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복은 거창하고, 이제부터는 같이 살기로

수상한 느낌들 1

by 이하루

2년 간의 석사 과정 끝에, 석사 논문의 막바지에 박사 과정 원서를 썼고, 2월에 석사 학위를 받은 후 3월에 다시 신입생이 되었다. 박사 과정으로. 반응이 딱 두 개로 갈렸는데, 학부 때 안 한 공부를 뒤늦게 하니 재미있구나? 와 안 하던 짓 하다가 미쳐버렸네? 이렇게 두 개.

공부를 좋아하는 건 아닌데 그래도 못 하는 편은 아니라서, 글로 뱉어내는 것보다야 읽는 편이 더 좋았지만 글을 쓰는 것도 영 못 하는 편은 아니라서, 깊게 생각하지 않고 박사 과정을 시작했다. 재미있기도 했고.


사회과학 분야(우리 학교는 우리 과가 생활과학대에 속해 있긴 하지만) 대학원생이 해야 하는 건 뻔하다. 하루 종일 읽기. 게다가 3학점 과목을 무려 3개나 선택해 9학점을 꽉 채운 어딘가 좀 이상한 대학원생인 나는 거칠게 말하자면 '눈이 빠질 것 같은' 두통에 시달렸다. 하루 종일 읽으니까 당연한 통증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원래 잠이 부족하면 머리가 아프기도 하니까 별로 고민하지 않았다. 학기 곧 끝나고 방학인데, 잠은 방학 때 몰아서 자면 되는 것이었다. 석사 과정 때도 그랬고 별문제 없었으니까. 그리고 원래 대학원에 다다는 건 '가방끈을 늘리기 위해 생명줄을 줄이는 행위'라는 명언이 있으니 잠은 죽어서 자는 게 맞았다.


새학기 시작 후 폭풍같이 몰아치는 읽을거리들, 그걸 읽고 써야 하는 글에 잠겨갈 때쯤 5월이 되었다.


자랑 아닌 자랑을 하자면,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글 읽는 속도가 꽤 빨랐다. 식당에 앉아 음식을 기다리면서도 하다못해 메뉴판이라도 읽고, 친절한 사장님들이 써놓으신 '더 맛있게 먹는 법'은 매우 꼼꼼하게 읽었다. 그냥 읽는 행위를 했다. 읽는 걸 좋아하고 잘 한다는 말이다. 자라면서 나보다 빨리, 잘 읽어내는 사람을 못 만나다 대학원에 와서 고수를 만나 그냥 그런 능력이 되어 버렸지만, 영 쓸모없지는 않아 읽어야 하는 것들에 숨이 막히지는 않았다.


그런데 왜 안 읽히지?


글이 안 읽힌다는 느낌을 살면서 처음 느껴봤다. 아주 난해한 글을 읽은 경험이 없어서일 수도 있지만, 평소 보던 논문도 전혀 읽히지 않았다. 그때 그 느낌을 기록해 뒀어야 하는데, 아쉽게도 그건 없다. 눈동자가 내 마음대로 안 움직이는 느낌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눈동자는 문장을 따라 움직이는데 머리에 들어오질 않는 느낌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모든 것이 따로 돌아가는 느낌?


이상한 점은 또 있었다. 계산을 계속 틀린다.


다른 대학원생들과 마찬가지로 RA(연구보조, 연구조교)를 했는데, 교수님께서 부탁하신 퀴즈 점수 합산 같은 단순한 덧셈이 되질 않았다. 덧셈이 되지 않는다는 건 뭐냐면, 이건 좀 웃기는데...... 같은 시험지를 네 번 계산하면 네 번 다 다른 답이 나온다. 더 웃긴 건 계산기를 두드려도 계속 다른 답이 나온다. 이게 말이 되나?


2주 정도 이런 상태가 지속되니 내 인지능력에 의심이 생겼다. 나 자신이 하는 걸 아무것도 신뢰할 수 없게 되었다.

이게...... 도대체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