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복은 거창하고, 이제부터는 같이 살기로

수상한 느낌들 3

by 이하루

박사과정 1학기, 3학점 과목 3개를 수강하면서 페이퍼 3개를 작성하고 있었다. 세 과목 모두 읽고. 읽고 또 읽어야 하는 "헤비 리딩(heavy reading)"으로 유명한 수업이고 실제로 한 주에 3권 정도는 읽어야 수업 시간에 뭐라도 알아듣고, 뭐라도 한마디 할 수 있는 수업이었다.


그런데 잠을 못 자? 낮엔 잠이 쏟아지는데 밤잠은 엉망이 되어 있는 상태가 2달가량 지속되었다.

그즘 세 과목 중 하나에서 정신건강 관련 공부를 하고 있던 터라, 지금은 너무나 유명한 유튜브 채널 '닥터프렌즈'를 챙겨보고 있었다. 이비인후과 전문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내과 전문의 세 명이 의학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채널이었는데, 학습에 아주 유용했다. 그리고 무시할 수 없는 마지막 증상을 보고 바로 병원으로 갈 수 있게 해준, 나의 진단 시기에 결정적 도움을 준 채널...


병원에 갈 결심을 하게 만든 결정적 증상은 거품소변이었다.

집중이 안 되고, 두통이 있고, 잠을 못 자고, 피부가 가렵고... 이런 건 그냥 좀 힘들다 정도였지 병과 연관 지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계속 말하지만, 대학원생은 원래 그렇게 사니까.


그런데 거품소변은 차원이 다른 범주였다. 닥터프렌즈를 통해 "당뇨병의 기초"를 이미 학습한 나는

이건 바로 병원에 가는 신호라는 걸 직감했다. 건강한 성인은 소변에 거품이 보이는 경우가 잘 없다. 간혹 있을수야 있겠지만 거품의 지속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을 거다.

그리고 나는 거품소변의 정체를 아마 바로 발견하지는 못했을 거다. 건강한 성인은 자기 소변을 매번 관찰하지는 않으니까. 결국 한참이 지나서야 발견했을 거라 생각한다. 빨리 발견 했다기엔 모든 지표들이 너무 안 좋았으니까. 나도 정말 우연히(아마 살 운명이었나 봄) 시야에 걸려 관찰하기 시작했다.


아이랑 비누방울 놀이를 해본 적이 있는가?

우리 아이들을 양육하면서 바깥 놀이할 때 제일 즐거웠던 걸 꼽으라고 하면 몇 가지 있는데, 비눗방울 놀이, 그네 타기(밀어 주기), 햇빛 아래에서 적당한 바람을 맞으며 책 읽기일 거다. 양육자들, 혹은 어린 시절 했던 놀이를 기억하는 어른들은 아실 테지만 아이가 자라면서 발달에 따라 저 세 개 놀이가 순서대로 많이 이루어진다. 물론 우리 아이들은 아직도 비눗방울 놀이를 좋아하지만(내가 좋아한다)...

어쨌든 비눗방울 놀이 좀 해보신 분들은 아실거다. 비눗방울 놀이에 어떤 도구를 쓰느냐에 따라 비누방울의 크기와 한 번에 발생하는(불어지는) 방울의 개수가 다르다. 나는 아주 커다란 걸 만드는 것도 좋아하지만 아주 작은 것들이 자잘하게 발생하는 걸 좋아하는데, 이게 공기 중에서 꽤 오래 머문다.


글로 쓰다 보니 좀 이상하긴 하지만, 내 거품소변이 딱 그랬다.

자잘한 방울들이 매우 단단해 보이면서 오래 가는 그것.


그래서 지역에서 몇 개 없는 내분비내과에 찾아갔다.

의사선생님께 이러저러한 증상들을 말하고, 피검사, 소변검사를 진행했다. 공복 혈당, 당화혈색소 검사 등을 했는데 결과를 기다리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한참을 기다렸다 다시 들어간 진료실, 대왕 큰 모니터엔 매우 큰 숫자들이 쓰여 있었다.


"네, 맞아요. 당뇨병 맞아요. 아닐 수 없는 수치입니다.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수치"


이게 나의 제2형 당뇨병 진단의 날, 진단이라는 첫 선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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