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잘알은 천천히 되고 싶다

축알못의 글쓰기(3)

by 도리

브런치에 다른 축구글을 보려고 검색했다가 낯뜨거워 혼났다.

조기축구를 직접 하시는 분도 있고, 축구를 보러 영국 여행간 분도 있고, 축구에 대해 박학식한 분도 있었다. 그런데 그 틈에서 나만 '조마조마 승부차기!, 질풍노도 슈퍼매치!' 뭐 이러고 있으니. 순간 급격히 창피해지는 게 아닌가.


몰랐던 사실도 아니다. 나는 이 매거진의 초반부터 축알못의 글임을 천명한 바 있다. 오로지 K리그를 알리는 게 목표가 되었고 야심차게 축구블로그를 시작했지만 곧 밑천이 떨어고 말았다고.

하지만 축알못이 축구를 너무 좋아해서 하루종일 축구 기사를 본다면, 축구에 대해서는 잘 몰라도 K리그에 대해서만큼은 덕후처럼 잘 안다고 하면 믿겠는가?


그래서 전문적인 글을 쓰지 않겠다고 했었다. 축구를 모른다고 무 것도 안 할 순 없었다. 하루종일이 축구인데 아니라고 부정할 수도 없지 않나. 뭐라도 하고 싶었다. 축구를 잘 몰라도 이렇게 재미있게 축구를 봐도 된다고 말하고 싶었다.


오랜 고민 끝에 글의 다양성을 늘리는 것도 가치가 있다고 믿어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무겁지 않게 '에세이'라는 단어 뒤에 숨어서.


그래도 가끔은 부끄럽다. 가끔은 까먹는다.

나는 글을 다르려고 쓰는 거지 솟으려고 쓰는 게 아니었는데. 내가 봐도 글을 잘 쓰는 분, 브런치를 통해 책을 낸 분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든다. 나도 내가 잘 쓸 수 있는 것을 찾아 잘 써야 하나 싶은 조바심이 든다. 순전히 축구 때문에 글을 자발적으로 쓰게 된 것이었기 때문에, 이 좋은 취미에서 멀어지지 않기 위해 '10년은 삽질을 해보자. 전문성은 그 다음에 천천히 찾자.' 하고 다짐했었건만 몇 달이나 됐다고 이러고 있다.


언젠가 한 축구 해설위원이 쓴 칼럼을 봤다. 댓글이 온통 비아냥이었다.


'축구를 좋아하는 고등학생 정도의 글 잘 봤습니다.'


이 댓글을 읽고 난 나한테 하는 말 같이 찔려 창피함이 밀려왔다. 축구 세계는 정글이다.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고등학생 정도의 글... 축구를 좋아하는, 고등학생 정도의 글... 끙..(난 직딩이다.)


요즘 JTBC에서 방송하는 <뭉쳐야 찬다>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 진짜 축구를 1도 못하는 사람들이 축구를 하러 모여 웃음을 준다. 나는 빵빵 터지면서 보는데 어떤 사람들은 욕을 하기도 한다. 회차가 지나도 못 한다고.


나는 거기서 축구를 배우고 있다. 공을 뺏기면 그 사람만 따라가서는 공을 뺏을 수 없다는 걸 이제야 안 1인이다. 심권호는 공을 뺏기면 그 사람 뒤만 졸졸졸 따라간다. 공을 뺏으려면 사람 뒤만 쫓아선 안 되는 건데.

패스를 받을 때도 그냥 받아서는 안 된다. 다음에 어디로 줄지 본 다음 그 방향으로 몸을 틀어놓고 받아야 다.


축구를 직접 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하게 알았을 상식들을 난 전혀 몰랐던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몰랐다가 알아가니까 더 재미가 있다. 하나씩 알아가면 다음 주에는 축구가 더 잘 보인다. 축알못은 어쩌면 더 재미있게 축구를 볼 수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내 목표는 K리그를 주제로 한 글을 꾸준히 100개까지 쓰는 것이다. 왜 이런 게 목표가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르며, 왜 그 목표가 이토록 나를 낙오시키지 않고 계속 글을 쓰게 하는지도 모른다.


도대체 난 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축구글을, 그것도 K리그 글을 꾸역꾸역 쓰고 있을까?


답은 나같은 축알못이 있을까봐서다. 축구를 잘 모르는 나도 얼마든지 일상을 즐겁게 보낼 수 있는데, 나같은 축알못이 지레 겁먹고 발을 뺄까봐 그런다. 나는 진짜 진짜로 K리그와 함께 하는 일상이 재미있다. 축구가 매주 한다는 건 매주 새로운 주가 된다는 의미이다. 일상이 조금 더 즐겁고 활기차졌다. 만 나면 순위와 경기장면을 검색해 보는 낙이다. 이 재미를 꼭 알리고 싶어서다.


원점으로 돌아가 본다. 축알못이 축구를 보는 방법, 축구 진입장벽을 낮추는 글을 써 보겠다는 생각을 한 마음으로. 계속해서 원점으로 돌아가 그 목표에 부합하는 글을 쓰고 싶다. 알량하게 중간 중간 알게 되는 축구 지식 때문에 '지식의 저주'에 걸리고 싶지 않다.

(※지식의 저주 : 내가 아는 것을 다른 사람도 알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않는 인식의 왜곡)


축알못이 축잘알 틈에서 묵묵히 걸었으면 좋겠다. 가끔 멋진 글들을 보고 내 '고등학생 정도의 글'이 부끄러워지면, 축잘알이 될 생각보다 글 잘 쓸 생각을 해 보겠다. 축잘알은 최대한 천천히 되고 싶다. 지독히도 축구를 모르는 사람이 축구 축구 노래를 부르는 글을 쓴다.

100회 넘게 연재하는 콘텐츠는 어떤 식으로든 소비된다는 말을 믿고 꿋꿋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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