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느낌들 2
원래 대학원생이란 가방끈을 늘리기 위해 수명을 줄이는 거니까 잠을 줄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루에 몇 시간 이상 자야 하는 편은 아니고, 과제가 많으면 하루 4시간 정도 수면하는 방식으로도 잘 버텨왔다. 잠에 드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도 아니라 머리가 닿으면 바로 잠에 빠져들었고, 한번 잠에 들면 좀처럼 중간에 깨는 일도 없었다. 그래도 사회복지를 연구하는 학생이고, 그중에서도 시간을 연구하며, 수면의 중요성에 대해 논문도 쓴 사람이라 잠에 대한 예의는 있는 편이라서 주말엔 빚 갚듯이 몰아서 자곤 했다. 이런 식으로 자는 게 별로 좋은 일은 아니긴 하지만.
수상한 느낌들 중 잠에 관한 것은 정반대인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났다. 쏟아지는 잠을 피하지 못해 잠에 빠져들거나, 도무지 잠에 들어가지 못하고 잠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의지와 상관없이 튕겨져 나와 괴로운 상태 두 가지로.
그땐, 그러니까 낮엔 잠이 그렇게나 쏟아졌다. 점심을 먹고 나면 두통이 살살 오면서 머리가 무거워졌고, 그대로 책상에 엎드려 잠에 들었다. 잠에 들었다는 표현도 적절치 않다. 기절했다.
DAY6라는 밴드의 꽤 오래전 앨범 수록곡 중 '쏟아진다'라는 노래가 있다. 그들은 정말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음악에 더 사랑스럽고 재치 있으며 사람 마음을 파고드는 가사를 붙여 노래를 만드는데 그 노래엔 이런 가사가 있다. "단숨에 물밀듯이 밀려오고 있어 너란 사람이 내게 밤하늘에 저 빛나고 있는 별들처럼 가득히 내게 네가 쏟아진다" 이 얼마나 로맨틱하며 사랑스러운 가사인가! 얼마나 사랑하면 별들처럼 가득히 네가 나에게 쏟아진다라는 표현을 썼을까. 나에게는 낮에 오는 잠이 그랬다. 잠이 쏟아졌다! DAY6는 사랑이 쏟아졌다 노래를 하지만, 나에게는 잠이 쏟아진 거다. 그들은 늘 '모든 순간을 노래'하고 싶다고 했으니 어쩌면 내가 해석한 방향도 틀린 건 아닐거다. 잠에 빠져드는 순간에도 적용할 수 있는 노래라니 진짜 모든 순간을 노래하네? 천재 같은 밴드맨들...(이하루는 DAY6의 팬인다. 진심으로 그들의 노래로 삶을 이어간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더 하는 걸로)
어쨌든 지금은 '밤하늘에 저 빛나고 있는 별들처럼 쏟아지는' 그 잠이 밤 수면의 낮은 질과 혈당 스파이크의 콤보였다는 것을 알지만, 그때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다른 수상한 증상들과 마찬가지로 그냥 이상하게만 생각했다.
왜냐하면 건강에 큰 문제를 경험하지 못한 30대 초중반의 여성이, 게다가 박사 과정 1학기 9학점을 수강하면서 잠을 죽지 않을 만큼만 자고 있는 상황에서 잠이 쏟아지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병이라는 것과 연관시켜 생각하기엔 그동안 내가 너무 건강했으니까.
그래서 사실... 좀 웃기지만, 기면증을 의심했다. 내가 드디어 하다 하다 기면증이! 라면서...
잠과 관련된 수상한 증상 중 다른 하나는, 밤잠이 엉망이 되었다는 것이다. 잠에 들기 쉽지 않고 들었다 해도 다시 빠져나오길 반복했다. 나는 태어나서부터 대학에 다니는 동안까지 할머니와 같이 살았다. 병원에 입원하신 할머니가 휠체어를 타고 내 결혼식에 오실 수 있도록 가장 동선이 편한 결혼식장을 골랐을 만큼 내 삶에서 중요했던 할머니는, 우리 할머니는 92세에, 내 결혼식 단 열흘 전에 하늘나라에 가셨다. 사실 애틋한 마음에 비해 곁에 계실 땐 그리 살가운 손녀는 아니었는데, 할머니가 가끔 푸념하듯 나에게 했던 말이 있다. 나도 젊었을 땐 베개에 머리만 닿아도 잠들고, 밤부터 아침까지 깨지 않고 잘 잤는데 젊은 사람의 깊은 잠이 가장 부럽다... 잘 수 있을 때 충분히 자둬라 아가야.
