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매치에서 또 '무'를 캤다!
꿈과 희망 가득찬 어린이날, 저녁 5시 56분(이었을 걸로 추정)! 이번엔 정말 이기는 줄 알았다. 서울 팬들이 '승점 자판기'라고 놀려대는 게 너무 듣기 싫어서, 이번엔 꼭 이겼으면 했다. 1:0으로 90분까지 버텨냈다. 다 이긴 줄 알고 기뻐하고 있었다! 그런데 또 막판에 먹혔다.
내가 이토록 열을 올리는 슈퍼매치란, K리그의 제1의 라이벌 경기 되시겠다. FC서울과 수원삼성과의 경기로, 과거 한창 전성기일 때는 K리그 최고의 흥행상품으로 관중기록을 견인했다고 한다.
FC서울의 전신은 '안양 LG 치타스'라는데, 그 때 수원과 안양을 오가는 길목을 두고 '지지대 더비'라고 부르던 것이 지금의 '슈퍼매치'로 발전했단다.
뭐 역사가 더 있다는데 K리그에 작년에 입문한 나에게는 다 옛날 얘기고, 오로지 '대도시 수원 대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싸움'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지고 싶지 않기에 충분했다.
운명은 찰나에 바뀌었다. 마지막 추가시간 6분에 서울에 프리킥을 내 줬는데, 완전히 속았다. 한 방에 차는 게 아니라 약하게 차서 다른 선수가 골을 넣는, 이른바 시간차(?) 작전이었던 것. 잔뜩 긴장하고 있던 노동건 골키퍼가 주춤했다. 약하게 흐른 공을 받아 슈팅하려던 고요한에게 발을 건 꼴이 되어 페널티킥까지 주고 말았다. 페널티킥을 차느라 98분까지 경기가 흘러갔다. 결국 페널티킥 실점으로 1:1로 끝났다.
정말 약이 올랐다. 화가 나고 입이 대차게 뾰죽 나왔다. 98분에 골이 들어가자 순간 '빠직'하며 핸드폰을 던져 버렸다. 맨날 '무'다, '무'. 깊은 한숨이 나왔다. 그대로 이불 위에 대자로 뻗어버렸다. 그렇게 멍하니 몇십 분을 누워있었다.
천장만 멍하니..
시간이 조금 지나자 조금씩 정신이 들었다. 기분은 정말 나쁜데, 누구 탓을 할 수도 없었다.
마지막 상황에 페널티킥 준 건 객관적으로 맞긴 맞았다. 골대 바로 앞에서 발이 걸렸으니 당연히 페널티킥이다. 발을 안 걸렸으면 어차피 못 넣을 각도였는데, 발이 걸렸으니까 페널티킥이 맞다. 그래, 맞아 맞다고.
그러면 왜 화가 났냐고? 그래, 추가시간을 6분이나 준 게 부당하다 이거다. 에휴, 아니다. 서로가 거칠었던 탓에 확실히 VAR 판독이 많았다. 추가시간을 많이 주는 것도 맞긴 맞았다.
우씨, 합리적으로 생각하려고 할수록 더 화가 났다.
원망은 경기가 한창이던 시간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애초에 '신세계가 머리를 맞아서 피가 났을 때 퇴장을 줬어야지.'까지 생각이 미쳤다.
아 그래, 그거야. 난 그래서 화가 난 거야. 퇴장 시켰어야지, 아무리 의도적이지 않았다고 해도!
하면서 머리 속에서 '의도하지 않았지만 상대에게 상해를 입힌 선수의 퇴장'이 있었던 경기를 생각해내보려고 애썼다.
출처: 스포츠서울불공평하다, 불공평해.
그치만 원래 세상은 불공평하다. 원래가 불공평하고 원래가 억울하다. 그래, 공평이란 건 어차피 관념적 허상일 뿐이다. 뭐 '양 팀 간에 0.00000000001의 치우침도 없는 상태'를 공평이라고 한다면, 어떤 경기나 불공평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진짜 불공평한지도 확실치 않다. 그저 나의 감각과 상대의 감각이 있을 뿐이다. 서울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후반에 넣은 골이 오프사이드 판정으로 취소된 것 말이다. 서울 팬들은 그걸 부당하다고 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 양쪽은 자신의 감각이 완벽히 객관적이라고 자신하지 못한다.
질풍노도의 회오리를 겪은 나는 결국 '불공평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그냥 분노'했음을 인지하기로 했다. 내가 분노한 이유도 생각해봤다.
첫째, 서울이 골을 넣을 때까지 기다려 줬다고 생각되는 억하심정 때문에.
둘째, 마지막 프리킥 때 속은 게 약이 올라서. 페널티킥을 똑같은 위치로 찬 것도 약올라 죽겠다.
마지막 셋째는, 자존심 때문에! 서울에 자꾸 '슈퍼매치 무패'라는 통계를 주는 게 너무 자존심이 상해서!
출처: 프로축구연맹자존심이다, 자존심. 돌고 돌아 결국은 자존심 때문에 화가 났던 것이다. 얼마나 곤두서있던지 목 뒤쪽이 다 아팠다. '그게 뭐라고 그렇게 열을 올린담' 싶겠지만, 슈퍼매치는 그런 매치다. 자존심을 건드는 매치. 나는 슈퍼매치의 마케팅 포인트에 홀딱 넘어간 것이다. 그리고 나 말고도 그런 사람 많다.
관중 수가 말해준다. 2만 4천 명이나 왔다는데, 유료관중 지표라 그렇지 실제 입장 인원은 3만 명은 됐다고 한다. 입장료를 내지 않는 미취학 아동이 통계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거 봐, 나만 그런 게 아니라니까. 슈퍼매치는 양팀 팬의 자존심을 건드려 발걸음을 홀려 오게 만들었다.
슈퍼매치가 건드는 건 또 있다. 올 시즌 중 최다 관중을 슈퍼매치가 기록한 것을 보시라. 통계를 떠나서, 딱 봐도 사람이 꽉 차 있더라. '슈퍼매치가 아직 살아 있구나', 다시 기분이 좋아진다. K리그 최대 더비라는 자부심.
출처: 프로축구연맹슈퍼매치라는 게 이렇게 멋진 매치다. 이 더비의 역사를 잘 모르는 나도, 최다 관중과 열기를 보고 있노라면 자연히 '나도 골수팬인 것 같은' 멘탈으로 무장된다. 확실히 하루이틀에 만들어진 문화가 아닌 거다. 많은 세월이 쌓여 팬들의 관심과 자존심과 자부심을 자극해야 진짜 더비다. 그 더비는 모래성에 대충 쌓은 게 아니라서, 다소 주춤해도 언제든지 다시 타오를 수 있다. 슈퍼매치는 또 다시 타오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기사도 '역시 슈퍼매치, 마지막까지 꿀잼!' 하는 제목으로 쏟아지고 있다. 재미 요소도 다 잡았거든. 최근 TV 프로그램에서 염기훈 선수의 열혈팬임을 인증했던 강부자 선생님(?)의 시축이 있었고, 수원의 홍철과 서울의 박동진 사이의 '말할 수 없는' 반칙 해프닝도 있었다. 다음 번에는 더 재미있기를 기대한다. 우리가 98분에 골을 넣고 이기는 거지. 아, 물론 슈퍼매치와 K리그의 발전을 위해서다. 약올라서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