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남자친구가 밤 9시에 나를 데리러 왔다. 나를 데려다준 다음 뭘 할 거냐고 물었더니 그가 신난 표정으로 대답했다.
"오늘 EPL 마지막 날이야. 열시에 한꺼번에 다 해."
"아, 오늘 리그가 끝나? 근데 뭘 한꺼번에 다 해?"
"응, EPL 팀이 20개잖아. 그 20개 팀이 전부 다 경기를 같은 시간에 해."
"헐! 왜?"
"승부조작 못 하게 하려고!"
"우와! 멋있다!"
그는 상기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시시각각 순위가 바뀌어. 다른 팀이 골 넣잖아? 그럼 순위가 바뀌는 게 밑에 나와."
"대박이다!"
"맨시티가 지금 1등인데, 만약에 이번에 맨시티가 지고 리버풀이 이기면 어쩌고 저쩌고..."
가만히 듣다 내가 장난기가 발동해서 외쳤다.
"한 시간만 나랑 놀다 가."
신나게 말하던그는'헙!' 하며 당장 대답하지 못했다.
"ㅋㅋㅋ 정지화면 금지."
우리는 한바탕 크게 웃었다.
출처: SPOTV 중계 캡쳐
이런 일화는 또 있다.
토트넘의 경기 중계를 같이 보다가 내가 물었다.
"근데 EPL은 축구장이 진짜 초록색으로 이쁘게 나오네. K리그는 우중충한데."
그러면 그는 1초의 틈도 없이 대답한다.
"당연하지, 저긴 돈이 얼만데."
그럼 내가 '우씨' 하며 발끈하곤 한다.
"와, 근데 확실히 피지컬이랑 기술이 다르긴 하네."
내가 한 마디만 했다 하면 물개박수를 치며 반응한다.
"그치! 확실히 K리그보다 재미있지!"
남자친구는 내가 축구에 빠진 이후부터 끊임없이 나를 EPL로 인도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나는 왠지 거기에는 정이 가지 않았다. 물론 스케일이 비교도 안 된다는 것은 분명히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매일 K리그 타령만 한다. 그도 이제는 좀 포기한 것 같다.
EPL,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모여 축구를 겨루는 세계. 영국의 프로 1부 리그이지만 세계에서 축구를 제일 잘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이미지가 더 강하다. 선수만 모이나? 세계 최고의 감독과 돈이 모인다. 또 쟁쟁한 리그들이 몇 개 있다. 독일의 분데스리가, 스페인의 라리가. 프랑스의 리그앙, 이탈리아에는 세리에A. 우리는 우리나라 선수들이 이 리그에 입성하면 뜨겁게 열광한다. 그만큼 세계에서 인정받는 최고의 축구 무대란 뜻이다.
이 최고의 무대를 보는 비용을 '중계권료'라고 한다. 비교는 돈으로 하는 게 가장 빠르다.
출처: [그래픽=정의섭] ⓒ스카이데일리
단도직입적으로, K리그의 중계권료는 1년에 65억원이다. EPL은 4조원. 너무큰 데랑 비교를 했다 싶어 더 찾아봤다. 아시아의 리그들. 중국의 슈퍼리그는 2,628억원이다. 일본의 J리그는 2,100억원, 호주의 A리그는 500억원. 더 대박인 건 말레이시아도 143억원이라는 거다.
K리그의 현실은 여기다. 물론 돈이 모든 것을 말하는 건 아니지만 객관적으로는 여기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건, 경제적으로는 이모양인데 실력은 아시아에서 제일간다. 아시안 챔피언스 리그에서 K리그 팀이 우승한 적이 제일 많다. 큰 리그들을 부러워 하고 따라가려고만 할 게 아니라, 우리는 케이스가 다르다. 분명히 잘하고 있는 점이 있으니까 그런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매일 인터넷 댓글은 세계 최고인 EPL과 비교하면서 K리그는 글렀다고만 하니까 너무 슬프더라는 거다. 나에게는 K리그에 대한 열정뿐 아니라 측은지심이 생긴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