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축구에 빠졌다! 정확히는 K리그에. 축구는 무조건 최소 재미를 보장하는 게임이다. 90분 동안 무조건 골(최소한 슈팅)이 생기게 되어 있으니까. 그리고 '내 팀'에 감정이입해서 희비를 같이 하면 안 재미있을 수가 없다.
그런데 뭐, 축구에 관심 없던 시절에는 축구 재밌는 거 몰랐나? '축구 4년에 한 번 보던' 시절에도 축구 재미있는 건 알았다. 아는데 왜 1년 내내 하는 K리그는 안 봤을까? 그래서 내가 왜 K리그를 안 봤는지 생각해보기로 했다.
출처: 프로축구연맹
첫째, 월드컵 말고 축구가 있는지를 아예 몰랐다.
내가 축구엔 월드컵 말고도 자국 리그라는 게 있다는 걸 안 게 몇 년이 안 된다.그런 축알못에게 '메시는 라리가를 씹어먹은 원클럽맨'이라고 하면, 어떻게 알아듣는단 말인가. 나라마다 리그가 있다는 것도 몰라, 라리가라는 건 더 몰라, 클럽이라는 개념도 없어. 축구에 흥미가 생길 리 없다.
사실 나는 심각한 수준이긴 하다. 스포츠 자체에 전혀 관심이 없었으니까. 고등학교 때 반티를 축구 유니폼으로 맞추는 게 유행이었는데, 그 때 우리 반은 '리버풀' 유니폼이었다. 난 그 때도 그게 정확히 뭔지 몰랐던 것 같다. 그 때 만약에 '리버풀'이 뭔지 알게 됐으면 이미 난 축구를 보고 있었을 지도.
내가 이렇게도 축구를 전혀 몰랐다는 사실이 조금 부끄러울 뻔했는데, 한 블로그에서 리버풀 팬의 글을 보고 용기가 났다. 그 블로거는 리버풀 팬이 된 계기를 '월드컵 말고도 선수들이 모여 클럽으로도 축구를 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라고 회상하고 있었다.
그래, 관심이 없으려면 이렇게도 관심이 없다니까? 축알못은 월드컵 말고 축구가 또 있다는 사실을 아예 몰라서 못 본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아는 선수가 없다.
월드컵은 선수를 잘 몰랐어도 언론에서 매일 이름이 나오니 3일만 되면 원래부터 알았던 선수처럼 느껴진다. 월드컵 경기 하나를 두고 몇백 개씩 기사가 난다. 그런데 K리그는 그렇지 않다. 나도 나름 K리그 선수들을 안다 싶은데도 또 생소한 선수가 생긴다. 당연하다. K리그니까 당연히 어린 선수들을 키워서 쓴다. 관심있지 않으면 잘 모를 수밖에 없다.
우리가 무한도전을 왜 재미있게 봤을까. 멤버들 모두가 '아는 사람'같이 친근하기 때문이다.
K리그의 장점을 물으면 매번 '직접 가서 볼 수 있다! EPL은 직접 보기 어렵잖아?'라고 하면서 선수들을 친근하게 만드는 작업은 안 되고 있다.
K리그도 선수 개인에 대해서 기사가 많이 나와야 한다.
최근에 KBS 비바K리그의 전세진 편을 정말 재미있게 봤다.전세진 선수의 하루를 따라가는 기획이었는데, 중간 중간 수원 선수들이 전세진 선수에게 장난을 치고 너스레를 떠는 모습이 무척 재미있었다.
출처: KBS sports 비바K리그 캡쳐
"(염기훈이 선수들에게)얘들아, 형이 70-70 클럽 가입해서 음료수 70개 쐈다~ 이런 게 카메라에 나오면 참 좋겠네. 어? 있었네 카메라가."
"(홍철이 전세진에게)2골에 0도움? 아니 골키퍼에요?"
얼마나 선수 모두가 캐릭터있고 재미있는가. 이 방송이 나오면 다음 날에는 <염기훈, '음료수 쐈는데 카메라가 있었네' 너스레>, <홍철, '전세진? 아직 멀었다'> 뭐 이렇게 기사가 나오면, 금세 친근해지는 거다.
출처: KBS sports 비바K리그 캡쳐
축구에 대한 기사 열개도 좋지만 재미있는 기사 하나가 훨씬 큰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소위 한 선수가 '입구'가 되어 팀과 K리그 전체에까지 관심을 가지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세진은 99년생의 젊은 선수다. U-20 국가대표로도 활약하고 있지만 나같은 축알못은 모를 공산이 크다. 그런데 월드컵 나온 홍철은 알잖아. 그럼 클릭해보고 전세진이 누구인지 알게 될 것 아닌가. 친근하고 애착이 생겨야 팬이 되지, 축구 잘 한다고 다 팬 되는 게 아니다.
물론 축구선수가 연예인은 아니지만, 'K리그엔 스타가 없다.'라고만 할 게 아니라 스타는 만들면 되는 것 아닐까. 그리고 EPL처럼 '세계 최고의 경기력'으로 시선을 끌 현실도 못 된다. K리그의 현실을 인지하고 눈을 새롭게 돌리면 답이 나올 수도 있다. K팝 문화를 우리나라가 만든 것처럼, K리그 문화도 우리가 얼마든지 새롭게 만들면 되지 않을까.
셋째, 주변에 K리그 보는 사람이 없다.
제일 치명적이다. 주변에서 많이들 보면 호기심 때문에라도 볼 텐데, 주변에 EPL 보는 사람은 많지만 K리그 보는 사람은 없다. K리그에 대해 들을 데가 전혀 없다. 다 스스로 직접 검색해보고 알아내야 한다.
넷째, 그러다 보니 혼자 입문하기가 어렵다.
처음에 K리그에 흥미를 가지게 되어도 도대체 구체적으로 설명해주는 데가 없다. 책이나 인터넷을 봐도, 대부분 'K리그가 뭔지는 안다.'라는 전제를 깔고 시작하는 것 같다.
FC서울 홈구장(상암 월드컵경기장)의 예매소
그런데 나같은 축알못은 K리그가 '1년 내내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개념부터 난관이다. K리그에 어떤 팀이 있는지도 모르고, 그들이 무엇을 목표로 싸우는지도 아예 모른다. 직관을 가라는데 애초에 티켓도 어떻게 예매하는지 모르고, 처음 축구장에 가면 수많은 게이트 앞에 서서 입장도 할 줄 몰라 막막하다.
K리그 관중이 늘려면 축알못이 K리그 팬으로 유입되어야 한다. 축알못도 여러가지겠지, 스포츠는 다 아는데 축구만 모르는 사람과 아예 하나도 모르는 사람.
나는 후자를 대상으로 한다. 축알못이 K리그의 문을 똑똑 두드리다가 제풀에 지쳐 떠나버리지 않도록, 축알못의 진입장벽을 헐고 '초 초 초기초' 입문이 가능한 글을 쓰고 싶어 이러고 있다. 무슨 사명감인지는 알 수 없지만.
출처: Pixabay
그래도 세상 어딘가에는 딱 한 명이라도 나만한 '진성 축알못'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중에 내 브런치에 글이 많이 쌓였을 때, 지나가던 축알못 한 명이 '당신 글을 보고 K리그 팬이 되었다.'라고 하면 얼마나 기쁠까 생각한다. 나는 끊임없이 축알못의 복지를 위해 노력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