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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되더라 Oct 29. 2024

4화 당연히 건강할 줄 알았던 엄마

이건 그냥 잠시 스쳐지나가는 바람일 것이다. 


가을날 너무나 예뻤던 우리 엄마


현재 엄마는 비소세포암 폐암 4기로 투병중이다. 


2022년 처음으로 부모님에게 프리미엄도 아닌 약간의 추가 검사가 포함된 종합건강검진을 해드렸다. 평소에 어른들은 누구나 갖고 계신 약간의 관절통증, 가끔씩 찾아오는 속쓰림 정도만 있으셨기에 큰 생각없이 하루 엄마와 건강검진 데이트라 생각하고 진행을 했다. 


그러다 일주일 후, 폐에서 뭐가 보인다며 소견서를 써줄테니 종합병원에 가보라는 의사의 연락이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큰 고민없이 정밀검사로 끝나겠지.. 라고 생각했다. 


그 후,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조직검사를 해야한다고 할 때까지만 해도 괜찮겠지, 막연히 생각만 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폐암.. 아무런 전조증상도 없었는데 심지어 4기라니... 담배도 피지 않는 사람이 폐암이라니, 믿을 수 없었다. 평생을 건강하게, 유쾌하게, 긍정적으로 살아온 사람이 왜..?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하늘이 무너지고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손에 잡히는 것도 없었고 삶의 의미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넋놓고 있다고해서 아무것도 해결되는 것이 없었다. 그 누구도, 방법은 내가 찾아야한다. 그생각에만 집중했던 것 같다. 


가장 먼저 한 일은 폐암으로 가장 유명하다는 의사선생님을 찾는 것이었고, 임상을 가장 많이 하고 있다는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암병원을 최종 결정하게 되었다. 여의도 ㅅㅁ병원에서 거의 모든 검사를 하고 갔기 때문에 검사를 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었고, 계속 비어있는 진료시간을 확인하고 예약을 시도한 끝에 1,2주 안에 조O철교수님을 만나뵐 수 있었다. 


불행중 다행으로 EGRF 변이가 있었던 엄마는 폐암 4기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임상실험에 참여할 수 있어 표적항암제를 복용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암의 크기가 많이 줄었다고 하셨고 이젠 현상이 유지를 위해 복용을 하는 단계였다.


처음엔 약에 대한 부작용이 크진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구내염과 손발저림을 달고 살아야했고 가장 큰 부작용은 머리가 다 빠져 그렇게 숱많고 곱던 엄마의 얼굴이 많이 변했다. 점점 숨도 많이 가빠하시고,, 병원에서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는데 정말 답답하고 속상할 노릇이었다.


그래도 이대로 5년이상 복용하시며 완전관해는 아니어도 오랫동안 건강을 유지하며 생존하실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사람이 참으로 간사한게, 그렇게 2년이 넘다보니 엄마는 그냥 숨이 많이 차는 체력이 예전같지 않은 사람 정도로만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일상의 큰 변화는 없었고 그냥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냥 이대로 일상이 이어질 것 처럼..


그러다 약 1주일 전부터 엄마는 잔기침과 가래로 자다가 가끔 일어나 가래를 뱉기 시작하셨다. 목요일에서 금요일로 넘어가는 시간엔 잠을 거의 못주무실 정도로 가래와 기침이 이어지셨고, 그래서 토요일 아침 가까운 이비인후과에 방문에 약을 처방받고 쉬어보기로 하였다. 하지만 밤새 약은 효과가 들지 않았고 일요일 저녁이 되자 이제 열까지 나기 시작하셨다. 엄마는 월요일에 외래를 가보자고 고집을 피우셨지만 아무래도 증상이 심상치 않았다.


  저녁7시 세브란스병원 응급실로 아빠와 함께 엄마를 모시고 병원으로 향했다. 다행히 꾸준히 세브란스에서 진료를 받고 있었고, 폐암을 투병중이시고, 열까지 나는 상황이라 응급실에 급하게 입원할 있었다. 


별생각없이 열만 내리면 괜찮을거라 생각했는데, 상황이 너무 긴박하게 돌아갔다. 소변이 나오지 않아 소변줄을 연결해야했고, 식은땀이 너무 많이 나서 2-3시간 사이에 옷을 2번이나 갈아입으셔야했다. 그리고 10분정도 간격으로 계속된 기침과 가래로, 엄마는... 3일째 제대로된 잠을 못자고 있었다.. 


