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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맹희 Jan 21. 2019

겨울 다시 떠난 강릉여행

미세먼지 죽어 

작년 여름 불지옥 반도의 더위를 무시하고 강릉에 갔다가 아스팔트에 눌어 붙을 뻔 해서 제대로 여행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나보다. 겨울 여행은 어디로 떠날까 고민하다가 충동적으로 강릉행 티켓을 끊어버린 것이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청량리역으로 향했다. 기차여행에 김밥이 빠질 수 없으니 편의점에서 불고기 김밥을 하나 사고.. 김밥이 매우 차가워서 슬펐다.


도착하니 10시도 안된 시간이었다. 장칼국수를 먹으려고 역 주변의 음식점을 찾아 헤맸는데 너무 이른 시간이라 가게문이 죄다 닫혀있었다. 몇 없는 카페도 닫혀있긴 마찬가지라 하는 수 없이 피시방에서 한시간을 떼웠다..

겜 몇판을 하고 점심을 먹으러 간 신촌 장칼국수집. 

강릉에서까지 신촌 장칼국수를 만날줄은 몰랐지만 맛은 좋았다. 은근히 주변 맛집이었는지 동네 주민들이 이미 몇몇 식사를 하고있었다. 국물이 시원하고 멸치 육수라서 짜지 않고 건강한 맛이 났다. 양도 엄청 많았는데 가격이 서울에 비해 착해서 좋았다. 사이드로 만두도 시켰는데 만두소까지 직접 만드시는 것 같았다. 김치만두였는데 역시 자극적이지 않고 삼삼한 맛이 매력적이었다.

버스타고 안목해변으로 갔다. 지난 여름 바다에서 튀어나온 멸치 몇마리 구경하고 카페에 줄창 앉아 에어컨 바람만 쐬다가 갔던 기억이 있어 억울했던 우리는 열심히 걸었다.

비록 미세먼지에 초미세먼지까지 아주 나빠 엄청 쾌적한 날씨는 아니었지만 마스크를 꽁꽁껴고 사진도 열심히 찍었다. 바닷물은 참 파랗고 맑은데 먼지 낀 하늘이 누랬다.

맑은 날씨엔 하늘이 얼마나 높고 파랄까 ㅠㅠ 이제 한반도에서 맑은 공기 찾는 것도 운빨이 따라줘야 할 일이 되었다. 중국 제발 꺼져주세오

 카페가 참 많았는데 사람이 다 엄청나게 가득했다. 나름 비수기에 찾아간다고 날짜를 골랐지만.. 실패한 모습이다. 커피한잔이 너무 땡겨서 들어간 카페에서 커피번도 먹었다. 맛은 그냥 그랬다. 체인점 빵 맛이 났다.

한참 앉아서 떠들다가 숙소 체크인 시간에 맞춰서 걸어가려고 나왔다.

숙소는 안목해변에서 40분정도 걸어가야했다. 가는 길에 패러글라이딩 아저씨가 우리 보고 손도 흔들어주고 누군가 하트모양으로 모아놓은 솔방울도 봤다. 비록 마스크 쓰고 숨이 찼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걸으며 이것저것 구경하고 대화도 많이 하니까 그닥 멀리 떠나온건 아니지만 자유롭게 여행 온 기분이라 좋았다.

우리 숙소는 세인트 존스 호텔이었는데 깔끔하고 비수기라 그런지 호텔치고 꽤 저렴하게 예약이 가능했다.

물론 비수기라도 사람이 드글드글해서 체크인하는데도 30분 기다려야했음. 도대체 이사람들은 비수기에 여행을 어떻게 오는거지. 다행이도 체크인 순서가 되면 카톡으로 문자를 쏴줘서 주변을 산책하며 기다릴 수 있었다.

여러 설치물들이 있었는데 저런 숭한.. 의자인지 뭔지 모를 것도 보았다. 

 

한참 걸어서 배가 고팠던 우리는 짐을 놓고 바로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숙소 바로 근처가 횟집 거리여서 물회를 먹어보기로 했다. 물회는 처음 먹어봤는데 일단 초장국물에 국수를 말아먹는게 좋았다. 다만 여기 횟집들은 다 가격대비 퀄리티가 아쉬운듯하다.. 정작 강릉사람들은 회먹으러 이쪽으로 절대 안온다더니!

그래도 밤바다를 보며 신선한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는 점에 감사해야겠다. 

간만에 소맥을 말아먹고 급격히 기분이 좋아져서 밤바다 산책도 했다.

어김없이 바다 위 조형물에 쓰레기를 버려놓은 모습이었다. 방파제에 부서지는 파도나 조명때문에 신기한 색이 된 바다가 참 예뻤다. 

