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는 나를 글쓰게 했다
축알못의 글쓰기(1)
2018년 6월 이전에 누가 나한테 "난 축구때문에 글을 쓰고싶어졌어."라고 하면 뻥이라고 할 거다. 뭔 소리야, 축구랑 글쓰기랑 뭔 상관인데?
그런데 진짜다.
나는 2018년 월드컵의 충격 이후 뛰는 열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조현우 골키퍼의 활약에 충격을 받은 것.
축구는 그냥 골을 넣는 스포츠라고 생각했던 나는, 미친듯이 잘 막으면 절대 지지는 않는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깨닫게 된다. 조현우가 K리그 꼴찌 팀의 골키퍼라는 것까지 알게 되자 나의 평온했던 일상(?)이 지진처럼 흔들리기 시작했다.
생전 관심 없던 스포츠뉴스를 보기 시작했고, K리그 일정을 매일 검색하고 꿰고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난생 처음으로 가 보게 된 축구장.
K리그가 연중 내내 하는 건지도, 수원삼성이니 전북현대니 하는 게 K리그인지도 전혀 몰랐던 나는 새파란 하늘과 초록빛을 내는 그라운드의 풍경에 완전히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축구를 보는 방법은 생각보다 쉬웠다. 우리 팀이 공을 잡으면 '우와!' 하고, 골을 넣으면 '우와아아!' 하면 되는 거였다.
어느덧 마냥 신나게 반응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팀에 나를 대입시키고 팀과 희비를 같이 하는 즐거움을 금방 습득했다.
빌드업이라는 개념도 이 때 처음 알았다.
그 전까지는 축구는 그저 아무나 우연히 공을 잘 받아서 골을 넣는 것인 줄로만 알았었다. 그런데 공을 수비진영->중원->공격진영에까지 무사히 주어야 골을 넣는 거라는, 놀랍고 당연한 사실을 그 때 깨달은 것이다.
얼마나 큰 깨달음이었는지 모른다. '어, 이거 축구를 좀 알면 더 재미있겠는데.'라는 생각에 축구 무식자인 나는 K리그를 공부처럼 외우기 시작했다.
출처: PixabayK리그 팀과 홈구장과 감독을 외우고, 선수를 외웠다.
처음부터 다 외우려면 힘드니까 3명씩만 외우고 다시 1명씩을 추가하는 공부법을 썼다. 누가 공격수인지 누가 수비수인지, 누가 왼쪽이고 누가 오른쪽인지 아주 상세히 공부했다.
출처: FIFA모바일 게임 캡쳐축구 게임도 깔았다. 흥미 유발 학습법. 사람들이 K리그를 무시하는 이유도 이 때 어렴풋이 알았다. K리그 선수들은 스탯이 낮았다. 보통 60점대, 아무리 잘 하는 선수도 70점대다. 그런데 영국의 프리미어 리거들은 기본적으로 86부터 시작하더라고.
게임만 한 건 아니다. 책도 빌려봤다. 도서관에 몇 없는 축구 책을 빌려서도 보고 사서도 봤다. 수십명의 축구선수를 위키백과에 검색해보며 하루를 보낸 날도 있다.
관심사가 추가되고 나니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시즌은 끝나버렸지만 겨울 내내 이적시장 뉴스가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문선민이 전북으로 가다니, 한승규가 전북으로 가다니. 때맞춰 손흥민은 유럽 무대에서 매일같이 골을 넣었다. 아침 저녁으로 새로운 뉴스가 쏟아졌다.
출처: Pixabay하지만 내가 알게 된 건 K리그의 재미만이 아니었다. K리그에 대한 뼈시린 외면과 무시도 세트처럼 접하게 되었다.
수많은 댓글이 자꾸만 K리그를 비아냥댔다. K리그에 대한 기사만 뜨면 첫 번째로 ‘아직도 K리그 보는 사람이 있냐.’라는 댓글이 달리고 있었다. 내가 본다, 내가.
사실 K리그는 계속 노력 중이다(아무도 모르게). 놀랍게도 K리그의 비전은 '2022년 세계 10대리그 달성'이다.
정확한 위상 파악을 위해 도입한 '유료관중 지표'가 실제로 크게 늘었고, 올해는 개막전부터 곳곳이 최다관중을 기록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편한 지표를 버리고 어려운 지표를 선택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결심인지를. 그것만으로도 노력의 의지가 있다고 확대해석해도 무리 없지 않을까?
출처: 프로축구연맹'노력하고 있는데. 직접 가서 보면 정말 재미있는데. 관심 가지고 나면 일상이 더 넓어지고 활기차지는데.'
사람들이 몰라줘서 슬펐다. 평범한 나라도 K리그를 따뜻하게 응원하고 싶다는 원대한 꿈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블로그를 시작했다. 축구블로거. 그런데 금방 한계에 부딪혔다. 축구에 대해서 어느 수준 이상의 글을 쓸 만한 능력이 안 되니까. 다른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다.
글을 쓰기 위해 노트북을 샀다그냥 글 말고 '이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술술 넘어가며 끝까지 읽을 수 있도록.
그러다 꿈없는 백수였던 시절의 내가 축구에 빠지게 되어 K리그 콘텐츠로 먹고살게 되는 소설을 구상하기에 이르렀다!
급기야 소설을 쓰기 위해 노트북을 장만했다.
내 '쓸데없는 열정'은 아무도 막을 수 없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매일매일 시간을 들여 두 달간 10만자의 소설을 완성했다.(써 놓고 보니 아주 유치하고 창피하다.)
출근하면서도 쓰고 집에 와서도 쓰고,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생각난 내용을 썼다. 쓰다가 막히면 소설을 쓰는 방법을 검색해서 배웠다.
소설 속의 나로 한참을 살았더니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잘 쓴 글이 왜 잘 쓴 글인지 보이기 시작했다. 내 글의 고칠 점이 마구마구 보였고, 잘 쓰고 싶어졌다. 그래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생활 속의 글감들을 꽉 잡아두기 위해 노트 어플을 유료결제했다.
그렇게 되고 나서야 난 일기를 써야 하는 진짜 이유를 알게 되었다. 매일의 감정과 기억을 남겨놓았다면 얼마나 글감을 발굴하고 디테일을 풍성하게 하는 데 힘이 되었을지! 그 날은 30년의 흘러간 인생을 붙잡고 후회에 땅을 쳤다.
이 모든 게 반 년만에 이루어진 일이다. 이러니 '축구가 나를 글쓰게 한' 게 맞지. 초등학교 때 밀린 일기를 울면서 쓸 때는 내가 글을 쓰고 싶은 날이 올 줄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이 생긴 것의 차이이다.
나는 쓰고 싶은 글이 명확한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