나는 엄마가 폐암환자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그리고 폐렴이라는 것을 너무나 쉽게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본 폐렴이라는 건 아이들이 1,2일 정도 열이 나고 일주일정도 집에서 쉬면 되는 그런 독한 감기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나 무지했고 멍청했다.. 


엄마는 계속 잠을 못잤기 때문인지 응급실에 노숙자가 다닌다, 뚱뚱한 여자 두명이 날 쳐다본다.. 계속 그런 이야기를 했다.. 귀신이 너무 많다고..  " 나 빼고 다 가짜니까 쳐다보지 말고 나만 봐~" 라고 농담처럼 엄마에게 말을 건냈지만, 너무 무서웠다. 혹시나 엄마가 어떻게 될까봐.. 


다행히 검사결과가 나왔고 엄마는 일반병동으로 옮겨야겠다는 간호사님의 이야기 전달이 있었다. 


현재 비어있는 가족이 간병 가능한 병실은 없고 간호간병통합병동이 그나마 자리가 날 것 같다며 대기를 걸어놓으시겠냐고 했다.. 사실 비용이 많이 걱정되었다.. 4인실과 2인실의 비용차이가 많이났다...  간호간병통합병동은 하루 입원에 16만원이었다.(거기에 밤~새벽에 입원할 경우 당일 하룻밤에 50% 비용이 추가되어 24만원..) 그래도 밤새 잠을 못잔 엄마를 위해 내가 좀더 안쓰자는 생각으로 2인실로 대기를 걸어두었다.


새벽 12시30분즈음, 간호간병통합병동 2인실에 자리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 원무과에서 등록후 바로 이동보조분께서 엄마를 침대에 모시고 병동으로 향했다. 병동은 깨끗하고 쾌적했으며 예전에 엄마가 수술을 위해 입원했던 곳보다 아무래도 병상이 적다보니 공간도 넓었고 창가에 모실 수 있어 개인적으로 만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항생제와 영양제를 계속 맞으면서도 차도가 보이지 않았다. 기침은 여전했으며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나 역시 보호자 침상이 주어졌지만, 제대로 된 이부자리가 없어 오들오들 떨며 몸을 움추리고 눈을 감아보았다. 하지만 계속 열을 재고 엄마 상태를 살펴보러 와주시는 간호사님들이 계셔서 편하게 잠들 수는 없었다..


그래도 내가 답답하더라도 엄마가 숨을 편하게 쉬며 한숨이라도 잠들 수 있길 기도할 수 밖에 없었다.. 

야속하게도 다음날도 엄마는 계속된 기침으로 잠시도 잠을 잘 수 없었다. 하지만 아침이 되자 간호사 선생님은 간호간병병동은 보호자가 함께 머물 수 없다고 하셨다. 우리 같은 경우는 응급실에서 올라왔기 때문에 상태가 안정되면 보호자는 나가야한다고 했다. 그래서 엄마의 아침식사 후, 주치의 선생님을 뵙고 간다고 말씀을 드렸다.  하지만, 여전히 엄마는 기침이 끊이질 않는 상태였다.. 그대로 엄마를 두고 가기가 너무나 맘이 쓰였다.. 


엄마는 밤새 잠을 못잔 내가 더 걱정이 되었는지 내가 빨리 나가길 바랬다. 


기침하는 엄마를 두고, 집으로 오자마자 옷도 못갈아입고 나역시 몇일이나 밀린 잠을 잤다. 


눈물도 나지 않고, 괜찮았는데 자다 일어나 받은 이모 전화에 눈물이 터졌다. 그 잠깐의 잠이 너무나 개운해서.. .. 그리고 동시에 이걸 못하는 엄마가 너무나 가여워서 .. 


다음 날 출근은 했지만, 엄마의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잠을 잤느냐는 물음에 한번도 대답을 안한 엄마였지만,, 오늘 밤은 엄마가 푹 자고 내일 개운한 정신으로 나에게 말해주길 기도하며 오늘 하루를 마쳐야겠다.. 


내일은 기쁜 마음으로 이야기를 연재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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