 밤바다를 오랜만에 보고있으니 어릴적 겨울밤바다 보겠다고 온가족이 10시간 넘게 막히는 길을 차타고 갔던 생각이 났다. 차가 너무 막혀서 중간에 내려서 컵라면을 먹고 쫓아가 타도 문제없을 정도였다. 그때 아빠가 준 산낙지가 잇몸에 달라붙어서 울었는데.. 아마 그런 기억들 때문에 해산물을 싫어하게된것이 아닐까.

숙소에 돌아와서는 과일맛 소주를 화이트와인처럼 와인잔에 따라마셨다. 다만 우아하게 조금씩 마시질 못하고 콸콸 꿀떡꿀떡 먹는 바람에 새벽에 속이 아파서 잠도 못자고 굴러다녔다. 다음 날 집갈때가 되서야 숙취가 사라졌다는 슬픈 후문..

숙취때문에 뜨끈한 국물이 너무 땡겼던 다음 날 아침.. 초당 순두부를 안먹고 갈 수 없었기에 순두부마을까지 걸었다. 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있어서 걱정했는데 숙소에서 많이 멀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런데 마을 입구부터 순두부를 먹으려는 차들이 줄줄이 줄을 서있는 것이었다. 누가 비수기라고했어

그래도 뚜벅이인 우리들은 그 차들을 호다닥 지나쳐 제일 안쪽에 있는 순두부 집에 대기번호를 받을 수 있었다. 우리 앞에 22팀이나 이미 대기중이었지만 점심이라 그런지 회전이 빨라 금방 들어갈 수 있었다.

순두부가 너무 부드럽고 고소해서 술술 넘어갔다. 양심이 있어서 밥은 먹지 않고 찌개랑 따로 시킨 두부만 먹었는데 짜지도 않아서 금새 한 그릇을 뚝딱 해버렸다. 사진보니까 또먹고싶다..

오후가 되니까 바람이 엄청 불고 더 추워지기 시작했지만 소화시키려고 경포호수까지 걸어갔다.

솔직히 30분도 안걷는 거리라 그렇게 멀진 않았는데 바닷바람이 미친듯이 불어대서 가는 길이 고통스러웠다. 패딩입은 나는 거뜬했지만 남자친구는 자기 가방끈이 바람에 날려 싸대기까지 맞고 찬바람에 고생좀 했다.

길가에 꽃이 말라서 드라이플라워가 되어있었다. 

경포호수는 너무 추워서 제대로 구경하지 못했는데 자전거타며 빙 돌면 재밌을 것 같았다.

카페 가는 길에 지나온 솟대공원과 거대 오징어.. 오징어가 너무 신기하게 커서 사진을 찍을수밖에 없었다. 저런 큰 오징어도 막 잡히는데 심해에는 진짜로 크라켄이 있을 것이다..

바닷가 카페에 가서는 운좋게 2층 명당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파랗게 밀려오는 파도도 보고 낚시하는 아저씨랑 연날리는 가족들도 구경하며 빵이랑 커피를 먹을 수 있다니! 햇빛도 따끈하고 여유롭고 정말 좋았다.

빵도 내가 거의 다 먹었는데 남자친구가 자꾸 배부르다고했다.

하지만 내가 강릉에 다시 온 이유가 아직 남아있었는데..

 바로 저번 여름에 맛보고 잊을 수가 없어 언제 다시먹나 오매불망 기다린 꼬막비빔밥!!!! 

이번에도 1시간이나 웨이팅이 있어서 2층에서 기다리다가 잠들 정도였다.

말로 설명해 뭐할까.. 배가 아무리 불러도 꼬막을 청소기처럼 흡입할 수 밖에 없는 맛이다.

푸지게 먹고는 배를 두드리며 강릉역으로 돌아왔다. 배 식힐겸 주변을 뱅뱅 돌며 계속 걸었는데 유난히 달이 크고 선명해보였다. 알고보니 오늘이 마침 슈퍼문이었던것! 달이 너무 크고 예뻐서 사진을 찍었는데 맨눈으로 본 신비함이 카메라에 전혀 담기지 않았다..


1박 2일은 정말 짧았지만 나름 알차게 걷고 보고 먹었다. 남들 다 간다는 유명한 관광지는 하나도 모르고 지도보고 바닷길따라 터벅터벅 걸었는데 일정에 채이지도 않고 조급하지도 않은 여유로운 뚜벅이 여행이었다.

몸뚱이가 젊고 건강할때 많이 걷고 많이 보고 많이 먹어야지. 다음 여행은 어디로 갈까 고민하며 서울로 잘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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