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는 날
3박 4일 일정은 정말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갔다.
식상한 표현이지만 정말로. 깜빡 하니까 집에 가는 날.
현실 로그인 할 생각에 슬펐지만 아직 한국땅을 디딜때까지 여행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문제가 하나 있었다면 일본 물에 석회가 있는 건지 뭘 잘못먹은 건지 피부병이 엄청 심해진 것이었다.
어쩐지 목 뒤가 간지러워서 아침에 침대에 앉아서 긁적대고 있었는데 오빠가 보더니 목이 왜그렇냐고 해서 알았다. 이놈의 피부곰팡이들은 죽지도 않고 주기적으로 살아나서 사람을 아주 귀찮게한다.
다행히 한국와서 일주일동안 약을 꾸준히 발랐더니 또 사라졌지만 이제 곧 여름이라 재발할듯..
여튼 마지막 날도 역시 날씨가 좋았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지하도 쇼핑몰 구경도 하고 느긋하게 밥먹고 출발할 예정이었지만 둘다 너무 피곤했는지 늦잠을 자고 말았다.
급하게 짐을 싸서 채크아웃을 하고 간 곳은 지하도 안에 있는 음식점. 둘다 큰 트렁크를 끌고 다니느라 정신 없어서 구석의 한산한 음식점을 골랐다.
자판기에서 주문하고 카운터에서 조리된 음식을 받아가는 식이었는데 나는 소고기계란덮밥 세트를시켰다.
우동은 뭔가 한국에 비해 심심한 대에 비해 돈부리는 짰다. 시원한 녹차랑 같이 먹으니 든든한 아침으로 제격이었다.
이건 오빠가 시킨건데 뭐였는지 기억이 안난다. 맛은 비슷했던 것 같음.
먹고나니 시간이 조금 남아서 지하도를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소품샵을 발견했다. 급하게 고르고 사느라 사진을 못찍은게 아쉽지만 한국의 버터샵 같은 곳인데 제품 퀄리티가 훨씬 좋은 곳이었다. 이모랑 알바하는 곳 사장님 드리려고 완전 귀여운 고양이 캐릭터가 그려진 행주 세트 몇개랑 고양이모양 수세미를 샀다. 근데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수세미랑 행주세트 한개는 엄마가 가로채갔다. 넉넉하게 사올걸.. 수세미 진짜 귀여웠는데..
나름 쇼핑을 많이 한 것 같았는데도 돈이 꽤 남았다. 역시 돈도 써본 놈이 잘 쓴다고 평소에 만원 한장도 벌벌 떨며 쓰다가 갑자기 재드래곤 흉내를 내려니 쉽지 않았다.
남은 돈은 공항 면세점에서 쓰기로 하고 일찌감치 공항으로 출발했다. 삿포로를 떠나면서 아쉬웠지만 꼭 또 오자고 결심했다. 돈 많이 모아서 료칸 여행으로 다시 오고 싶다.
그런데 공항에 너무 일찍 갔는지 출국심사 할 시간이 아니라서 한시간 정도를 카페에서 기다려야했음.
공항에 도라에몽 샵부터 키티 샵까지 아이들을 위한 캐릭터 컨셉의 가게들이 쭉 있었는데 도저히 시끄러워서 앉아 있을수가 없었다. 그래서 깊숙히 들어가 찾은 스타벅스. 나는 무스 라떼를 시키고 오빠는 그냥 아메리카노를 먹었다.
나는 너무 피곤했던 나머지 커피를 먹다가 또 잠이 들었다. 평소에는 안그러는데 여행지에서는 왜인지 머리만 대면 잠을 잤다.
푹자고 일어나서 출국심사를 마치고 면세점 입성!
우리나라의 10분의 1도 안될 것 같은 크기였지만 술이랑 화장품 정도 사기엔 나쁘지 않았다.
술을 좋아하는 남자친구는 1시간 정도를 행복한 고민을 하다가 비싼 술을 샀다. 나는 very sweet한 홋카이도 와인이 있길래 부모님 선물로 사왔다. 와인이 먹어보고 싶기도 했거니와 베리 스위트라는 말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 그리고 엊그제 까먹어봤는데 진짜 대존맛.. 포도주스같이 달고 맛있어서 바게트랑 같이 흡입했다.
그리고 오빠가 계속 술을 고르는 동안 화장품을 구경했다. 아직도 돈이 많이 남아서 미세먼지로 썩은 피부를 위해 나이트 크림을 하나 구매했다. 집에 와서 발라봤는데 쫀쫀하고 너무 좋아서 아껴쓰는 중이다.
동전도 써버릴 겸 귀여운 토끼모찌모양 자석도 샀다.
지금도 냉장고에 붙어있는데 부엌에 왔다갔다 할때마다 쓰다듬어본다.
마지막으로는 제과 파는 곳에서 도쿄 바나나 2박스를 샀다. 한박스는 막내 이모 주고 한박스는 우리가 먹었다.
큰걸로 사왔는데 이틀도 채 가지 못해 다 사라지고 말았다. 달고 맛있었음.
사진은 오빠가 산 오타루 치즈케익. 오타루에서 디저트를 하나도 못 먹어본게 엄청 아쉬웠나보다.ㅠㅠ
성대한 쇼핑을 마치고 비행기를 타기전에 마지막으로 한끼 먹으려고 공항 푸드코트로 갔다. 나는 라멘을, 오빠는 초밥을 시켰는데 실망스러운 맛이었다. 공항음식 별로임! 돈아까웠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우울하게 셀카 몇 장을 찍고 또 잠들었다. 비행시간이 길지 않아서 잠깐 졸고 일어나니 도착시간이었다. 짐을 찾아서 공항철도를 타고 나서야 여행이 끝났다는 것이 실감 났다.
여행은 열심히 일상을 살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끝나고 나면 현실로 돌아왔다는 생각이 사람을 참 우울하게 만드는 것 같다. 특히 나같은 거지백수는 다음 여행을 장담할 수 없어서 더 슬프다.
여행 일기를 쓰며 추억팔이를 하는 지금도 사진을 보니 한국에서 벗어나 떠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진다.
그래도 열심히 하고싶은 일을 하면서 살다보면 언젠가 또 떠날 수 있는 날이 오겠지.
이번 여름에는 국내 여행이라도 짧게 다녀올까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