 없다.

전에 은행에 가서 통장정리를 하니 월급이라고 10만 원이 들어왔더라.

그래서 그 돈이라도 있으면 낼 거 내고, 애들 먹일 거 장 보면 되겠다 싶어 출금액 10만 원을 써서 은행 직원에게 내밀었는데 은행원이 나에게 잔고가 1만 원이라고 하는 말에 화끈거리는 얼굴을 감추지도 못하고 은행을 황급히 나왔다.

그게 여태 남편 월급의 전부였다.

너무 화가 나서 이게 돈이냐며 그날 또 대판 싸웠었다.


주택에 살 땐 엄마가 애들이랑 같은 방을 써도 여유공간이 있어서 좀 나았는데 이사와 보니 영구임대아파트는 감옥이다.

언니의 서운한 말 때문에 시위하듯이 엄마를 모시고 가긴 했지만 사실 우리 집엔 앉을자리조차 없다.

엄마를 언니가 모시게 된 건 차라리 잘된 일 일지도 모른다.

내 앞가림도 해결이 안 되는데 엄마를 어떻게 모실까.

40대가 되면 어느 정도 자리는 잡을 거라 생각했는데 자리는커녕 도로 나빠지기만 한다.

매일매일 암흑의 늪으로 빠져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애들은 자꾸 커가는데, 나는 매일 가슴이 짓눌린다.

남편이 벌어오는 돈은 없고, 내가 버는 돈으로 모든 생활비를 메꾸려고 하니 버거워서 공장 사장에게 남자가 하는 일만큼 하겠다고 하고 월급 10만 원을 더 받기로 했다.

내일모레면 50줄에 들어서는데 매일 일수를 써야 해결되는 생활이 언제쯤이나 끝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제발 올해는 개인택시 대상자 명단에 들어있어야 할 텐데 미칠 지경이다.




툭, 툭.

자려고 누운 나를 남편이 발로 툭툭 건드린다.

쏘아보니 대뜸 200만 원만 구해달라고 한다.


"또네, 또. 내가 200만 원이 어딨어요? 그런 돈 있으면 집에 먹을 것부터 샀겠지. 200만 원을 가져와서 생활비로 쓰라고 줘도 시원찮을 판에 무슨 되도 않는 소릴."


"니는 일하면서 그 돈도 못 구하나? 당장 회사에 밀린 사납금 안내면 개인택시 대상 후보에서 밀린다고 하는데."


"돈 구할 데가 어딨다고 대체! 냉장고에 다 쉬어빠진 김치 하나 있어요. 애들 먹을 것도 없는데 그 큰돈을 어디서 구하는데. 그렇게 능력 있으면 직접 구하라미"


매일 일하러 나가는 사람이 도대체 왜 사납금도 못 메꾸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내 월급 80만 원으로 나갈 곳은 천지인데 벌어와서 보태지는 못할 망정 나한테 돈을 구해달라니 말이 되는 일인가?

하.... 저 돈은 또 어디서 구하지?

머리가 너무 아프다.

살고 싶지가 않다.

벌써 4년째 개인택시 대상에서 밀리고 있다.

대수가 원래 나와야 할 대수보다 적게 나와서, 시장의 부정으로, 정책 변화 등...

대체 언제까지 밀리는 걸까?

재수 없게 사고라도 나면 십수 년을 기다린 내 시간은 다 날아가는데 가슴이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것 같다.

날 도와주는 사람은 사방천지에 아무도 없고, 간 빼먹으려고 하는 인간들 뿐이다.

너무 외롭다.


별 보고 나가서 별 보고 들어오면서 하루 종일 서서 옷걸이 만드는데 나는 이 감옥 같은 공장에서 언제나 벗어날 수 있을지...

어느 날, 사장이 말하더라.

"아줌마, 아줌마는 이 공장에서 절-대 못 벗어나요. 아마 아저씨가 개인택시 타도 마찬가질 걸? 두고 봐라."


'저 썅놈의 새끼가.'


비아냥대는 사장의 말투로 저주 같은 말을 들으니 화가 치밀었다.

철저히 나를 무시하는데 속에서 천불이 인다.

공장에 처박혀서 절대 못 벗어날 거라는 저 말이 나에게 비수처럼 꽂힌다.

내가 왜?

어디서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지껄이고 있어.

개인택시만 타면 보자.

저 놈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줄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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