잘 수 있을 때 충분히 자두라고, 잠이 그렇게나 고프고 달콤한 거라는 걸 20대 대학생이 알 수는 없었다. 밤새 술 마시고 6시에 해장국 때려먹고 9시에 수업 들어가던 때였으니까. 잠 같은 건 학기 끝나고 몰아서 자는 거다. 어? 글을 쓰다 보니 드는 생각인데, 젊었을 때 아니 어렸을 때 잠에게 소홀해서 이렇게 고생하는 건가? 후회해도 뭐... 소용은 없다.
그땐 몰랐지. 내가 고작 30대에 잠에 들지도 못하고, 잠을 유지하지도 못하는 상태에 이를 것이라는 걸. 알았다면 잠에게 좀 더 잘 해줬을까? 아닐 듯. 그땐 그렇게 사는 게 무엇보다도 재미있었으니까.
잠에 드는 것을 '입면'이라고 하는데 잠으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보통 사람들에게 잠에 드는 건 그저 스스륵 의식이 흐려지다 눈 뜨면 아침이 되는 것일테니 '잠에 들어가는 행위' 자체는 별로 특별한 일이 아니었을 거다. 그럼 이름이 붙여지지 않을텐데, 잠에 들어가는 것이 어려운 이들이 분명 있었을테니 그들이 붙인 이름일 것이다. '입면' 잠에 들어가는 것.
몸은 피곤하고 잘 수 있는 시간, 그러니까 잠에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은 내겐 잠에 문 두드리는 행위 자체가 절박했다. 지금 자야 4시간 잘 수 있고, 다시 일어나 학교에 갈 수 있으니까. 그런데 입면이 너무 어려웠다. 생각이 많거나 고민이 많아서도 아니다. 그런 건 낮에 하면 될 일이다. 난 원래 침대에서 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재미있는 상상을 종종 하곤 했지만(예를 들면 결혼하지 않고 서울에서 직장인으로 살았으면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앞을 산책했을까, 거기서 엄청 잘 생긴 남자를 만나 어쩌고 저쩌고 자만추 로맨스 이런거) 그마저도 소설로 치면 도입부도 넘어가지 못하고 잠들기 시작했다. 도입부가 뭐야? 캐릭터 고작 2명 옷차리만 묘사하다 끝날만큼 입면은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땐, 도무지 잠에 들어갈 수 없었다. 무겁고 두꺼운 문이 가로막고 있는 느낌은 아니고, 아주 얇고 투명한 막이 쳐져 있어서 그 막만 뚫고 들어가면 되는데 이게 너무 질기네? 어떻게 해도 그 막을 통과할 수 없는 느낌이 계속되었다.
더 괴로웠던 것은, 간신히 들어간 잠에서 수시로 쫓겨났다는 것이다.
수면장애가 있는 게 아닌 이상, 30대가 밤잠에서 자주 깬다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잠에서 깨는 사유는 상당히 다양했는데, 가장 성가신 것들은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머리가 아파서, 피부가 간지러워서!
잠에서 쫓겨나는 사유가 너무 다양한데,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깨는 건 그중에서도 손에 꼽히게 성가시고 귀찮고 무엇보다 납득이 가지 않았다! 밤에 안 먹잖아. 물도 잘 안 마신다!
근데 왜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깨는 거야? 막상 가도 시원하지도 않았다. 당연하지! 정말 방광에 소변이 차서 화장실에 가고 싶었던 게 아니라 당뇨병의 증상 중 하나였을 뿐이니까! 계속 말하지만 그걸 알아채기엔 난 너무 건강했다... 내 자신이 판단하기엔.
고작 4시간 자는데, 고작 4시간 동안 두 번이나 화장실을 가야만 하며 그와중에 피부는 가렵고 머리는 무거워 잠을 잔 것도 아니고 안 잔 것도 아닌 애매하고 황당한 상태가 계속되었다.
이러다간 미쳐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그때,
무시할 수 없는 증상, 병과 연관 짓기엔 애매한 증상들 사이에서 이건 정말 병이다 싶은 그 증상이 나타났다.
그리고 며칠 후 내분비내과 대기실에서 한숨을 쉬고 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